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 보수만이 아니다. 인간은 어떻게 지배되는가를 살펴야 한다.

독서일기/작은 깨달음

by Deko 2013. 5. 10. 23:15

본문


























     허시먼은 이 책 혹은 이 연구를 통해 보수의 레토릭, 수사학이 아니라 모든 인간에게 해당하는 아주 보편적인 내용을 다루고 있다. 원래 수사학이란 고대 그리스에서는 토론에서 이기기 위한 방법으로 이해하는 것이 척박하지만 가장 심플한 방법일 것이다. 그리스 ·로마에서 정치연설이나 법정에서의 변론에 효과를 올리기 위한 화법(話法)의 연구에서 기원한 학문으로 이해되는 것이 수사학이고 이것이 문학이나 글쓰기에서는 효과적인 표현방법 혹은 언어의 사용법을 연구하는 학문으로 간주되기도 한다. 하지만 수사학은 중세에는 교양이었으나 현재는 약간 어색한, 적어도 우리나라에서는 어색한 학문인 것은 사실이다. 수사학을 대신하여 등장한 것이 논리학이었고 요즘에는 논술이라는 수업이 있으니 그런 류의 것으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일단 인터넷에는 이 책에 대한 언급이 적지 않다. 블로거들의 서평도 꽤 있는 편이다. 다들 시작이 보수를 알기 위해서는 이 책을 봐야 한다 등의 내용으로 시작한다. 하지만 이 책은 보수의 논리, 혹은 보수의 진보에 대한 반론만을 다루고 있지 않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그렇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다. 이 말씀은 로고스가 아니라 그저 언어라고 보면 될 것 같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고 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것도 말로 되어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언어는 인간이라는 종의 특질을 규정하는 가장 큰 특징, 변별점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인간의 사고가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면 사실 인간의 거의 모든 것이 바로 언어로 구성되어 있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결국 언어를 지배한다는 것은 인간을 지배한다는 의미가 될 것이다. 그러므로 보수는 어떻게 지배하는가에 대한 내용은 인간을 어떻게 지배할 것인가에 대한 내용일 것이다. 혹은 그렇게 이해되어야 할 것이다. 사실 모든 수사학은 설득을 그 목표로 하고 있다. 물론 설득을 실패할 경우 상대방의 논리를 파괴해버리는 것을 목표로 하기도 한다. 승리할 것인가와 패배하지는 않는다는 것은 조금 다르기 때문이다. 결국 다른 이들, 일반 민중을 조정하거나 경쟁 세력이 그렇게 못하려는 것이 수사학의 목표가 되는 것이다.

     이것을 진보와 보수 혹은 반동 간의 문제가 아니라 한 개인의 문제로 본다면 자신의 꿈을 실현하려는 시도, 남들이 가는 길이 아닌 자신 만의 길을 가려하는 이들을 방해하고 만들어진 일련의 시도들을 반동의 수사학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개인의 수준에서 역효과 명제는 그리 효과가 없을 것이나 무용명제, 결국 허황된 꿈을 향해 가다가 시간만 낭비하고 너는 낙오자가 될 것이란 일련의 말들이 바로 무용명제가 될 것이다. ‘네가 그러고 다니면 결국 집안이 기울 것이다,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이 사회를 좀 먹는 것이며 너희 같은 것들이 이 사회를 위기에 빠트릴 것이다.’ 등의 멘트가 또한 위험명제 혹은 그와 흡사한 것이 될 것이다.

 

     태초에 언어가 있었고 이 언어가 바로 우리의 사고를 지배하고 어떤 이들은 노예로 만들고 어떤 이들은 자신의 조그마한 울타리가 무너질까 전전긍긍하게 만든다. 결국 겁을 먹게 만든다. 겁먹은 동물이나 사람이나 다루기에 너무 편하다는 것은 동서고금을 통해 증명이 되는 것이다.

 

바로 이런 모습이 아닐까 싶다. 매트릭스의 요원들, 까불다간 혼난다는 ... 



하지만 요원들보다 더 빠르게 뛰면 ... 매트릭스에서 벗어날 지도 모른다. 


     이 책을 다시 쓰게 되면 그들은 우리를 어떻게 지배하는가.’ 정도가 될 것이며 여기에 미쉘 푸코의 에피스테메를 비롯하여 지젝데리다의 사회적 폭력 개념까지 합쳐진다면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책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다시 책의 내용으로 돌아와서 이 책이 결과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은 사실 관계에 대한 증명이 아니다. 책을 찬찬히 보면 역사적으로 두 가지 관점이 동시에 병립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작용이 있는 곳에 반작용이 있다. 이것은 빛과 그림자와 같은 것이다. 인간 세상에서 혹은 인문학에서 절대적으로 그리고 객관적으로 언제나 옳은 것, 참인 것은 없다. 하지만 서구 철학은 플라톤 형님으로 대표되는 이데아. 본질, 에센스 등등을 추구했고 상정했고 그러다 실제로 존재하는 어떤 것으로 간주하기도 했다. 논리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어느 하나가 절대적으로 옳다는 생각은 절대적으로 틀리다. 이승이란 곳이 서로 지지고 볶으면서 그렇게 서로 웃으면서 똥칠하는 곳이라면 상처를 냄새를 피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서 이 책이 강조하는 하나의 덕목은 바로 관용tolerance’이다. 이것은 근대 시민의 기본 덕목이고 (혹은 그렇게 되어야 하고) 자세 혹은 태도에 대한 개념이며 사실은 이성적 이해보다 감성적, 감정적 공감이 중요하다. 이것을 아는 사람들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정치에 광고의 테크닉을 쓰곤 했다. 이번 오바마 대통령의 캠페인에는 다단계 마케팅의 전술이 사용되기도 했다. 무엇보다 사람과 사람이 SNS로 관계를 맺고 오프라인의 관계로 이어지는 것은 굉장히 감성적 접근이라 할 수 있다.

 

     대립, 논리적 대립에서 그 일로 기대되는 최고의 긍정적 효과에 맞서기 위해서는 그 일로 기대되는 최악의 효과, 최악의 부정적 효과를 제시하여야 한다. 이 책에서 소개된 3가지 명제는 바로 최악의 부정적 효과를 제시하는 방법론이라 할 수 있다. 지만 하나의 사건이 절대적으로 긍정적이거나 절대적으로 부정적이긴 어렵다. 프레임이라 부르는 것은 언어의 틀을 통해 자유로운 사고를 막는 것을, 그런 기능을 하는 틀을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대되는 긍정적 효과와 부정적 효과를 통해서 서로 논의하고 합의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할 것이며 그것이 어쩌면 민주주의의 본질이라 할 것이다.

 

     이 책이 결과적으로 말하려 하는 것은 현재 우리가 프레임이라 말하는 틀을 걷어내자는 것이다. 이 책에 소개된 역효과 명제, 무용 명제, 위험 명제는 굉장히 오래된, 하지만 여전히 효과적인 전술이다. 또한 이와 완전히 똑같은, 뒤집어진 모래시계 같은 진보 진영의 수사학도 있다. 사실 둘은 같은 것이다. 그 시작이 바로 이것일 것이다. 우리의 신념이 절대적인 것은 아니다. 

     바로 절대적이라는 신념을 꺾기 위한 노력을 다른 말로 해체라고 부르는 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므로 이 책을 통해 보수의 수사학을 알게 되었다는 사람들은 책을 반에 반도 못본 것이 아닐까 싶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