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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또르 하라Victoria Jara와 Te recuerdo, Amanda 남아있는 무지와 오해 그리고 진실

Latin Feel/음악 이야기

by Deko 2013. 4. 25.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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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빅또르 하라 Victor Jara 그리고 Te recuerdo, Amanda. 

     이렇게 오해받고 있는 가수 동시에 오해받는 곡도 없을 것이다. 








     1973년 당시 기준으로는 공산주의자 혹은 사회주의자로 알려진 살바도르 아옌데의 당선에도 중요한 역할을 한 것으로 알려진 누에바 깐시온La nueva canción 운동의 중심이며 핵심이 바로 빅또르 하라였다. 물론 빅또르 하라는 그것만이 아니다. 어떤 스타일의 원조이다. 

     미성과 비성으로 노래하는 거의 모든 누에바 깐시온 혹은 누에바 트로바, 빠블로 밀라네스와 실비오 로드리게스를 포함하여 많은 가수들의 원형으로 꼽힌다. 몇 곡의 음악을 들어보아도 확실하게 도드라진다. 


     아무튼 아름다운 미성과 서정적 멜로디와 가사로 시인이라는 말이 너무나 잘 어울리는 빅또르 하라는 피노체트 쿠테타에 희생되었었다는 점과 라틴아메리카 사민주의social demócrata의 원조라고 할 수 있는 살바도르 아옌데를 지지했다는 이유 만으로 그를 체게바라를 능가하는 투사로 소개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다. 특히 자신의 정치적 성향이 사회주의 공산주의 혹은 주체사상적인 사람들이 그런 경향을 띠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시간은 빅또르 하라라는 예술인의 진정성을 보지 못하게 하는 장애물일 뿐이다. 실제로 빅또르 하라의 대표곡이라 할 수 있는  Te recuerdo, Amand를 소개한 거의 모든 블로거들은 오독을 했고 오역을 했다. 물론 번역기의 문제라고 생각하지만 스페인어 전공자들이 단 한마디를 안했다는 것은 역사와 문화에 대한 무지를 말한다고 할 수 있다. 

     빅또르 하라의 정치적 참여는 시대적 필요성에 대한 개인의 공감에서 시작하여 본이이 옳다고 믿는 것을 끝까지 말하려 했던 근대적 시민의 권리를 누리려했던 것이다. 빅또르 하라의 사상을 알기 위해 그의 텍스트를 분석하고 비교하고 하는 것은 어쩌면 문의미한 일이다. 시인은 시로 말을 하고 가수는 노래로 말을 한다. 무엇보다 그 소리를 듣는 것이 순서이다. 그외의 배경지식들은 자신의 마음에 어떤 반향이 일어나고 그것을 해결하고 싶을 때 찾아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이 순서일 것이다. 


     물론 빅또르 하라는 사회참여적인 면에서 운동이라는 측면에서도 분명히 인정받아야 하는 인물이나 그저 그의 글과 노래만으로도 나는 좋다. 취향은 강요할 수 없는 것이니 여기까지인 것 같다. 하지만 오해에 대해서는 할 말이 있다. 무엇보다 그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 Te recuerdo, Amanda에 대한 오해는 풀어야겠다. 일단 원문과 어색하지만 필자가 직접한 번역을 보자.  




Te recuerdo, Amanda

아만다, 너를 기억해

 

Te recuerdo Amanda

아만다, 너를 기억해

la calle mojada

비 내린 거리를 지나

corriendo a la fábrica donde trabajaba Manuel

마누엘이 일하던 공장으로 달려가던 너를

 

La sonrisa ancha,

환한 미소

la lluvia en el pelo,

비에 젓은 머리까지

no importaba nada,

다른 생각은 없었었지

ibas a encontrarte con él,

너는 그를 만나려 했으니까

con él, con él, con él, con él.

그를, 그를, 그를

 

 

Son cinco minutos.

5

La vida es eterna en cinco minutos.

구원으로 인도하는 그 5분의 시간

Suena la sirena de vuelta al trabajo,

휴식시간이 끝나는 사이렌이 들렸고

Y tú caminando, lo iluminas todo.

그리고 너는 걸어 돌아가며, 환한 미소로 세상을 밝혔고

Los cinco minutos te hacen florecer.

5분 만에 너는 피어났지.

 

Te recuerdo Amanda

아만다, 너를 기억해

la calle mojada

비 내린 거리를 지나

corriendo a la fábrica donde trabajaba Manuel

마누엘이 일하던 공장으로 달려가던 너를

 

La sonrisa ancha,

환한 미소

la lluvia en el pelo,

비에 젓은 머리까지

no importaba nada,

다른 생각은 없었었지

ibas a encontrarte con él,

너는 그를 만나려 했으니까

con él, con él, con él, con él.

그를, 그를, 그를

 

Que partió a la sierra. Que nunca hizo daño. Que partió a la sierra,

y en cinco minutos quedó destrozado.

Suena la sirena, de vuelta al trabajo.

Muchos no volvieron, tampoco Manue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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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가 되는 연은 번역을 미루어두었다. 일단 무엇보다 빅또르 하라의 육성으로 노래에 대한 코멘트와 노래를 들어보자. 




  

     이 노래는 두 명의 노동자들의 사랑이야기이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아만다가 다니는 공장 혹은 일터가 마누엘이 다니는 일터보다 조금 여유로웠던 것 같다. 아만다는 쉬는 쉬간 오분 동안 너무나 사랑하는 마누엘을 만나기 위해 뛰어온다. 비 내린 거리를 막 뛰어오는 아만다의 건강함, 마치 일본 애니의 추억은 방울방울에 나올 듯한 그 설래임 가득한 뜀박질, 볼은 붉게 상기되고 이마 혹은 콧등에 땀도 맻혔을 것이다. 그런 아만다를 마누엘은 안아주고 서로 마주보며 키스를 나누는 단 5분, 그 5분으로 인해, 아니 아만다와 마누엘은 서로의 존재로 인해 살았던 것은 아니었을까? 아무리 힘들어도 내가 너때문에 산다 ... 라는 것은 힘든 삶의 구원이다. 에떼르나eterna는 '영원한' 등의 의미로 사용되지만 기독교에서 영생이 구원을 의미하듯, 여기서는 구원의 의미이다. 삶의 의미, 살아가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이런 사랑을 해보지 못한 사람은 참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이겠지만 말이다. 

     마누엘을 만나고 돌아가는 아만다, 올 때는 뛰고 갈 때는 걷는다. 그런데 설래임의 미소와는 다른, 구원받은 사람 혹은 사랑이 가슴에 가득한 사람의 모습처럼, 세상을 다 비추고 .... 그리고 우리 말로는 이해가능한 ... 그녀는 피어난다. 사랑이 여성을 아름답게한다는 것은 동서고금에 다 통하는 진리인 것 같다. 시의 서정적 자아가 기억하는 아만다와 마누엘은 이런 소박하지만 너무나 정열적이고 동시에 아름다운 사랑이다. 아만다를 기억한다고 하지만 사실 기억하는 것은 이런 사랑이다.  이런 사랑의 갖고 있는 보편적 정서덕에 이 곡은 라틴아메리카 어디서라도 혹은 세계 어디에서도 볼 수 있는 아니 누구나 체험할 수 있는 보편적 이야기가 된다. 그런데 걸리는 부분이 있다. 스페인어 전공자라면 반드시 '어?'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바로 여기이다. 


ibas a encontrarte con él


     불완료과거에 미래형이 사용되었다. 이것은 사실 만났는지 안만났는지 모르는 것이다. 여기서는 그저 '의도' 무엇을 하려 했었다는 것만을 나타낸다. 물론 이것은 만나려 가는 아만다의 마음을 보여주기 위해 사용된 것이다. 그러나 불완료 과거형 불완료 과거에 미래형, 그리고 부정과거는 묘한 뉘앙스를 풍긴다. 


     아마도 Que partió a la sierra que nunca hizo daño에서 첫 번째 que는 마누엘을 수식하는 내용이고 다음의 que는 sierra를 수식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보통 sierra라고 하면 산맥이라 번역하지만 사실 사전에 1번 뜻은 톱이다. 또한 공작실, 작업실의 의미로도 사용된다. 기계 설비를 사용하는 곳에서 sierra를 사용하면 이런 류의 의미가 된다. 그러니 이 부분에서 산으로 산맥으로 들어갔다. 게릴라 활동을 했다 등의 번역은 다 틀린 것이다. 게다가 빅또르 하라가 무장 게릴라 활동을 지지한 사람도 아니었다. 또한 hacer daño가 해를 끼치다 혹은 손해를 끼치다는 의미가 되기 위해선 간접 목적어가 필요하다. 스페인어에서는 a ~ 라는 표현이 있어야 한다. 손해를 가져오다, 손해를 초래하다 정도의 의미로 번역하는 것이 더 맞을 것이다. 그런데 단 오분에 ... 여기서 오분은 아만다와 마누엘이 만나는 오분과 비교되는 오분으로 한쪽의 영원한 오분 혹은 구원의 오분이라면 여기서는 찰나의 오분이다. destrozar는 파괴되다 혹은 전복되다라는 의미도 있고 산산조각나다라는 의미도 있다. 아무튼 단 오분만에 작업장이 산산조각난 것이다. 아옌데 대통령 시절에 파업과 폐업 혹은 공장 폐쇄가 거의 비슷하게 일어났다. 정부에서는 생필품을 배급제로 하려했고 여기에 반대하는 부르조아 계급은 폐업을 했고 물건을 유통시키지 않고 사재기를 했다. 작업작이 산산조각났다는 것을 보고 파업을 연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는 폐업이 더 가깝지 않은가 싶다. 물론 시에서 진실을 밝히는 것은 그리 현명하지 못한 행위이다. 감상을 방해하는 모든 행위들이 다 그렇다. 






     다큐를 보면 마치 참여정부의 마지막 몇년을 보는 것 같다. 좌파세력은 좌파세력으로 우파는 우파로 정부에 압력을 가하고 있고 마치 북핵 문제와 비슷하게 치킨게임같은 양상을 보인다. 국가는 내전과 같이 두 세력이 부딪쳤고 정부는 달리는 말위에 올라탄 듯 어찌할 수 없다. 물론 70년대 초반 미국이 베트남전을 시작할 즈음, 세계대전의 기억이 여전히 또렷하고 냉전은 언제라도 세계 전쟁으로 번질 수 있었던 바로 그때였다. 비극은 예고되어 있던 것인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마누엘이 작업실로 들어간 것은 한 순간이고 산산조각난 것도 한 순간이다. 그래서 부정과거가 사용되었다. 그리고 마누엘과 아만다의 만남은 불완료과거이다. 그리고 부푼 그녀의 마음은 불완료 과거 미래형이다. 아마도 스페인어 전공자들은 이런 시제를 통해서도 어떤 느낌이 올 것이다. 물론 시를 문법적으로 푸는 것도 문제일 테지만 말이다. 


    마지막으로 이 시의 엽기적인 번역을 소개해본다. 마누엘이 작업실에 들어갔고 한번도 사고가 없었는데 사고가 나서 산산조각 났다고 ... 산산조각 난 것이 바로 마누엘이라는 것인데 .... 뭐 이렇게 번역하겠다고 하면 그럴 수 있다. 그런데 그렇다면 빅또르 하라의 서정성은 과연 무엇인가 ..??? 그 음에 맞추어 이 번역을 읽어보라. 그게 맞다면 빅또르 하라는 세계적 엽기 시인이 아니겠는가? 


     아무튼 이 시는 아름다운 연인들의 사랑의 시이고 노래이다. 비 내린 거리를 달려가는 사랑의 열정으로 가득한 아만다의 모습을 연상하는 것만으로도 이 시를 이 음악을 들을 이유가 되지 않겠는가 ..?? 


      * 빅또르 하라의 어머니의 이름도 딸의 이름도 아만다라고 한다. 물론 그것이 시를 감상하는데 그리 필요한 정보는 아닐 것이다. 또한 빅또르 하라는 연극인으로도 유명하다. 물론 이것 또한 감상하는데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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