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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선우, 한국영화의 포스트모더니즘 그리고 한국 최고의 배우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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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쁜 영화
  • 감독 : 장선우
  • 가족들과 살기를 거부하거나 포기하고 거리로 나온 아이들은 단란주점에서 일하거나 돈을 훔쳐 생활해 나간다. 돈이 없을 땐 굶을지언정 노는 것.. 더보기


     1997년나쁜영화, 우리나라에서는 특이했던 훼이크 다큐 영화이다. 물론 블레어 윗치The Blair Witch Project를 비롯한 가짜 다큐가 한때 호로물을 중심으로 대세였으나 그보다 먼저 나쁜영화가 있었다. 영화는 가출/비행 청소년들의 이야기를 다룬 단편영화를 장편화한 것으로 등장인물들의 실제 이야기를 기반으로 재구성하는, 어찌 보면 TV 재현 드라마같은 영화이다. 그런데 관련 인물들이 주변의 인물을 재현하여 TV 재현 드라마가 보여주는 딱, 그 정도의 오글거림이 느껴진다. 그런데 서울역에서 촬영을 하다 감독 장선우의 눈에 행려들이 들어온다. 그때부터 영화는 가출 청소년과 행려라는 병렬 구조를 갖게 된다. 서사구조는 하나로 연결되지 않고 파편적으로 널브러져 있고 각각은 리얼리티를 담고 하고 있으나 어떤 윤리적 한계가 없다.



블레어 윗치


      비행청소년 혹은 청소년기의 반항기를 다룬 이야기는 넘쳐난다. 전설 제임스딘 형님의 이유 없는 반항에서부터 아니 그 이전부터 사춘기의 반항을 다룬 이야기는 넘쳐난다. 하지만 정말 막나가는 아이들의 이야기를 막 보여준 영화는 흔치 않다. 어쩌면 제일 멋져 보이고 예뻐 보일 나이의 반항이나 일탈은 그 자체로 예뻐 보일 수 있고 이해할 만한 구석이 있다. 물론 아리랑 치기를 한다거나 빈 사무실을 턴다거나 하는 범죄행위는 분명히 경계해야 하겠지만 말이다.

      나쁜영화가 혹평을 면치 못했던 것은 내러티프의 문제였다. 통일된 혹은 통합된 서사구조가 없고 영화를 보고나도 하나로 수렴되는 무언가가 있는 것이 아니라 분절되어 흐트러진 각각의 이야기는 관객들에게 적지 않은 혼란을 주었고 동시에 무엇을 봤는지 모르겠다는 불만을 갖게 했다. 문제는 바로 리얼리티였다. 우리의 삶도 기억이란 측면에서 보면 아주 분절된 소위 널브러진 것으로 인장적인 어떤 장면들, 어떤 감정들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시간들은 사라져버린다. 또한 우리의 기억 또한 기억의 주체 혹은 첫 번째 관객이 바로 ‘나’라는 동일성을 제외하면 아주 혼란스럽고 또한 그리 재미있지도 않다. 영화는 우리의 기억, 그 메커니즘을 닮아있다. 그러므로 어떤 리얼리티의 측면에서 영화는 굉장히 높은 점수를 받을 수 있으나 우리는 어떤 이야기를 듣길 원하지 우리의 기억방식을 재현하는 것을 보고 싶어 하지는 않는다. 애니메이션을 사용했다거나 훼이크 다큐의 기법은 상당히 눈길을 끌지만 사실 가출/비행 청소년의 이야기는 어떤 한계가 있다. 영화가 뒷심을 잃고 추락해갈 때 카메라는 행려들을 향한다.




어린(?) 이문식과 안내상, 안내상이 배우일 것이라 짐작한 이들은 거의 없었을 것이다. 


     행려들의 이야기야말로 나쁜영화를 구원한다. 영화는 비로소 막연하지만 어떤 메시지를 던지며 우리의 편견과 선입견에 확실한 파문을 만든다. 행려들, 거지들, 홈리스… 등등등 뭐라고 부르건 이들은 현실 경제에서 소외된 이들로 사회에서 겉도는 이들, 잉여들로 간주할 수 있다. 가출/비행 청소년이 호스트, 호스티스, 도둑질 등을 통해 쉽게 돈을 벌고 유흥비로 쉽게 돈을 쓰는 것과 달리 이들은 다른 이들의 자비와 배려에 의해서만 살아갈 수 있다. 아주 쉬운 지름길과 멀고 먼 돌아가는 길의 차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이들의 선함과 이들의 휴머니티이다. 이 역설적인 모습은 그 자체로 상당한 충격을 준다. 경제적 측면, 그리고 사회 공헌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이들은 어쩌면 악 혹은 악으로 간주될 수 있다. 하지만 도덕 윤리적 측면에서 보면 오히려 이들은 그 반대편에 가깝다. 한 겨울에 자신의 양말을 벗어 다른 이에게 신겨주는 장면이나 하루 품을 팔아 번 돈으로 주변사람들과 함께 나누는 장면은…, 분명히 구원을 말하고 있다. 물론 그것이 영속적인 것이 아니라 해도, 그 순간만큼은 성경에 나오는 착한 사마리아인과 다르지 않다.


자신의 X이 죽인다고 한번 맛보면 헤어나올 수 없다고 자랑질을 하던 행려는 개성파 배우 기주봉이다. 



찬송가에 박수치는 행려로 등장한 대한민국 대표배우 송강호, 연출인지 애매하지만 찬송에 흥겨워하는 행려들을 쫓는 

개신교인들의 모습은 일단 낯설지 않고 시사사는 바가 아주 적지 않다. 


      보통 연기력이 뛰어난 배우라면 장애우의 연기라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는 역할 등 쉽게 표현할 수 없는 연기에 도전하고 싶어 한다. 나의 왼발의 다니엘 데이루이스나  오아시스의 문소리 등이 대표적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어쩌면 정말 어려운 연기는 혹은 최고의 연기는 연기를 안하는 것 같으면서 혹은 완전히 그 역할에 녹아들어가서 실제인지 가짜인지 분간이 되지 않을 때가 아닐까 싶다. 소위 무협지에서 말하는 허초로 실초를 제압한다거나 검술의 정수를 깨달아 젓가락으로 모든 검을 제압하는 수준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로 나쁜영화에서 이런 연기를 만날 수 있다. 안내상, 기주봉, 민경진, 김기천 그리고 현재는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배우 중 하나인 송강호를 비롯하여 개성파 배우 이문식과 g.o.d.의 쭌이 형님, 박준형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의 리얼한 연기, 행려들과 하나가 된 모습에서 영화의 리얼리티는 보석처럼 빛이 난다. 가상(기존의 프로 배우들이) 현실이 되고 이로 인해 현실이(진짜 행려들이) 가상(영화의 주인공)이 된다. 송강호가 나쁜영화가 출연했다는 것은 많이 알려져 있으나 영화를 보는 중에 신경을 쓰지 않으면 어떤 배우가 출연했는지 알아보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마치 아주 어려운 숨은그림찾기처럼. 그들은 그렇게 현실과 하나가 되었고 그래서 현실은 하나의 가상, 나쁜영화가상을 구성했다. 매트릭스의 현란한 테크닉이나 라틴아메리카의 마술적 사실주의라는 기법을 거치지 않고도 후기 산업사회 혹은 포스트모더니즘 혹은 해체주의적 세계를 어쩌면 정말 리얼한 방법으로 재구성해낸 것이다. 물론 이것이 영화의 재미를 담보해주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영화는 분명히 질문을 던지고 있다. 리얼리티가 가상을 압도할 때, 이제 가상, 드라마는 어떤 이야기를 해야 하고 할 수 있는가라는 것이다. 사실 정말 감동적인 드라마는 이제 TV 드라마나 영화에 있지 않다. ‘휴먼다큐멘터리 사랑’이나 ‘병원 24시’ 등의 다큐멘터리에 있다. 이미 현실은 가상을 압도하고 있다. 특히 현재의 대한민국은 더욱 그렇다.




휴먼다큐 사랑
  • 주변에 한명씩을 있을 법한 이웃들의 이야기를 그대로 담는 휴먼 다큐멘터리 프로그램. 더보기



병원 24시
  • 제작 : 정보 없음
  • 행복과 절망, 고통과 기쁨이 교차하는 곳, ‘병원’. 영상기록 병원24시는 生과 死의 갈림길인 ‘병원’이라는 공간 속에서 환자와 가족들이 .. 더보기




댄스배틀을 벌이는 god의 쭌이 형님, 눈빛이 장난 아니다.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이런 문제의식을 갖고 어떤 이들은 자신들의 목소리로 대답을 하고 있고 이미 했다. 어떤 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들었고 어떤 사람들은 그냥 흘려버렸다. 역설적으로 사회적으로 금기가 넘치고 억압이 강할 때 풍자와 해학이 넘쳐난다. 15세기, 르네상스로 열려가는 유럽에서 중세를 지키려했던 스페인에서 돈키호테가 탄생했다. 허생전, 홍길동전도 같은 맥락이다. 현실이 가상을 압도할 때 작가들은 어찌해야 할까? 대답은 간단하다. 어떤 방식으로건 다시 현실을 압도하면 된다.

물론 말은 쉽지 …. ^^



촬영 중간에 스틸 촬영을 포기한 사진가, 청순한 모습에 헉~ 했던 기억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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