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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에서 핀 꽃 라틴재즈 9. 두 번째 꽃. 라틴 문화혁명 살사Salsa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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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니아 그리고 살사라는 이름의 라틴 붐Boom



     음악적으로 살사와 맘보는 몇 가지 큰 차이점을 보인다. 물론 기본적인 형태는 이전 팔라디움 시대의 음악과 큰 차이가 없다. 50년대에도 춤을 출 수 있는 단조의 곡을 과왕꼬Guaguanco라고 불렀으며 경쾌한 장조의 곡을 과라차Guaracha라고 불렀다. 쿠바음악의 관점에서 보면 살사는 이 과왕꼬와 과라차가 구별 없이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쉽게 두 장르의 음악을 그냥 하나로 묶어서 춤출 수 있는 라틴음악이란 의미로 사용한 것이다. 물론 살사는 쿠바음악의 서브 장르는 아니다. 

 

     하지만 70년대에는 이미 비틀즈가 활동하다 해체했고 펑키Funky와 사이키델릭 음악이 서서히 유행하던 시점이었다. 70년대 살사는 당시 유행하던 음악의 조류를 받아들여 더 강해지고 공격적으로 변했다. 콘트라 베이스나 더블 베이스가 사용되던 맘보와는 다르게 일렉트릭 베이스가 사용되어 더 펑키해졌으며 뜨레스에도 엠프가 연결되었고 가끔 전자기타 솔로가 추가되거나 펑키한 느낌의 전자기타 리듬 파트가 추가되기도 했다. 현재도 라틴 음악계의 대표적인 기타리스트인 까를로스 산따나 또한 파니아 올스타즈 공연의 단골 게스트였다. 무엇보다 드럼이 타악기 파트에 추가되었다는 것이 가장 주목할 점이다. 드럼의 공격적인 사운드는 맘보와 살사의 결정적 차이점이라 말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맘보가 재즈와 직접적인 관계를 맺으며 스윙시대의 자양분을 그대로 흡수했으며 전 세계적인 유행이었고 조금 더 보편적이었다면 살사는 당시 유행하던 로큰롤과 펑키 및 사이키델릭을 흡수하고 라틴계를 대상으로 하는 지역적 특징을 갖고 있었다고 할 수 있다. 당시의 살사를 이후 80년대에 유행한 달달하고 로맨틱한 살사와 구별하기 위해 하드코어 살사 혹은 살사 두라Salsa dura라고 부른다. 물론 당시 로맨틱 살사로 구분할 수 있는 음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특히 푸에르코리코에서 활동하던 엘 그란 꼼보El gran combo의 음악 등은 파니아 올스타즈의 음악과 구별되며 이전 시대의 팔라디움 스타일의 음악이라 할 수 있으나 미국에서 폭발적인 사랑을 받은 것은 바로 파니아 스타일의 강한 음악이었다.

 

     1973년 양키즈 홈구장에 열린 공연실황과 다큐멘터리가 함께 편집된 ‘살사’의 경우 한걸음 더 나간다. 게스트만 봐도 그 의도를 확실히 알 수 있다. 재즈씬에서도 인정받는 바출신의 콩가 연주자 몽고 싼따마리아Mongo Santamaria가 첫 번째 게스트였다. 그가 초대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역시 그가 외양적으로 흑인처럼 보인다는 것이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그리고 파니아 올스타즈와 처음으로 공연하는 살사의 여왕 셀리아 꾸르즈Celia Cruz 등장한다. 셀리아 꾸르즈는 소노라 마딴세라의 보컬로 활동할 당시에는 쿠바의 트로피카나 쇼에서 볼 수 있는 의상이나 드레스를 입고 노래를 했다. 팔라디움에서 활동할 당시에도 그것은 변함이 없었다. 하지만 양키즈 홈구장에 등장한 셀리아는 마치 아프리카에서 갓 건너온 것 같은 모습이었다. 역시 의도적인 것이었다. 차차차에 블루스적인 느낌을 살리고 공격적이고 펑키하며 사이키델릭한 연주를 위해 까를로스 싼따나도 초대되었다. 그리고 카메룬 출신의 재즈 색소폰 연주자 마누 디방고Manu Dibango가 초대되었다. 아프리카에서 바로 건너 온 룸바 댄서까지 있었다. 이쯤 되면 약간 노골적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양키즈 홈구장 공연은 한 마디로 표현하면 파니아와 아프리카 혹은 라틴과 아프리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다큐멘터리에서 이것을 노골적으로 표현한다. ‘살사는 아프리카이다’ 다시 말해 아프리카가 그 원류이고 살사의 리듬은 아프리카에서 온 것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물론 앞에서 이미 언급한 것과 같이 라틴 음악의 리듬이나 멜로디 모두 아프리카에서 온 것이라 단언하기는 어렵다. 또한 당시 이런 언급은 다분히 사회적, 정치적인 것으로 60년대 말 70년대 미국의 흑인 해방운동을 생각하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레이 바레또와 몽고 산따마리아의 콩가 앙상불, 콩고 봉고 




체 뻴리시아노와 호르헤 산따나(까를로스 싼따나의 동생)의 라똔Ratón이다. 

차차차와 블루스의 연관관계를 느낄 수 있는 곡이다. 




라틴음악의 원류를 아프리카로 상정하는 것은 어떤 면으로 일리가 있지만 전적으로 옳지는 않다. 

적어도 음악적으로 아프리카는 거의 모든 미국음악 혹은 라틴음악의 원류처럼 보이지만 

아프리카가 엄청나게 거대한 대륙이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당연히 틀린 생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아무튼 파니아와 처음 공연하는 셀리아의 모습은 마치 아프리카에서 갓 건너온 듯한 모습이다. 



마누 디방고와 파니아의 잼, 다분히 룸바적이면서 펑키적이다. 

아프리카적인 분위기로만 보면 이 공연의 클라이맥스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정치적 계산이 있는 설정이다. 70년대 미국 내 소수인종 차별 반대 운동의 중심에 흑인이 있었고 

당시에는 라틴계와 흑인들이 문화적으로 그렇게 구별되어 있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디스코의 유행을 지나 80년 마이클 잭슨의 등장으로 흑인이라는 개념은 문화적으로 미국 내에서 상당히 달라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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