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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에서 핀 꽃 라틴재즈 8. 팔라디움Palladium과 맘보Mambo 첫 번째로 꽃 핀 라틴의 꽃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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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팔라디움의 명성을 한층 높여준 것이 바로 댄스 콘테스트와 새로운 밴드의 쇼케이스였다. 매주 화요일 팔라디움에서는 춤의 경쟁이 있었고 수요일에는 새로운 밴드의 도전이 있었다. 새로운 밴드의 출연과 새로운 스텝과 새로운 스타일의 등장은 매주 계속되는 경쟁으로 인해 점점 더 가속도가 붙어갔고 그러면 그럴수록 팔라디움의 음악적 수준과 쇼의 수준은 올라가게 되었다. 이 경쟁과 가속도를 더욱 높인 것이 바로 빅3이다.



팔라디움의 광고 빅3중에서 마치또의 밴드가 빠졌다.

또한 최고의 댄서 에이지와 마르고가 출연하다고 광고하고 있다.




팔라디움 빅3 중 가장 대중적인 음악을 했던 띠도 로드리게스의 Que sera.


빅3 중에서 가장 아프로 쿠반적인 느낌이 있었던 마치또와 그의 밴드 아프로 쿠반스의 땅가Tanga, 

대표적인 라틴재즈 곡이다. 


     그들은 매주 즐기며 연주를 했으나 서로의 경쟁의식 속에서 계속 발전된 모습을 보였으며 이것은 다른 밴드들에게 어떤 귀감이 되었던 것 같다. 물론 우스꽝스러운 파이 많이 먹기 대회, 술 빨리 그리고 많이 마시기 등의 이벤트도 없었던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 춤 경연대회는 당시 존재하던 모든 형식의 춤이 경쟁하는 장이었다. 스윙(지터벅 스타일)과 현란한 솔로 스텝, 그리고 현재 살사에서 사용하는 많은 패턴들과 아크로바틱한 동작, 로봇 춤같은 동작에 비보이 동작 등 현대 클럽댄스의 거의 모든 씨앗이 팔라디움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

 

      그리고 라틴계통의 첫 번째 유명한 춤 선생이 등장하는데 그가 바로 프랭크 킬러 조 삐로Frank "Killer Joe" Piro이다. 킬러 조라는 약간 무시무시한 별명은 현란하고 다이내믹한 그의 춤에 단 한곡만 춰도 파트너가 완전히 기진맥진해버렸기에 생긴 별명이다. 그는 영화 토요일 밤의 열기의 실재 모델이기도 했다. 그는 팔라디움 댄스 콘테스트의 최종 우승자이면서 동시에 팔라디움의 공식적인 춤 선생이었다. 그는 또한 라틴 댄스 역사에 최고의 여성 댄서로 빠질 수 없는 카르멘 마리에 빠디야Carmen marie padilla와 함께 맘보를 강습했고 메인댄서로 팔라디움에 서기도 했다. 이후 그는 광고에 출연하기도 했고 안무가로 활동하기도 했다. 물론 당시 분위기는 음악만이 아니라 춤의 부분에서도 엄청난 변화와 발전을 야기할 수밖에 없었다




팔라디움의 최고의 댄서 킬러 조의 모습


     수많은 댄서들이 있었고 자신들만의 개성으로 상당한 인기를 누리기도 했다. 그중에서도 최고의 인기 댄서는 에이지 로드리게스Augie Rodriguez와 마르고Margo Rodriguez로드리게스였다. 그들은 클럽댄스였던 맘보최고의 공연예술로 승화시킨 장본인으로서 수많은 브로드웨이 스타일 TV쇼에 등장했으며 많은 뮤지션들과 함께 공연했고 무엇보다 무대에서의 모습은 그 누구도 따를 자가 없을 정도였다.



 최고의 댄서 에이지와 마르고, 그들은 클럽댄스 맘보를 무대예술로 승화시킨 장본인이다.



맘보 관련 다큐에 그들의  인터뷰와 춤이 등장한다. 다양성만이 아니라 스타일에서 현재의 살사를 압도하는 면도 있다. 



     현재 영상매체로 남아있는 기록이나 기타 무대에서 공연된 맘보는 모두 이들의 영향아래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이다. 이들이 바로 맘보의 황금기를 만든 주인공들이었다. 맘보는 이들과 함께 미국을 대표하는 문화로 전세계에 퍼졌다.

     맘보는 브로드웨이와 밀접한 관련을 맺으며 발전했다. 특히 뮤지컬 등에 맘보를 차용되었고 실제로 브로드웨이의 뮤지컬 배우, 댄서들이 동시에 맘보 댄서이기도 했다. 우리에게 잘 알려진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를 비롯하여 그리스 등에서 맘보의 영향을 받은 안무들을 볼 수 있다. 쉽게 설명하면 당시 맘보 챔피언은 미국 쇼 무대에서도 최고의 수준이었다는 것이다. 쉽게 대중 예술 및 공연에서 최고의 수준이었으나 현재 살사는 과연 어떤 수준인지 쇼비지니스에서 혹은 뮤지컬 무대에서 살사 댄서가 댄서로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인지 왜 공연을 공연장이 아닌 클럽에서만 하는지 생각해볼 문제이다. 

     맘보는 클럽댄스와 공연예술 사이에서 점점 더 다양해지고 발전해갔으며 뮤지컬을 비롯한 공연문화에만이 아니라 미국식 댄스 스포츠, 아메리칸 댄스 스포츠가 만들어지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50년대 에이지와 마르고의 안무를 현재에 재현한 공연이 있는데 아메리칸 댄스 스포츠 챔피언이라고 한다. 맘보댄서와 댄스 스포츠 선수 그리고 시간과 공간의 차이가 있으나 웬만한 재즈 댄스 공연을 능가하는 예술성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Margaret Burns와 Wilson Barrera의 공연이다. 



     그리고 아래는 57년 애드 설리반 쇼에 등장한 커플의 맘보 공연이다. 존과 타이비 또한 당시에 꽤 유명한 스타였다. 어쩌면 살사 댄서들이 당시 유명한 댄서들의 모습을 패러디하고 있는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예술성이란 측면에서 과연 비교할 수 있을지, 비교할 만 한지 아니면 그저 그림자인지 찬찬히 생각해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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