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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에서 핀 꽃 라틴재즈 7. 할렘 디자이어 : 모든 욕망이 살아 숨쉬는 곳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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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렘 르네상스 Harlem Renaissance

 

 

 

     할렘르네상스는 미국 내에서 흑인들의 문화와 예술이 공식적으로 인정 받게 된 사회적인 사건이기도 하다. 이 할렘르네상스를 통해 인종적 자각과 정체성에서 각 이주 민족의 정체성에 대한 각성은 이후 흑인 예술 및 유색인종 예술과 문화의 부흥을 이루게 되는 시발점이 된다. 인종적 폄하의 의미를 담아 니그로르네상스라는 명칭으로 부르기도 한다. 할렘 르네상스가 미국의 역사 그리고 세계의 문화사에서 중요하게 평가받아야 하는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그 이전까지 존재하던 다양하고 다성적인 미국의 문화가 할렘 르네상스를 통해 비로서 근대적인 미국 문화로 발전되었기 때문이다. 19세기, 남북전쟁 이후 미국에서 공식적으로 인종차별은 금지되었으나 이것이 정책적으로 문화적으로 자리잡히는 데에 시간이 필요했으며 그 시간을 보내고 나서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의 문화적 각성, 스스로의 문화적 각성이 바로 할렘 르네상스였다. 할렘에서 시작된 문화적 각성은 재즈에서 블루스 그리고 디스코와 팝을 거쳐 랩과 힙합으로 이어졌다. 쉽게 미국 문화의 요람이었던 것이다. 이 요람을 가능케 한 것이 바로 라틴문화였다. 또한 라틴 재즈는 다양한 새로운 문화에 자리를 넘겨주는 것 같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여전히 이 할렘을 지키고 있다는 것이다. 



1919년에서 1929년, 1919년 3월 1일에 바로 삼일운동이 있었고 이후 우리나라에는 항일운동이 거세던 시기였다. 

민족 자결주의와 더불어 흑인을 비롯한 유색인종의 문화를 존종하는 분위기가 생겨났다. 

전 세계가 제국주의로 물들어갈 때, 미국에서는 미국적인 혹은 근대적인 문화가 성장하고 있었다. 


 

     1920년대부터 미국의 산업 질서가 제조업 중심으로 재편되게 되면서 당시 천만 명 정도의 흑인 인구 중 20%에 달하는 약 이백만명 이상이 도시 빈민으로 유입되게 된다. 이는 북부 도시로의 흑인 인구의 이동이 이민규제의 강화와 함께(1924년에는 강력한 이민법이 제정됨) 노동력이 감소하고, 1차 세계대전 후 미국의 산업팽창으로 노동시장이 확대됨으로써 싼 노동력의 수요가 급증함에 따른 필연적 결과였다. 이러한 배경은 농촌의 단순하고 동질적인 삶에서 도시의 복합적이고 다원적인 삶으로의 변화를 가져왔다.

     흑인 인구의 대 이동은 할렘과 같은 밀집 주거지역을 만들고 되었다. 어느 정도 자유의 제약을 받던 플랜테이션 농장의 농노에서 공장의 노동자로의 변화는 삶의 변화, 무엇보다 여가의 변화를 야기하게 된다. 농장별로 서로 떨어져 지내던 농촌의 삶과는 달리 도시 빈민의 삶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고 부딪치며 살 수밖에 없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교류였다. 다시 말해 할렘 안에서 다양한 색으로 존재하던 흑인들의 삶과 문화가 하나의 색으로 융합되게 된 것이다. 물론 그 방법은 추상적이며 개념적인 것이 아니라 구체적이며 생생한 방식의 체험과 경험으로 가능했던 것이다.

 

     19세기 말과 20세기 초에 등장한 래그타임 혹은 재즈와 같은 흑인들의 혹은 유색인종적 요소를 가진 예술들, 뮤지컬이나 공연, 연주 등 다양한 분야의 흑인 문화들 혹은 백인들이 생각하는 흑인문화들은 이미 백인들의 관심 안에 있었다. 그 이유는 제1차 세계대전을 성공적으로 끝낸 결과로 생긴 인도주의적인 관심때문이기도 했으며, 혹은 자유분방한 이국적 원시인의 살아 있는 본보기를 흑인이라고 생각했기 때문 인 것 같다. 이러한 분위기에 고무된 흑인 작가들은 아메리칸 드림이 자신들에게도 현실화될 수 있다는 긍정적인 꿈을 꾸기 시작하고 작품에 반영하기 시작했다. 물론 흑인들의 참담한 현실이나 바로 자신들의 아버지 세대에 벌어졌던 흑인 노예의 생활을 테마로 한 작품들이 없지 않았던 것은 아니지만 20년대는 그래도 핑크빛 미래가 그것도 아주 곧 올 것만 같았던 시기이다. 1919년에 3.1운동이 있었다. 한번쯤은 민족 자결주의니 뭐 이런 것들을 수업시간에 들어봤을 것이다. 그런 분위기, 전 세계에 제국주의의 망령은 끝나고 만인이 평등한 시대로 갈 것이라는 희망, 꿈이 있던 시기가 20년대였으며 다들 그런 시대가 곧 올 것이라 믿은 것 같다.


흑인이나 유색인종들이 특권을 원한 것이 아니었다. 그저 다른 사람들과 비슷한 권리, 인권을 원했던 것이다. 

할렘 르네상스를 테마로 한 그림 중에서 이렇게 그저 클럽에서 노는 장면이 많은데 

이것만으로도 엄청난 문화적 예술적 동력이 되었다.  


     하지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았다. 1929년 세계 대공황이라는 핵폭탄 같은 사건이 터진다. 그리고 미래에 대한 밝은 청사진은 강한 콘트라스트를 이루며 암울한 색으로 채색되기 시작한다. 비판적 관점의 작품들과 어두운 느낌이 작품들이 나오게 되었고 이것은 다분히 당시 미국과 할렘 혹은 흑인과 유색인종들의 현실을 반영한 것이었다. 

 

     결과적으로 할렘르네상스는 할렘 바로크라고 명명해도 전혀 이상하기 않을 정도로 짙은 비관론과 미국 사회, 백인 위주의 미국사회에 비판적인 시각을 드러내며 현실의 비참함을 표현한 문화운동이 되었다고 봐야 할 것이나 이와는 반대로 백인들의 관점으로 본다면 자본주의적 물질주의, 청교도적 엄숙주의에서 벗어나 흑인의 원초적 아름다움에 관심을 가지고 할렘 르네상스를 탄생시켰다고 할 수 있지만 할렘르네상스가 결국 할렘바로크로 이어진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렇게 보는 것이 맞을 것이다. 도시로 이주하면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안정을 통해 직-간접적으로 교육에 노출된 흑인 인텔리 계급이 자신들의 정체성에 대해 고민함으로 인해 흑인사회 내부에서 자의식이 성숙하게 되었으며 이것은 결국 흑인 지식인 공동체를 탄생시키게 되었으며 이들이 중심이 되어 당시 부조리한 미국 사회를 문예적으로 표현하기 시작한 그 출발점이 바로 할렘르네상스라는 것이다. 이런 비판적인 면을 고려할 때 진정한 근대적 미국의 문화의 출발점으로 봐도 큰 무리는 없을 것이다. 





남북전쟁 당시 미국의 남과 북의 정치적 상황이다. 전쟁 이후 북부의 공화당이 집권하지만 

경제 대공황 이후 민주당 정권이 20여년 동안 연속 집권하며 70년대까지 이런 분위기가 이어진다. 

이후 80년대 레이건 이후 부시까지 공화당이 또한 20여년 독주하며 

현재 오바마의 재선으로 민주당이 정권을 잡았다. 

연방주의자, 자유주의자와 공화주의자 상공업 중심주의 등 미국의 정치사는 단순하지 않으며 

문화적 상황을 고려하면 더 복잡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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