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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에서 핀 꽃 라틴재즈 6. 비밥, 쿠밥, 그리고 라틴재즈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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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편에 이어서 계속)

 

     하지만 재즈라는 음악은 전 세계적이었고 현재도 그 전 세계적인 영향은 유효하다. 그러므로 전 세계적인 관점으로 재즈라는 음악의 흐름과 라틴재즈의 탄생이란 부분을 분명히 설명하고 넘어가야 하는 것이다. 50년대는 아놀드 토인비Arnold Toynbee와 같은 사회 역사학자들에게 후기 모더니즘의 경향들이 드러나기 시작하는 시기이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후기 모더니즘에서 종종 언급되는 중심이 사라진 시기이다.

     물론 여기서의 중심은 유럽, 정확히는 파리로 대표되는 유럽의 문화가 될 것이다. 세계대전은 유럽을 철저하게 파괴하였으며 많은 예술인들은 신대륙으로 떠나게 되었다. 전쟁의 폐허와 신대륙의 풍요로움은 강한 대조를 이루며 어떤 역동성을 만들었던 것 같다. 그 역동성은 긍정적인 유희성으로 전이되었고 일반적으로 후기 모더니즘의 대표적 기법인 패러디로 나타나게 되었다. 특히 래그타임이나 초기 재즈에서는 이것을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했다. 다른 음악의 여러 특징들을 차용하는 재즈야말로 어떤 면에서 가장 패러디적인 음악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낭만주의, 아방가르드, 초현실주의에 공통으로 흐르는 정서인 새로움의 추구라는 미학적 목표는 결국 남들과의 다름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이것은 유럽과는 다른 문화적 변별성을 가지려 했던 미국이 추구하고 있었던 것과 다르지 않았다.

     의식했던지 의식하지 못했던지 유럽과는 다른 어떤 것을 추구하려는 미국의 뮤지션들에게 라틴 아메리카라는 것은 어찌 보면 커다란 보물창고처럼 느껴졌을 것이다. 다양한 이국적인 요소들이 저마다의 색을 유지한 채로 형성된 라틴문화는 어쩌면 이국적 문화 백화점이라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스페인적인 것, 유럽적인 것, 아프리카적인 것 그리고 토착 원주민의 문화까지 자신의 색을 유지하면서 하나의 문화로 녹아내렸기 때문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과 같이 타악기의 리듬 패턴이 관악기나 현악기의 패턴으로 전용되는 경우나 그 반대의 경우 등을 통해 재즈는 그 전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새로운 음악이 될 수 있었다. 사실 이런 새로운 요소와의 만남은 비단 라틴문화와의 결합만이 아니라 현재는 다양한 문화를 매개로 이루어지고 있다. 다시 말해 재즈 안에서 새로움의 추구는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다. 어쩌면 디지 길레스피의 다국적 맴버들의 밴드 또한 같은 맥락으로 이해할 수 있다.



Dizzy Gillespie & The United Nations Orchestra, 빠끼또 데 리베라의 연주와 지휘가 돋보이는

"Seresta & Samba For Carmen"



디지 길레스피와 아르뚜로 산도발의 연주가 돋보이는 "And Then She Stopped"



   미국의 문화적 정체성 만들기와 재즈가 어느 정도 관련을 맺고 있다면 라틴재즈는 미국 내의 소수 인종, 즉 라틴계의 정체성과도 관련이 있고 더 작은 초점으로 보면 유럽의 문화적 전통에서 벗어나려 했던 미국의 경우와 흡사하게 유럽, 정확하게는 스페인에서 이어진 문화적 전통과 당시 만연된 쇼 비지니스적인 분위기에서 벗어나려 했던 라틴계 뮤지션들의 노력들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새로움의 추구, 과거와는 다른 새로움의 추구라는 모토는 라틴 재즈에서도 유효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방법과 정도의 차이가 있다. 재즈의 방식은 사뭇 혁명적이었던 반면 라틴 재즈의 방식은 다분히 완만한 개혁이었다 할 수 있다.

     미국에서 성장한 근대 음악인 재즈가 카리브 해를 중심으로 한 라틴 문화권과 교류하면서 성장해왔으나 60-70년대를 들어서면서 사회 상황이 변하여 영향을 받게 된다. 냉전이라는 상황은 세계를 둘로 나누었으며 당연히 어느 한쪽은 어떤 방식으로도 절대로 만나서는 안 되는 곳으로 인식되었다. ()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카리브 해의 문화적 리더였던 쿠바가 더 이상 미국과 미국의 영향이 있는 국가/지역과 교류를 하지 못하게 되었으므로 쿠바는 문화적 고립, 혹은 진공상태 더 나아가 무한 숙성 상태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재즈음악은 쿠바를 대체할 수 있는 파트너들을 찾게 되는데 그 중에 하나가 바로 브라질 음악이다. 흑인적 요소가 강하면서도 쿠바 음악과는 다른 브라질 음악은 재즈를 풍성하게 해주는 요소로 70년대 그리고 80년대까지도 사랑받게 된다. 특히 느린 듯 하면서도 엇박의 느낌이 살아있는 보사노바는 브라질의 서정적 감성을 표현하며 퓨젼재즈 혹은 고급스런 팝으로 발전하였고 90년 우리 가요에도 영향을 미쳤다.



59년 연주된 만떼까, 비밥적인 요소가 강하지만 하이엣의 패턴은 까쓰까라 패턴과 동일하다. 

라듬감이 있는 분들은 클라베 패턴을 스스로 찾아낼 수도 있을 것이다. 

 

     2차 세계대전 이후 국제적 상황이 냉전이었다면 미국의 국내적 상황은 약간 달랐다. 흑인 운동으로 대표되는 인종차별에 반대하는 사회적 움직임과 거의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는 미국 내 소수 민족운동 등이 거세졌다. 그래서 민속음악적인 요소 혹은 민족적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음악들이 사랑을 받게 되고 흑인 다음으로 미국 내에서 가장 높은 인구구성 비율을 보이는 라틴계도 흑인들 못지않은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자신들의 문화적 정체성을 추구하고 지켜내려 했다. 그런 상황에서 유행하기 시작했던 것이 살사 등의 음악인 것이다. 살사의 경우도 멕시코의 테킬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먼저 미국에서 유행하고 역으로 라틴계의 국가들로 퍼진 것이라 할 수 있다. 물론 그 전에 이런 음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재즈, 근대 음악적 요소를 가진 음악이 탄생하고 라틴계 국가에서 사랑받게 된 데에는 미국 내 라틴 커뮤니티의 역할이 결정적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각 민족별, 국가별 문화적 차이가 미국 내 라틴 커뮤니티에서는 녹아 없어졌고 문화적 공통분모만이 남게 되었던 것이다. 이런 문화적 공통분모가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운 라틴문화를 하나로 정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되었던 것이다. 음악적 스타일 또한 재즈의 영향을 받아 전통적인 요소들을 강조하면서도 세련되어졌다.

     하지만 어떤 노래를 부르고 어떤 춤을 추고 어떤 음악을 듣는지가 바로 자신의 정체성, 문화적 정체성을 결정하던 시기에 흑인 커뮤니티에서 힙합이나 리듬앤 블루스R&B 등이 발전한 것과 마찬가지로 라틴 커뮤니티에서는 좀 더 전통적인 스타일의 라틴음악들이 발전하기 시작했다.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순서, 전통적인 것에서 대중적이며 세계적인 것으로 발전한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그 양상은 생각보다 복잡하고 사회적, 문화적 영향에 따라 또 달라지기 때문에 재즈와 라틴재즈의 경우처럼 단순하게 생각하면 안 된다. 또한 이 과정은 단순하게 한 방향으로 혹은 단 한번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라틴 커뮤니티에서 성장한 뮤지션들이 다시 재즈 밴드의 일원이 되기도 했고 재즈 밴드의 일원이었던 이들이 라틴 밴드의 일원이 되기도 했다. 재즈와 라틴재즈 그리고 미국이 아닌 라틴아메리카 현지에서 사랑받는 라틴음악 사이에 공통점은 점점 사라지고 차이점이 점점 커졌지만 뮤지션 사이의 교류는 상호간에 어렵지 않게 있었던 것이다.




디지의 트럼펫은 사고로 꺽인 것인데 더 단단해지고 깔끔해진 톤의 변화가 맘에 들어 그냥 썼다고 한다. 

요새는 꺽인 각을 조정하기도 하고 꺽인 트럼펫을 사용하는 것이 그렇게 특이한 것은 아니지만 

90년대까지만 해도 디지의 트레이드 마크였다. 꺽인 트럼펫으로 연주하는 것도 특이한 일이고 디지와 협연하는 것도 특이한 일이나

더 중요한 것은 이 공연은 85년 모습으로 이후 5년 후에 아르뚜로 산도발은 미국으로 망명한다. 

산도발의 원석과 같은 연주를 들을 수 있다


 

 

     쉽게 단언하기는 어렵지만 냉전이라는 상황과 소수민족운동이라는 정치적 상황은 ‘같음’과 ‘다름’이 동시에 중요한 시기였으며 ‘다름’으로 ‘같음’을 증명하고 ‘같음’으로 ‘다름’을 증명할 수 있던 시기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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