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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잘 모르는 살사이야기 : 살사를 추면서 몸이 아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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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인적으로 음악을 좀 안다거나 살사를 좀 안다거나 하는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을 꺼리는 편이다. 그 이유는 사실 간단하다. 마치 예전의 나와 비슷하게 ‘그렇다고 카더라’ 혹은 ‘그럴 것이다’정도의 수준에서 펼쳐지는 이야기이며 자신의 우물이 얼마나 좁은 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전에는 그런 분들의 우물을 파괴해야 속이 시원했다. 특히 공개적으로 공격해서 얼굴을 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것이 정화(淨化)라 믿었다. 현재도 인터넷에는 그렇다고 카더라 수준의 글들이 넘치지만 그것도 어쩌면 애정의 표시일 수 있다. 그것이 개인의 상상이라 한다 해도 말이다. 사실 지금도 검색을 해보면 ‘살사는 스페인어로 소금을 뜻하는 살sal과 …’ 이렇게 시작하는 글이 여전히 검색된다. 벌써 15년 정도 된 거짓말이다. 소스를 뜻하는 살사와 소금을 뜻하는 살sal은 그리 음식에 관련된 용어라는 것을 제외하면 큰 연관이 없다. 뭐 살사가 자신의 인생의 빛과 소금이라고 한다면 의미가 달라질 수도 있을 테지만 말이다.

    현재도 인터넷에는 상상과 거짓말 사이를 왔다-갔다 하는 분들이 많다. 사실 이제는 오히려 그런 분들이 고맙다. 그런 분들 때문에 내 글이 조금 더 빛날 수도 있을 것 같다. 물론 세계사를 왜곡하면서까지 하는 상상은 곤란하겠지만 말이다.

 

        얼마 전 일이다. 멕시코로 여행인지 출장인지 확실하지는 않지만 아무튼 왔던 분이 있었다. 여성이었고 살사와 탱고를 다 춘다고 했다. 그리고 요즘은 살사와 바차타를 즐긴다고 했다. on2 살사를 극도로 혐오했으며 그것은 진짜가 아니라고 했다. 꽤 신선한 반응이었다. 우리나라에서는 현재 on2가 대세라는데 말이다. 타지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그것도 살사 추는 사람을 만났다는 것이 반가워 커피 한잔 하게 된 자리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그녀는 뭔가 자꾸 내게 설명을 해주고 있었다. 마음속으로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되뇌었다. 그런데 상황은 점점 안 좋아지고 있었다. 살사의 역사를 만들고 있었다. 참다가 내가 이런 저런 책을 쓴 사람이라 말을 했다. 사실 그 말은 이제 그만하라는 의미였다.

 

     하지만 반응이 정말 특이했다. 싸늘한 미소. 냉소(冷笑)였다. 자신은 재야의 고수에게 배웠다고 했다. 처음 듣는 이름이었다. 닉네임이겠지만 말이다. 그리고는 더 열을 내며 말을 이어가고 있었다. 그 사람이 진짜라고 한다. 다른 살사 선생들은 다 이런저런 문제가 있다고 했다. 진짜 원조에게 배운 사람이라고 했다. 물론 그 진짜 원조도 한국 사람이었다. 개인적인 판단이지만 몸치에 가까운 사람인데 굉장히 노력을 많이 한 사람이긴 하다. 하지만 요새 끼가 넘치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족발집도 아니고 무슨 원조 논쟁이란 말인가? 클럽댄스는 잘 추면 아니 재미있고 즐겁게 추면 장땡아닌가? 그런데 그 진짜 원조를 가르친 사람이 더 진짜 아닐까? 아니면 그 진짜 원조라는 사람이 자기 버전의 새로운 살사를 만들었다면 이야기를 다르겠지만 말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그 살사는 진짜 살사일까?

     이런 생각을 아무리해도 턴이 어떻고 텐션이 어떻고 이야기는 끝이 날 것 같지 않았다. 한참을 기다리다 한마디 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 재야의 고수가 있겠느냐, 정보는 공개될 만큼 되었고 클럽에서 조금만 멋지게 추면 동영상으로 찍히고 살사를 추는 사람도 늘지 않는데 어떻게 숨겨진 고수가 있을 수 있겠느냐, 강습까지 한다면 분명히 꽤 유명해야 할 것 아닌가?  현재 on2를 추는 프로댄서들이 on1을 안 춘 것이 아니지 않는가? 그들이 on1으로 출 때 on1의 프로댄서들이었다. 내가 on2를 추종하는 것도 아니고 멕시코에서 on2를 추는 것은 아주 힘든 일이지만 클럽댄스고 그 만큼 자유가 있는 것 아니겠는가?

     물론 기본적인 룰은 있는 것 같은데 그것은 현재 내가 고민하는 있는 테마이다. 여기까지가 내가 한 이야기였는데 이것이 도화선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그녀는 내가 잘 몰라서 그런다고 했다. 정말 김태희가 눈앞에서 그런 말을 했다면 김태희마저도 미워 보일 정도였다. 또한 그 강사에 대한 추종은 그저 취미를 넘어서 종교와 가까운 것 같았다. 심지어 그 강사가 개인적으로 약간 부럽기까지 했다. 그래서 그냥 웃었다. 논쟁을 벌이고 거기서 이긴다고 무슨 의미가 있을까란 생각이었다. 어차피 춤은 입으로 추는 것이 아니니 말이다.

 

     멕시코에서 춤을 배운다고 하면 거의 on1, LA 스타일로 마치 2000년대 초반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꽤 러프하다. LA 스타일의 공연을 동영상이나 기타 콩그레스에서 보고 온 이들이 공연 스타일로 춤을 가르친 탓이다. ()을 쫓으면 그 안의 내용을 보기 어렵다. 그래서 내밀한 리드와 팔로우의 비밀을 알기 어렵다. 아이러니하게 멕시코에서 춤을 정말 잘 추는 멕시코 사람들은 손으로 꼽을 정도이다. 물론 여기서 내 별명도 ‘동양에서 온 괴수’ 혹은 그냥 ‘괴수’이기에 러프라고 터프한 것을 뭐라 할 처지는 아니지만.

 

     클럽에서 그녀는 너무나 좋아했다. 본토의 텐션감이 죽이다며. 분명히 과()한데 말이다. 나도 개인적으로 즐기면서 그녀를 신경 쓸 여지도 이유도 없었다. 몇 시간 지나고 보니 그녀가 다리를 절고 있었다. 어디 아프냐고 물어보니 오른 쪽 골반과 허리가 아프다고 했다. 사실 대강 짐작하고는 있었지만 몇 시간 만에 통증을 느낄 정도인지는 몰랐다. 그녀와 홀딩했을 때 바로 어금니를 깨물어야 했다. 정말 바위처럼 온 몸이 경직되어 있었다. 그녀의 텐션감에 동양에서 온 괴수인 나도 순간 헬스클럽에 온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녀와 몇 번 춤을 추면 몸짱이 될 것 같았다. 웃으며 우회전만 심하게 했느냐 좌회전도 좀 하지 그랬냐, 아웃사이드 턴만 그렇게 했느냐고 했다. 오픈 브레이크에 체중을 좀 덜 실으면 덜 아플 것이라고 했다. 그녀의 오픈 브레이크는 정말 죽을 맛이었다. 체중과 가속도, 여기에 그녀의 힘까지 트리플 콤보였다. 물론 그때까지도 그녀의 표정은 마치 ‘네가 텐션을 알아?’라 말하는 것 같았다. 그러다 갑자기 생각이 나서 오른쪽 댄스화를 벗어보라고 했다. 그녀는 약간 의아해하면서 댄스화를 벗었다. 예상대로 엄지와 검지 발가락 아래편으로 두툼한 굳은살이 배겨있었다. 굳은살이 너무 많은 거 아니냐 하니 자랑스럽게 웃으며 이게 다 연습의 결과라고 했다. 물집이 잡히고 그러다 터지고 그러길 몇 번 반복해야 그렇게 된다고 하면서.

     예전에 춤을 가르칠 때도 비슷한 발바닥의 여인네들이 있었다. 당장 턴 처음부터 배우라고 했다. 프리퍼레이션, 준비동작과 힘을 최소화하는 효율성 등이 중요한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 최소한의 힘으로 최대의 효과를 보는 것, 다시 말해 몸에 데미지를 최소화하는 것이다. 그렇게 굳은살이 생길 정도로 오른발을 축으로 힘 있게 돌아갔으니 오른쪽 골반과 오른쪽 등 근육을 사용했으니 얼마나 충격이 심했겠는가? 그녀의 오른쪽 몸은 그녀가 돌 때마다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이며 그 피로감은 상상 이상이었을 것이다. 그런 상황이 계속되면 척추가 휘어버릴 가능성이 높다. 몸은 정직하다. 무리하게 사용하면 반드시 그 결과는 자신에게 돌아오게 돼 있는 것이다.

     양발을 모두 사용하여 턴을 하고 있을 때는, 체중이 양발에 균질한 것이 좋다. 그래야 축이 덜 움직이고 안정적이다. 물론 항상 체중이 균질한 상태라면 살사의 맛이 살지 않는다. 체중이 균질하다는 말은 골반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의미이니 말이다. 또한 그녀와 같이 굳은살이 있는 경우 예전에 많이 사용하던 한쪽 발을 축으로 하는 일명 컴퍼스 턴은 자제해야 한다. 컴퍼스 턴은 한쪽 발을 무리하게 사용하기 때문이다.

     또 턴을 할 때, 여성의 경우 남자의 힘을 잘 이용하는 것이 중요하다. 본인의 힘만이 아니라 남자의 힘을 잘 이용하면 실제로 몸이 받을 수 있는 충격을 최소화할 수도 있다. 또한 어느 한쪽으로 많이 돌기 보다는 왼쪽 오른쪽 균질하게 도는 것도 하나의 방법일 것이다. 물론 리드에 관련 것은 리드를 하는 남자가 알아서 하는 부분이므로 여성이 어떻게 할 수 없는 부분이다. 그녀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계속 그런 방법으로 회전을 하면 결국 한쪽 골반과 척추에 무리를 주어 골반과 척추가 틀어질 수 있고 이것은 척추질환이나 디스크를 야기할 수도 있다고 말해주었다. 역시 반신반의하는 눈빛이었다. 이해 못할 것은 아니다.

 

     무용과 클럽댄스의 차이점은 ‘자신의 몸을 소재로 하여 무언가를 표현할 것인가와 춤을 춘다는 그 자체를 즐기는 것이냐’일 것이다. 물론 이것이 완벽하게 나뉘거나 서로 겹치지 않는 것은 아니겠지만 클럽댄스는 경제성의 원칙에서 효율적으로 오랜 시간동안 춤을 추는 것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며 여기에 비해 무용은 정해진 시간 안에 모든 것을 쏟아내야 하는 최대효과에 초점이 맞추어져야 할 것이다. 물론 살사나 다른 클럽댄스도 공연의 경우는 마찬가지일 것이나 공연과 클럽에서 춤을 추는 것이 같을 수는 없을 것이다. 보통 일반적으로 on1이라 불리는 살사의 특징들은 LA 스타일 공연에서 유래한 것으로 클럽에서 추는 스타일과 같아서도 안 되며 같을 수도 없는 것이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할 것이 그저 클럽에서 즐기는 춤이 아니라 무용을 지향하는 공연 혹은 퍼포먼스라고 부르는 레벨을 지향하는 댄서들은 이 이야기에서 논외라는 것이다. 그런 사람들은 이미 유희 혹은 취미 수준을 넘어선 것이다. 이런 사람들의 발에 굳은살이 박히는 것은 어쩌면 어떤 훈장과도 같을 것이다. 예전에 모 발레리나의 발처럼 말이다. 다만 가능하다면 양발에 균질하게 굳은 살이 박히는 것이 좋다. 물론 이것은 어려운 일이다. 보통 사람의 척추는 그 정도가 심하지 않더라도 한쪽으로 휘기 쉽다. 멀티 스핀 또한 한쪽 방향으로 자주 하기 쉽다. 언제나 한쪽으로 치우치는 것은 좋지 않은 것이다. 또한 5분 내외 길게는 10분 내외의 공연에서 모든 에너지를 폭발시키는 것이 바로 공연이다. 이것이 밤새워 즐기는 클럽댄스가 같아진다면 그것은 참 애매한 상황이다. 레벨이 다른, 범주가 다른 것이기 때문이다.  


     아무튼 그녀는 아예 골반의 움직임에 대한 개념이 없었다. 허리를 이용해 엉덩이를 흔들고 있었고 첫 박자에 강하게 골반이 빠져 정말 몸이 아플 만했다. 몸의 밸런스도 엇박의 느낌도 업 비트의 느낌도 전무했다. 그런데 자신의 살사가 재야 고수에게 배운 진짜 살사라고 했다. 그런 그녀에게 두 번째 박자에 체중이 움직이며 춤추는 두 사람의 몸이 고무줄 혹은 용수철에 연결된 것 같은 느낌과 서로의 힘이 균형을 이루어 마치 빙판에서 움직이듯 중력을 넘어서는 듯 움직이는 것을 알려주었다. 이제는 반반의 눈빛이었다. ‘뭐 이런 것이 다 있나 그런데 일리가 있는 것 같기는 한데’하는 그런 눈빛이었다.

 

     특히 천여 명이 관람하는 대형 공연에서 프로댄서는 자신의 모든 동작에 악센트를 찍듯이 움직여야 한다. 하지만 그것이 습관이 되어 그냥 클럽에서 출 때도 같은 방법을 사용하게 되면 몇 시간 동안 공연을 하는 꼴이다. 그 만큼 몸에 충격을 주게 되고 그것은 결국 프로 댄서로서 자신의 생명을 갉아먹는 짓이 될 것이다.

 

     좋은 강사라면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것이 있다. 최소의 힘과 노력으로 최대의 효과. 다시 말해 몸에 데미지를 최소화해야 하여 최대한으로 표현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더 쉽고 편하게 또한 살사의 기본적인 룰, 리드와 팔로우의 내밀한 법칙도 가르쳐야 한다. 물론 한 걸음 더 나가면 조건반사적인 춤을 추게 하지 말고 다양한 상황에 다양하게 반응하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사람마다 성격도 다르고 체격도 체중도 다르다. 그러므로 같은 힘과 같은 느낌으로는 리드도 팔로우도 할 수 없다. 또한 남성이건 여성이건 자신에게 맞추라고만 하는 것은 당연히 폭력이다. 다시 말하면 그 쉬워 보이는 우회전의 리드와 팔로우도 살사를 추는 사람의 수만큼이나 다양한 방법이 존재하는 것이다. 조건반사 하듯 일련의 동작을 외우게 하고 바로 발표회라는 이름으로 공연하게 하고 다시 일련의 동작을 외우게 하고 또 다시 발표회란 이름으로 공연하게 하는 것은 결과적으로 아무런 내용이 없는 형()만 남기는 꼴이다. 다양성의 문을 모두 닫아버린 것이다. 만일 이런 식으로 해온 강사 혹은 단체가 있다면 반드시 반성해야 한다.

 

      그것이 한국 살사의 르네상스를 불러올 수 있는 단초(端初)가 될 수 있을까??.

 

 

     추신: 정말 10년 넘은 이야기인데 중심이동, 인간의 중심은 배꼽부근이다. 일반인의 경우 절대 움직이지 않는다. 체중 이동도 중심을 유지하면서 움직이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자신의 체중에서 약 10-20%정도 움직여도 적지 않는 것이다. 또한 중심이 이동한다는 말은 다리가 길어지거나 상체가 길어져 그 중심이 배꼽이 아니라 다른 곳이 되거나 실제로 몸이 움직이는 경우밖에는 없다. 그런데 이것을 아무리 설명해도 알아듣지 못하는 것은 이해력이 부족한 것인지 아니면 알고 싶지 않은 것인지 잘 모르겠다. 그렇다면 일반인이 아니라면 어떨까? 전문댄서들의 경우 발레의 경우나 댄스 스포츠의 경우에도 자세를 바로 잡고 발끝으로 서서 몸을 펼쳐 올릴 때 작게는 3cm 에서 크게는 5cm 이상 무게 중심이 올라간다고 한다. 이것이 마치 중력을 거스른 듯한 움직임의 비밀이라고 한다. 세계적인 무용가 피나 바우쉬의 인터뷰에 잠깐 등장한 내용이다. 

 

   추신 2: 현재 강습 DVD나 전문적인 춤 선생들에게 배우기 어려운 쿠바의 거리 스타일 살사가 있다. 기존의 쿠반 살사에 B-boy 동작과 쿠반 룸바가 적당히 섞인 스타일인데 음악도 춤도 현재 유행하는 on2와는 판이하게 다르지만 B-boy 강국인 우리나라에게 충분히 유행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 든다. 물론 농구화 워커 등을 신고 나무 바닥이 아닌 길거리에서 추는 살사는 많은 이들에게 낯설 것이지만 말이다.



잘춘다고 전문적인 댄서라고 하기는 어렵지만 쿠반 스타일을 중심으로 몇 가지 스타일이 혼재되어 있으나 

아스팔트이다. 댄스화 없이 춤 추기 어려운 사람이면 어라?  할 것이다. 

요새는 저렇게 약간 남자가 껄렁한 느낌이 나는 것이 유행인 것 같다. 적어도 라틴아메리카에서는 말이다.

이 동영상이 춤이 아마도 라틴계에서 춤 좀 춘다고 하는 사람들이 즐기는 스타일일 것 같다.

여기에 멕시코 노르떼뇨에서 유래한 몇 가지 아크로바틱한 동작까지 곁들이면 금상첨화?? 일 것이다.   


 

에릭 프리맨의 유명한 시리지 살사 아라 쿠바나 3,4,5편에서 가장 돋보이는 춤을 보여준 요아니스.

본명은 Yoannis Tamayo Castillo이다. 

이 동영상은 2002년에 촬영되었고 현재는 더 B boy 동작과 흡사한 동작들이 구사되기도 한다.

부드러운 손 음악에 그가 펼치는 동작은 참 다이내믹한데 몸이 작고 가벼운 탓도 있는 것 같다. 

아래는 2011년의 모습으로 살사와 룸바를 결합한 스타일을 추구하는 듯 하다. 

하지만 10년 사이 몸도 많이 불었다. 하지만 쿠바를 비롯하여 라틴feel을 내려는 이들에게 

현재 가장 각광받는 스타일이다. 



살사와 룸바의 만남만이 아니라 부드러우면서도 역동적인 스타일은 

야넥 레비야 로메로Yanek Revilla Romero가 한수 위인 듯 보인다. 

특히 고무줄 같은 그의 손의 명성이 자자하다. 

역동적이면서 부드럽다는 것이 공통된 의견이다. 

보통 쿠반 스타일이 그렇지만 공작새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다. 

여성의 스타일링, 멀티턴이 거의 없고 남성 위주로 이루어진다. 

이런 현재 유행하는 쿠반 스타일 살사에 멕시코 노르떼뇨 스타일이 

카운터 펀치이다. 더 과격하고 더 마초적이고 그리고 아크로바틱하다. 

이 노르떼뇨 스타일은 다음에 소개할 예정이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사실 어느 정도 수준 이상의 전문적이며 좋은 살사 선생이라면 누구나 방식은 다르지만 깨닫고 있는 부분이다.여기에는 반론의 여지가 없다. 또한 몸이 아프다는 것은 분명히 무언가 잘 못되고 있다는 신호이다. 굳은살도 예외가 아니다. 굳은살이 피부가 죽어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런 몸의 신호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 더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다면 가야 한다. 이렇게 인도하는 것 또한 좋은 길잡이, 좋은 선생의 기본 조건이 될 것이다. 기술의 전달자 수준이라면 그것은 인터넷 검색과 별반 다르지 않다. 그저 정보일 뿐이다. 정보는 해석과 적용의 과정을 거치며 지식으로 변화한다. 축척되고 형성된 지식은 지혜로 발전해야 한다. 발전한다거나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다. 발전해야 한다. 이것은 당위(當爲)이며 어쩌면 의무일 것이다.

 

     물론 이 과정이 쉽거나 단순한 것은 아니다. 막연한 정보가 구체적 대상을 만나 적용되고 익숙해지는 구체화 단계에서 다양한 파트너들과 함께 알게 되는 보편적 단계 그리고 이 보편적 단계를 통해 우리는 지혜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정보에서 지식으로 그리고 지혜로 발전하는 것은 필연적으로 거치게 되는 과정이 아니다. 지혜는 선하고 옳아야 하지만 지식은 중립적이다. 그 사람의 수준에 따라 지혜로 발전하기도 하고 자기 과시를 위한 수단으로 전락하기도 하고 이성을 유혹하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한다. 전적으로 그 사람의 수준에 달린 것이다. 그 사람의 의식수준이 높다라면 어쩌면 지혜까지 도달할 수 있으며 그렇지 않다면 10년 넘은 경력이라 해도 내가 쓰는 지금 이 글의 내용을 모를 것이다.

     그렇다면 살사를 통해 의식수준이 높아질 수 있을까? 내 대답은 ‘예’이다. 약간 추상적이거나 과장된 것으로 보이기 쉬운 내용을 이렇게 쓸 수 있는 것은 확신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직접 겪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살사를 추면서 몸이 아프다면 이것은 좋은 신호이다. 도약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니 말이다. 물론 너무 무리해서 몸이 축난 것은 예외이다.

 

     내가 강조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의식수준을 높이고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다. 살사라는 춤으로 해서 말이다.

 

     다시 말하면 살사가 하나의 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로 좋은 사람이 되는 길이. 현재 영국에서 공부 중인 해병 성종민군은 ‘각 개인들이 파편화되어 존재하는 디지털 세계에서 서로 손을 맞잡고 체온과 숨결을 나누며 같은 움직임을 하는 가장 단순하면서 아날로그적인 만남으로 다양한 어쩌면 무한한 움직임을 만들어가는 것이 살사’라는 말을 한 적이 있다. 당시에 적지 않게 놀랐다. 그저 취미, 유희거리로 생각하는 것이 아니었던 것이다. 인식의 수준이 달랐다. 이런 인식의 차이는 반드시 상승효과를 야기한다. ()을 재생산하는 수준에서 어떤 방식이 되었건 변화한다. 물론 그 방향은 발전이라 부를 수 있다.

 

     모든 몸의 움직임은 춤이며 무예이고 우리의 깨달음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우리가 공부(工夫)라고 부르는 것이 중국으로 가면 쿵푸가 된다. 우리의 몸에는 구분이 없다. 머리도, 뇌도 그저 우리의 몸, 그 일부분일 뿐이다. 움직임 자체가 우리의 공부가 된다는 것이 우리 선조들의 생각이었다. 공부라는 단어를 공부의 의미로 사용하는 것은 우리 민족뿐이다.

 

     살사의 매력은 사실 허실(虛實)의 반복과 교차에 있다. 여기서 허()의 개념에 대응하는 것이 바로 엇박이라 부르는 싱커페이션이며 실()은 정박이라 이해할 수 있다. 행위의 측면에서는 발현된 동작들이 바로 실()이 되며 동작을 만드는 준비과정, 움직일 수 있는 에너지를 만드는 프리퍼레이션preparation이 바로 허()가 되는 것이다. 바로 허실이 교차되고 반복되고 조화를 이루는 것, 2마디, 4마디, 8마디로 나누어지고 노래 한곡에 균형을 이루는 것, 또한 사람과 음악 사이의 거리를 좁히는 것 혹은 일치되는 것이 살사의 매력이다. 적어도 난 그렇게 생각한다. 앞에서 형()만을 강조한 춤은 허가 전혀 없는 오직 실로 이루어진 것과 같다. 서로가 서로의 공간을, 다양한 가능성을 허락하지 않는다. 나는 나로 너는 너로 존재하는 단계이다. 이 단계는 시각과 가끔의 촉각 외의 교감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허실을 깨닫게 되는 단계, 리드와 팔로우의 비밀을 알아가는 단계가 되면 다른 둘로서의 하나가 된다. 둘이 만드는 가능성의 에너지 허는 효율성의 법칙아래서 동작을 하거나, 최소의 힘으로 상상 그 이상의 힘을 만들게 되고 더 나가게 되면 홀로인 개인으로는 도저히 상상할 수 없었던, 불가능할 것이라 생각했던 움직임을 만든다. 둘 사이에 마지 거대한 에너지 고무줄이 존재하는 듯, 전에는 나는 듯 춤춘다고 표현한, 바로 그렇게 춤을 추게 된다. 끊어지지 않는 에너지를 서로 나누는 것이다.

     물론 타고난 감각이 좋은 사람은 그 다음 단계를 본능적으로 느낀다. 변화.

 

     아무리 좋은 음식도 매일 먹으면 질린다. 특히 라이브로 연주되는 음악은 그 템포와 느낌이 균질하지 않다. 기승전결이 있는 경우가 대분이며 라틴음악은 절정부분이 반복되면서 서서히 끝나는 경우가 많다. 다시 말해 보이지 않는 에너지 고무줄도 익숙해지면 지루해질 수 있다. 바로 이때를 알아 이 고무줄을 끊어버려야 한다. 다른 둘이 하나 되었다가 다시 둘로 나누어지는 것이다. 자신의 기()를 솔로 스텝과 솔로 무브로 시원하게 표현하고 다시 하나로 돌아오면 된다. 하나였다 둘이 되고 다시 하나가 되면 보이지 않는 에너지 고무줄을 더 확실히 느낄 수 있다. 홀로인 것과 둘이 하나가 되는 것이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때부터 또 다른 단계이다.

     어떤 이들은 이런 단계들, 혹은 단계를 거치는 것 자체를 댄스 오르가즘이라 부르기도 한다. 아마 단어의 힘에 의해 그 의미가 구체적으로 다가오는 것 같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이렇게 부르기가 좀 고민된다. 내가 나를 버리고 더 큰 나로 태어나는 것이 살사를 통해 가능하다면 사실 그 이외의 일에서도 가능한 것이다. 홀로가 아니라 함께일 때 더 즐거울 수 있다는 체험은 사람을 바꿀 수 있는 강력한 것이다.

 

     살사를 통해 커플댄스를 통해 좀 더 좋은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앞에서 말했듯 사람은 다 다르다. 체형 성향 등 같은 것이 없다. 비슷한 유형은 있을 수 있겠지만 말이다. 그 많은 사람들이 마주잡은 손에서 시작하여 하나의 공부가 되고 수양이 될 수 있다. 이런 관점으로 보면 나쁜 사람은 없다. 물론 피하는 것이 더 좋은 사람은 있을 수 있다. 특히 형()으로 춤을 배운 사람은 피하는 것이 좋다. 자신이 갖고 있는 좋은 허(), 좋은 에너지도 손쉽게 파괴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몸은 어쩔 수 없이 거기에 적응하겠지만 결국 건강을 해칠 것이다.

 

 

     결국 처음으로 돌아왔다. 살사를 추다 몸이 아프다면 홀로인 채로 무리하게 몸을 사용했거나 함께 추는 사람들이 좋은 에너지, 가능성의 에너지 허()를 사용하지 않거나 그것이 무언지 전혀 모르는 것이다. 그래서 몸이 이제 못 견디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하지만 어쩌면 그것은 좋은 것이다. 변할 수 있는 혹은 발전할 수 있다는 시작을 알리는 소리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당신이 변해야 한다는 몸의 명령일 수도 있다. 물론 그 명령을 들을 것인지 아니면 모른 척 하며 현재의 수준과 상태에 머무를 것인지는 전적으로 당신에게 달린 일이다.

 

     또한 불행히도 앞에서 반복적으로 언급된 개념들의 구체적 체험이 없다면 이 글은 그저 뜬구름 잡는 소리처럼 들릴 것이다. 물론 흔치 않은 반응이 될 것이나 그래서, 그런 것이 존재한다면 알고 싶다, 알아보고 싶다는 생각을 할 수도 있겠지만 말이다




추신 : 춤판에서는 항상 이런 설레발을 치는 사람을 조심해야 합니다. 춤을 설레발, 혓바닥으로 추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죠. 

        갑자기 X맨이 된 기분이..... 초능력이 있는 것이 아니라 무슨 배신자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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