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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잘 모르는 살사이야기 : 정열의 살사 : 맘보와 차차차, 그리고 살사(춤을 중심으로)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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맘보와 차차차, 그리고 살사

 - 춤을 중심으로 본 그 유래 -

*음악 중심의 서술은 연재되고 있는 라틴 재즈에서 이루어질 것입니다.

 

 

     1933년 쿠바의 작곡가 이그나시오 삐녜이로Ignacio Piñeiro 역사상 오래 남을 화제의 곡을 자신의 밴드 셉때또 나시오날Septeto nacional을 위해 작곡하게 된다. 그 곡이 바로 에찰레 살시따Echale Salsita이다. 이후 즉흥연주의 경우 좀 더 화려하고 강렬한 연주를 이끌기 위한 여흥구로 에찰레, 에찰레 살사, 마스 살사(más salsa) 등이 사용되었다. 하지만 기분이 좋거나 흥겨울 때 사용하는 여흥구는 이것 만이 아니었다.

 Septeto Nacional과 라 의 연, 에 더 운 다. 

에 는 은 나 의 라 의 91년 다. 가 치 속 을 다 

나 를 해 을 시 게 된 한 를 인 은 .... 구 .. 짓 .. 다. 



     60년대 초반 베네수엘라의 라디오 방송 디제이 피디아스 다닐로 에스깔로나Phdias Danilo Escalona [살사]라는 명칭을 공식적으로 마치 음악장르처럼 처음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때 언급한 [살사]는 현재의 살사와는 좀 다른 60년대 히트하던 맘보 스타일의 음악, 맘보 스타일의 댄스 뮤직을 언급한 것으로 사실 최초라는 의미 외에 다른 큰 의미를 찾기는 어렵다.


왼쪽이 피디아스 다닐로 에스깔로나 중앙은 가수 꾸꼬 발로이 그리고 오른쪽은 아나운서 볼리바르 나바스


     확실한 것은 1966년 페데리코가 이끄는 밴드가 Llegó la salsa(살사가 왔다)라는 앨범을 발매하기 전까지 라틴 아메리카에서 살사는 음악적 용어보다는 원래의 의미인 소스라는 의미가 강했다는 것이다. 하지만 60년대 후반에 들어서면 살사는 맘보와는 또 다른 스타일의 음악, 더 젊어지고 새로워진 어떤 것으로 원래의 리듬에 당시 유행하던 부갈루 등이 결합된 음악을 말하는 것이다. 60년대 후반부터 살사라는 명칭은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앨범 재킷에서 당시 살사의 이미지를 엿볼 있다. 마치 맘보의 이미지와 흡사하다.

 

 

     무엇보다 살사라는 명칭이 음악적 명칭으로 자리 잡은 데에는 파니아Fania라는 레이블과 조니 파체코라는 걸출한 음악 프로듀서가 있었기 때문이다. 살사라는 명칭은 파니아 레이블의 레코드가 팔리면 팔릴수록 전 세계적으로 더 알려지기 시작했다. 결국 30년대 유행한 곡에서 유래한 여흥구가 이렇게 저렇게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다가 60-70년대 파니아의 폭발적인 인기와 함께 음악적 명칭으로 자리를 잡은 것이다. 물론 현재는 라틴 커플댄스의 대명사처럼 사용된다.

 

 

춤으로의 살사에는 항상 섹시한 이미지가 있다.

 

 

     사실 문화적 관심이 있는 사람이나 정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다양한 살사 스타일과 스텝, 거기에 on1,on2 스타일까지, 살사는 혼돈 그 자체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잘 모르면 혼란한 것도 어느 기준점이 생기면 그리 어렵지 않기 마련이다. 무엇보다 언급해야 하는 것은 스윙이다. 재즈의 가장 대중적인 형태이자 가장 많은 사랑을 받은 장르이며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전체주의적인 국가에서는 자유의 상징으로 통하기도 한 음악이자 춤이다. 이 스윙이 20-30년대 그리고 40년대까지 히트하게 된다. 물론 40-50-60년으로 넘어가면 음악으로의 인기는 약간 시들해지지만 춤으로의 인기는 어느 정도 명맥을 유지하게 된다. 이 스윙의 뒤를 이어 등장한 음악이 바로 맘보이다. 맘보는 스윙의 자리를 별 어려움 없이 차지하게 된다.

     맘보는 아프리카 콩고에서 유래한 명칭으로 원래 의미는 대화, 그것도 신령한 영, 혹은 신들의 대화라는 의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즉흥연주 혹은 밴드의 유기적 구성을 강조한 듯 한 명칭이지만 사실 별 의미 없이 살사의 경우와 흡사하게 여흥구로 사용되었다. 특히 맘보의 황제라고 할 수 있는 페레스 브라도Perez prado가 여흥구로 ‘맘보’라는 명칭을 가장 많이 사용하였다. 특히 50년대는 라틴 아메리카에서는 페레스 브라도와 베니 모레Benny more 같은 걸출한 스타들 덕에 맘보는 최고의 인기를 차지할 수 있었고 미국에서는 뉴욕 최고의 클럽 팔라디움Palladium을 통해 맘보가 보급되었고 당시 최고 인기의 클럽댄스가 된다. 음악으로 맘보는 단손Danzon이나 콘트라 단사Contra danza 혹은 단사Danza라고 부르던 쿠바 음악 장르와 비슷하다 할 수 있으나 춤으로는 룸바Rumba, 그것도 아프로 쿠반 룸바Afro cuban rumba의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인다. 물론 아프로 쿠반 룸바 또한 어느 정도 유형이 있는 춤이다. 하지만 맘보의 경우 특별한 형태가 없다고 할 정도로 정해진 스텝이나 그런 비슷한 유형조차 없다. 극단적인 자유로움 혹은 일명 막춤에 가깝지만 스윙에 비해 확실하게 라틴적인 느낌이 강하고 스윙의 영향을 받은 탓인지 엄청나게 빠른 편이다. 템포는 빠르고 신나고 미국과 멕시코와 중미 그리고 쿠바 등의 카리브해 도서지역 또한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까지 메가히트한 장르가 바로 맘보이지만 춤의 경우는 현지의 상황에 따라 다양하게 해석되곤 하였다.



50년대의 맘보의 모습, 아직 개인적으로 주장하고 있는 이론인데, 맘보를 통해 볼륨댄스와 포크 댄스가 만나게 되었다고 본다. 

영화 타이타닉에서 디카프리오가 추던 아이리쉬 댄스와 탭댄스를 떠올려보고 다시 이 춤을 보면 느낌이 다를 것이다. 


     게다가 라틴적인 느낌, 업비트의 당김음의 느낌이나 엇박의 느낌이 적어 음악적으로만 보면 사실 라틴적인 특징이 그렇게 강하다고는 할 수 없다. 마치 맘보의 반작용같은 음악이 등장하는데 그것이 바로 차차차이다. 차차차는 일단 템포가 맘보에 비해 상대적으로 느리고 업비트가 잘 살아있는 음악장르이다.차차차를 추기 위해 on2스텝이 등장하게 된다. 물론 스텝의 정형화는 사실 쿠바를 중심으로 퍼졌던 커플댄스, 단손이나 콘트라 단사 등을 통해 이루어진 것이나 단손이 탱고를 연상시키는 스텝, 세 걸음 앞으로 가고 세 걸음 뒤로 가며 턴 등의 동작이 이루어지는 것을 생각해본다면 차차차는 이런 전통이 음악에 맞춰져 새롭게 구성된 스텝이라 할 수 있다. 세 걸음을 걷는 단손의 전통 덕에 차차차라는 이름, 댄서들의 스텝에서 연상된 의성어(결국 이름이 되는) 가능했을 수도 있다. 차차차 스텝이 on2가 된 것은 특별한 고안 혹은 인위적 조정이라기보다는 그저 콩가 비트에 맞추고 업비트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었을 것이다.

 

 

살사, 그 막연하고 애매함. 그래서 자유로움.

 

     빠른 템포의 맘보가 50년대 그리고 느리고 업비트가 강조된 차차차가 50년대 말 60년초 그리고 60년대 말 그리고 70년대 이 둘 사이의 화해가 이루어진다. 바로 살사에서 말이다. 살사는 확실하게 맘보보다는 느리고 차차차보다는 빠르다. 스텝 또한 차차차를 닮아있기도 하고 솔로 스텝에서는 맘보의 영향도 분명히 보인다. 물론 살사에 맘보와 차차차만이 영향을 미친 것은 아니다. 70년대는 디스코의 시대이다. 디스코의 시대에 같이 유행했던 것이 바로 허슬Hustle이다. 허슬이 특별한 틀이 있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울 정도로 굉장히 다양하나 한 가지로 이야기하면 미국의 커플댄스라 포괄적으로 이야기 할 수 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라틴 허슬 혹은 뉴욕 허슬은 살사와 거의 경계가 없이 발전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60-70년대 살사가 스페니쉬 할렘을 중심으로 라티노들의 민족운동, 민족문화운동적인 성격이 있어 전통적인 요소, 아프로 룸바적인 요소, 아프리카의 좀 더 전통적인 요소들을 강조하고 춤에서는 골반과 상체, 어깨 등의 움직임이 중요하게 여겨지고 이로 인해 라틴 댄스와 골반의 움직임이라는 개념이 생겨난 것에 비해 허슬은 마치 석쇠에서 기름이 쫙 빠진 고기처럼 다른 모든 것은 상관없다는 듯 오직 피겨 커플댄스로서 자리를 잡은 것이다. 결국 문화적인 요소를 가진 살사가 좀 더 긴 생명력을 보였다는 것은 굉장히 주목할 만한 것이다. 물론 라틴 허슬의 미국의 댄스 스포츠인 아메리칸 커플댄스의 한 장르가 되어 볼륨댄스가 되었고 살사는 에디 또레스의 강습 비디오 제목처럼 나이트클럽 스타일이 되어 전 세계의 밤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것이다.



라틴허슬 대회, 음악을 줄이고 춤만 보면 무엇가 느껴지는 것이 있을 것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문화적 정체성이란 측면이 아주 강하게 드러났던 파니아의 음악, 70년대 살사음악을 보통 헤비 살사Heavy salsa, 살사 두라Salsa dura라고 표현한다. 펑키Funky와 로큰롤Rock&roll이 결합된 살사 스타일로 지금까지 어떤 라틴음악보다 강렬했고 공격적이었으며 실험적이었다. 살사는 라틴댄스로서 커플이라는 한계도 클럽이라는 한계도 한 번에 뛰어넘는 수준이었다. 살사는 광장에서 연주되었으며 양키즈 홈구장에서 연주되었고 사람은 언제나 가득모여서 그동안 지나왔던 겨울을 날려 보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함께 스페인어로 노래를 따라 부르며 춤을 춘다는 것, 그것도 뉴욕의 중심에서. 그것만으로 그들에게는 어떤 혁명과도 같은, 우리가 3.1운동에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친 듯 한 그 기분이었을 것이다.

 

 

살사, 장르와 스타일 사이에서

 

     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살사가 하나의 음악 장르로 새롭게 등장한 것이 아니라 쿠바와 푸에르토리코 등 카리브해와 멕시코와 중미에서 이미 존재하고 있던 라틴 스타일의 댄스 음악이 당시 히트하고 있던 음악의 영향을 받아 성립된 것이다. 다시 말해 하나의 음악적 장르라기 보다는 음악적 스타일로 보는 것이 적합할 것이다. 살사의 다양성, 살사라는 이름 안에 너무나 다양한 스타일의 음악이 존재하고 있고 특히 어느 정도 템포가 맞는 4박자 계열의 곡들은 살사로 리믹스가 될 수 있다는 것은 살사가 독립된 하나의 음악 장르라기보다는 하나의 음악 스타일로 간주하는 것이 더 옳을 것이다. 물론 살사가 장르적 특성을 보이며 하나의 음악장르로 자리 잡을 가능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현재 살아있는 클럽댄스와 클럽댄스 음악 중 가장 특이한 요소를 가진 살사가 그 개방성이 적어져 하나의 장르가 자리 잡는다면 스윙이나 맘보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어떤 면에서는 박물관에 들어가는 것이라 봐야 할 것이다. 생생한 생명력이 다양성을 담보하기 때문이다. 맘보가 브라스 연주에서 독특한 개성을 드러냈고 차차차는 비단 라틴음악에서만이 아니라 재즈와 로큰롤 그리고 블루스에서도 개성적인 솔로연주에 어울리는 음악 스타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살사는 이와는 다르게 희미한 장르적 범주에 의해 여러 다양한 음악적 요소들, 현재 유행하는 음악 스타일, 다양한 문화권의 전통 음악적 요소 등, 이전에 있었던 어떤 클럽 댄스도 도달하지 못한 다양성의 최정점을 보여주고 있다. 힙합에서 테크노(트랜스), 아프리카의 전통음악과 전통 리듬 그리고 밸리댄스적인 요소, 아랍음악의 요소, 동남아시아적인 요소도 무리 없이 섞일 수 있는 음악이 바로 살사인 것이다.

     물론 춤으로도 마찬가지이다. 왼발과 오른발의 두 걸음으로 구성된 살사의 기본 스텝은 단순하면서도 아주 보편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다른 춤의 많은 요소들이 쉽게 결합될 수 있는 것이다. 만약에 살사의 스텝이 차차차 스텝 같았다면 다양한 스타일로 발전하지 못했을 것이다. 게다가 홀딩을 한 상태로도 춤을 추고 남녀가 모두 오픈된 상태에서 솔로로 춤을 추기도 하기에 음악만큼이나 춤으로의 살사도 다양한 스타일을 담아낼 수 있는 것이다. 음악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춤에서도 이런 가능성, 이 잠재력이 쇠잔하지 않는다면 춤으로의 살사 또한 그 생명력이 대단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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