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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온 대선에 즈음하여 마이클 무어의 자본주의 : 러브스토리 돌아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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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갑자기 이걸 다시 한 번 돌아봐야 하겠다고 생각했다. 전에 쓴 글이 그저 개인적인 느낌만을 남았었고, 사실 정상적으로 비판할 이유를 못느꼈다. 이 영화를 보고 자본주의를 비판한다는 것은 영화 월스트리트를 보고 경제의 원리를 파악했다는 말과 비슷할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마이클 무어라는 감독이 보이는 스탠스, 그는 모든 문제에 대해 경험주의적인 스탠스를 보인다는 것이다. 논리적으로 허술하고 학문적으로 이상하다고 해도 사실 그것은 그의 수준을 증명하는 것이기 때문에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로마제국와 미 제국…, 아니 미국을 비교하면서 영화는 시작한다. 제국은 독재로 향해갔고 국민의 관심을 돌리기 위해 여러 자극적인 스포츠를 노출시켰다는 부분…, 이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어쩌면 미국보다 앞서는 지도 모를 일이다. 빡빡이 형님께서 프로야구, 프로 씨름 등등등 스포츠를 활성화했고 비공식적으로 매매춘을 지원했다는 것은 많이 알려진 사실이다. 사실 당시에는 영화도 그렇고 문학도 호스티스 문학이라 부르던 것이 있었다. 아무튼 이런 면에서 성노동자들의 문제는 비단 윤리적 측면만이 아니라 사회 구조적으로 봐야 하며 이런 이유로 일방적인 금지는 가장 좋은 방법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아무튼 영화는 상당한 의도 혹은 무지 등을 담고 시작한다. 모든 문제의 근원, 즉 악의 근원을 레이건으로 설정했으며 그 반대편에 카터가 있다. 뭐 이런 유치한 설정의 의미를 구지 다시 밝힐 필요는 없겠지만 사실 그들은 공범 혹은 적어도 공범과 가까운 관계인데 말이다. 그래도 1차 경제 공황과 오일 쇼크, 냉전 상황 등의 이해 없이 그저 레이건부터 이야기를 푸는 것이 현명한지 다시 한번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나서 개별적 예들이 등장한다. 우선 미국 부동산 버블이 깨지면서 생긴 부동산 문제를 다룬다. 이 부분와 칠천억불이었나? 아무튼 의회의 재정 지원 문제와 연결시켰어야 했다. 그리고 노사문제 노동문제, 해고의 문제를 다룬다. 그러면서 이런 문제와 자본주의를 연결시킨다. ‘이게 바로 자본주의’라고 말하지만 사실 이것이 자본주의인지 혹은 신자유주의의 문제인지 아니면 바로 인간의 탐욕을 의미하는 것인지 분명히 생각할 여지가 있다. 아무튼 자본주의가 미국의 제도이며 성경적 제도라는 집단 최면/세뇌/선전 등이 이루어지고 있다고 결국 자본주의는 미국에서 신성불가침의 존재라고 말한다. 마이클 무어가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애국하는 예수쟁이들의 집회에 한번 와봐야 진짜가 뭔지를 알 텐데…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그들이 그렇게 사랑하는 미국은 자본주의가 신성불가침일 미국일 텐데.


     하지만 이 부분 또한 역선전이다. 자본주의가 악한가? 여러 사제들, 마이클 무어와 친분이 있는 사제들이 나와서 그렇다고 하지만 사실 그것은 거짓이다. 어떠한 제도도 그 자체로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다. 그저 사회를 운영하는 제도일 뿐이다. 제도는 도구이다. 도구는 악하지도 선하지도 않다. 칼로 요리를 할 수도 사람을 죽일 수도 있다. 총 또한 방어적 용도로 사용할 수도 있고 공격적 용도로 사용할 수 있다. 사제 분들에게는 죄송하지만 자본주의가 악한 것이 아니라 그 제도를 운영한 이들이 악한 것이다. 자본주의는 그저 제도일 뿐이다. 자본주의가 악한 것이 아니라 그 당시 미국이라는 국가의 상황이 불균형한 상황, 각종 비리와 부패로 얼룩졌던 것이다. 입은 삐뚤어졌어도 말은 바로 해야 한다. 어떠한 제도도 그저 도구일 뿐이다. 모든 것은 그것을 이용하는 혹은 운영하는 사람에게 달려있다. 1%의 사람이 95%의 모든 국부 혹은 모든 자본을 독점한 상황, 그리고 나머지 5%를 두고 99%가 아옹다옹하는 사회가 바로 미국이다. 이게 사실이다. 허나 누구를 탓할 것인가? 탐욕에 빠졌던 것에는 예외가 없지 않은가? 부자가 되는 것만이 삶의 목표인 사람들이 복권을 지나 노름 혹은 노름과 비슷한 것에 빠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닐까? 그리고 그 끝에 오링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도 대부분 알고 있다. 그저 혹시나…하는 아주 낮은 확률의 유혹에 빠질 뿐이다. 이 아주 막연한 확률이 어떤 이들에게는 희망이라는 단어가 된다. 그 만큼 삶이 척박해지는 것이다.


     이후에 나오는 파생상품에 대한 설명은 현재 하우스 푸어가 유행어가 되가는 있는 우리나라에 와서 마이클 무어나 기타 은행 담당자가 와서 배워볼만한 부분이 있을 것이다. 전세 끼고 대출 끼고 집산 사람들, 집값의 반 이상 되는 전세도 그리 드물지 않은 현재, 부동산 폭락에 이어 이자가 오를 경우 이자에 모든 소득을 털어 넣는, 집 있는 거지들이 넘쳐날 것이며 부동산은 새로운 족쇄가 될 것이다. 물론 은행 관계자 입장에서 전세를 미국에 도입하여 세입자는 월세의 부담에서 벗어나게 하고 집주인은 그로 인해 대출의 압박에서 조금 자유로워 질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곧 전세금을 담보로 대출을 받으라고 할 것이며 집주인에게는 전세를 이용해 여러 채의 집을 사서 세를 주라고 전세 끼고 대출 끼고 하면 금방 여러 채의 집주인이 될 수 있고 하나씩 월세로 전환하면 한 달 수입이…. 뭐 이런 방식으로 부동산 버블이 점점 커졌고 스페인이나 미국이나 비슷한 방식으로 부동산 버블은 터졌고 채무자는 늘어났다. 아무튼 전세가 있었으면 버블을 더 키웠을 수 있었을 텐데…, 다양한 파생상품과 함께.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는 부동산 버블을 키우는 전문가들도 있는데 이런 사람들은 수출이 안 될까 싶다.


그는 참 경비원들과 대화를 자주한다. 이것은 그냥 쇼이다. 실제로 무언가를 하기 위한 것이 아니다. 

아무튼 이런 장면이 미국인들에게는 어떤 공감을 불러일으키나 보다. 


     아무튼 영화에서는 커넥션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언급한다. 사실 이것은 커넥션이 아니라 바로 부패의 문제이다. 아무튼 한쪽을 노골적으로 가리면서 부패의 문제를 말한다. 그리고는 구세주가 등장한다. 근원fundamental부터 바꾸겠다는 오바마 형님이다. 여기에 대해서는 확실한 데이터가 있다. 전쟁은 줄어들지도 않았고 미국의 서민경제는 좋아지지 않았고 그는 사회주의자도 혹은 공공복지를 우선하는 정치인은 아니다. 그는 구세주가 아니다. 그냥 미국 정치 구조에서 그렇게 성장한 흑인처럼 보이는 혼혈 미국인이다. 그리고 근원부터 미국이 바뀌었는지는 구지 언급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아무튼 우리나라와 FTA는 맺었다. 재협상을 한다는 약속이 있었는데 다들 대선 때문에 잊은 것 같고 그렇게 우리 경제를 구원할 최고의 방안이라고 입에 거품을 물던 사람들은 대체 그때 왜 그랬는지 의아하기만 한, 론스타의 반응에 따라 그 위험은 빠른 시일 내에 현실화 될 수 있는, 그 FTA 말이다. 한미 FTA. 결국 위험은 크고 구체적인 이익은 별로 없는 것은 왜 그렇게 서둘러야 했는지 다시 한 번 물어보아야 할 것이다. 그 원인은 과연 무엇이었고 그 원인에는 어떤 이유가 있는지. 아무튼 우리나라의 경우도 다르지 않다. 그 누가 우리를 구원해주지 못한다. 현재 구원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스스로 쟁취해야 할 것이다. 


     아무튼 영화에는 최대 경제 위기라고 말하면서 다우지수, 즉 주가를 말한다. 주가란 주식의 가격이다. 주식을 자산으로 보유할 수 있다. 하지만 주식을 사는 것은 그 회사에 대한 믿음에 의한 것이며 또한 투자를 통해 이윤을 나누어 받기 위함이다. 하지만 주식 시장에서 회사는 그저 하나의 상품이다. 물론 그렇다고 하자. 뭐 주식회사는 법인이지만 이런 거 다 이야기하기 복잡하다. 그러나 주식의 가치와 회사의 영업이익은 다른 것이다. 다시 말해 담보로 삼아 대출을 받을 것이 아니라면 주가의 폭락이 회사의 영업에 그리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물론 이미 대출을 받은 경우라면 문제가 될 수 있겠지만 뭐 떨어졌다가 오르다가 하는 것이 주가이니. 실제 회사의 영업과 전혀 상관없는 주가의 변화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나 그보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실제 회사의 영업이 그리 큰 변화가 없는데, 제조업이건 서비스업이건 그런 대로 운영을 하고 있는데 주가가 떨어졌다는 이유로 경제위기라고 하는 것은 넌센스다. 물론 대출로 연결된 관계들이라면 약간 다를 수도 있겠지만.


     영화는 결국 인간의 생존권의 문제와 부의 분배에 대한 문제를 아주 피상적으로 다루고 있다. 정치권력은 제도를 통해 민주화가 되었다. 경제권력은 제도를 통해 민주화가 될 수 없을까? 민주주의는 정치적 개념이고 경제적 개념이 아니기 때문에 불가능한 것일까? 다시 앞에서 언급한 이야기를 반복한다. 수단은 주체를 위해, 쉽게 인간의 행복을 위해 고안될 수 있다. 수단보다 중요한 것이 바로 주체, 즉 사람이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정의로운 시장이나 도덕적 시장이 가능하다. 사람이 하는 일이니 경제권력 또한 민주화가 가능하다. 프로그램에 문제가 있어 어떤 연산을 해내지 못한다면 프로그래밍을 새로 하면 된다. 수단은 주체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수단이 주체를 결정하지 못한다. 아니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는가?




     아무튼 영화는 환호성, 기쁨, 희망으로 오바마 형님 찬가로 끝이 났다. (물론 정확히는 사람들의 저항으로 끝났다고 봐야 할 것이다. 물론 마이클 무어는 오바마 형님과 시민들의 저항을 아주 밀접하게 보이도록 편집했다.) 영화가 그렇게 감흥이 없는 것이 바로 제목 때문이다. 자본주의가 아니라 미국 경제에 대한 더 내밀한 성찰이 필요했다. 부자들에 대한 비판이 아니라 부자가 되고 싶은 열망, 그 저속한 욕망에 대한 반성이 결여되어 있다. 또한 자본주의 시장경제와 화폐 제도에 대한 내밀한 성찰, 미 연방 준비위원회와 버냉키 형님 등에 대한 언급이 없었다는 것도 아쉬운 면이다. 하지만 화씨 911로 부시와 공화당 비판으로 한 껀 크게 올렸던 마이클 무어 수준에서는 나름 선방이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GM의 본사에 들어갔고 회장과 면담도 했다. 하지만 여전히 그러지 않은 척을 한다. 그는 어쩌면 마이클 무어라는 역할을 연기하는 배우이며 그의 영화는 그저 훼이크 다큐인지도 모를 일이다.


     그가 과연 이번 대선에서도 오바마를 구세주로 볼 지 궁금하긴 하다. 저번에는 선거운동도 아주 열심히 하던데 말이다. 그는 녹색당이었나 ... 아무튼 진보정당을 지지하다가 민주당으로 옮겨탔고 그러다가 공화당을 지지한다고 해도 나는 별로 놀라지 않을 것 같다. 사실 많이 다르긴 하지만 나꼼수 현상과 마이클 무어의 다큐를 비교하는 것도 상당히 의미 있는 작업일 것이다. 물론 현장의 기자, 현역 정치 평론가 그리고 현역 정치인과 언론사 사주?의 조합은 마이클 무어라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르지만 말이다. 



추신 :    보통 인문학적, 사회과학적 테마를 다루는 다큐들은 보통 사전적 의미를 알아보는 것으로 시작하는 경우가 많은데 마이클 무어는 동네에서 ... 아니 자기가 아는 사람에게 물어보는 식이다. 경제와 역사 전공한 친구에게. 우리는 그런 것은 개똥철학이라 부르는데 그에게는 상당히 객관적 진실로 보이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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