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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디자이너가 중심이 되는 시대는 이미 시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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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변한다.

사실 세상이 변한다는 표현을 엄밀히 말하면, 누군가는 변화를 이끌고 그 외의 많은 이들은 그저 따라간다는 말이다. 이것을 마치 매트릭스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누군가는 프로그래밍하고 있고 누군가는 프로그래밍당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 프로그래밍의 양상이 좀 다르다. 매트릭스가 암울한 세기말적 이미지, 그로테스크한 이미지를 재현했다면 현재의 프로그래밍을 하는 사람은 스티브 잡스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유쾌한 디자이너의 이미지이다. 앙드레 김으로 대표되던 디자이너라는 단어는 이제 창조적 인물, 쉽게 창조적 CEO의 이미지를 갖게 된다. 디자이너가 꿈을 꾸면 기술팀이 그 꿈을 현실화할 방안을 만들고 도안이 제작되면 하청 기술팀은 물건을 생산한다. 디지털이란 시대가 어떤 이들에게는 그저 스마트폰을 사고 어플리케이션을 다운받고 새로운 미디어를 즐기는 것이라면 어떤 사람은 그 시대 자체를 상상한다. 산업혁명은 엔지니어들이 이끌었고 이후 기술 혹은 과학혁명은 과학자, 학자들이 이끌었고 그 이후는 과학기술을 이해하면서도 창의력이 가득한 창조적 인간, 디지털 디자이너들이 이끌고 있는 것이다. 디지털 디자이너는 다시 말하면 디지털 미학을 이해하는 예술가적 CEO라고 할 수도 있고 그냥 디지털 예술가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디지털 예술가 혹은 디지털 디자이너는 기술을 갖고 있는 엔지니어와 사회적 컨텍스트를 만들어 줄 학자들의 도움을 받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그 중요성을 비교할 수는 없다. 상호 교감, 유행하는 말로 인터랙션 혹은 인터액션interaction의 관계이나 디지털 디자이너가 삼각형의 꼭짓점이라는 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또한 길게 돌려 말한 것 같지만 상상력을 가진 사람이 변화를 이끄는 사람이고 시대의 리더이다.

 


스티브 잡스를 보내며
스티브 잡스를 보내며 by Sean Choe 저작자 표시비영리



인터액션interaction에서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사실 서로 소통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이 무언가에 대해 말을 하게 만드는 것이다. 쉬운 예로 보통 공연장에 가면 에너지와 인기가 넘치는 밴드는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자신들이 이미 미쳐서 공연하는 경우와 둘째는 자신들은 냉정을 유지하며 자신들이 준비한 퍼포먼스를 하면서 오직 관중만을 흥분시키는 경우가 있다. 쉽게 대중들이 주도적으로 움직여 하나의 거대한 구름처럼, 은하수처럼 스스로 흘러가게 하는 것, 물론 여기에 어떤 의도와 의지가 끼어들 가능성이 있다. 현재, 정치, 사회, 시민운동 등에서 필요한 것이 바로 이 부분이다. 물론 이것을 선동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전에 몇 가지를 고려해야 하는데 바로 선동이라는 단어의 의미가 그 첫 번째이다.

선동이라고 하면 마치 꼭두각시 인형처럼 군중을 조정하는 것처럼 부정적으로 인식하기 쉽고 공감이라고 하면 굉장히 부드럽고 긍정적으로 들린다. 하지만 어떠한 메시지를 전달하여 수신자들에게 어떤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은 기본적으로 광고의 목적으로 기본적 커뮤니케이션의 목표이다. 물론 반응의 범위에 메시지에 대한 긍정적 고려까지 포함하면 반응 또한 분명히 목표 안에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문제는 그 목표이다. 그 목표가 선할 경우와 악할 경우가 있을 수 있고, 악한 경우는 우리가 이미 제국주의, 파시즘의 형태로 역사에서 목격한 것이다. 하지만 선동이냐 아니냐의 논쟁에서 더욱 중요한 것은 우리가 우리 스스로, 인간 자체를 어떻게 보고 있냐는 점이다. 선동이 되기 싶다는 말은 자신을 포함한 인간이 선동되기 쉬운 존재라는 것을 의미한다. 인간은 선동을 당할 수도 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혹은 100%의 확신으로 선동될 수 있다는 시각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새로운 시대의 리더쉽은 선동을 하는 나치 스타일의 연설이 아니라 Start 버튼을 눌러주는 것과 같다. 이후에는 하나의 원형, 오리지널 발신자와 다수가 교감하는 인터랙션이 아니라 그 메시지에 공감하고 반응한 다수의 개개인들이 뭉게구름 흘러가듯이 서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자기 스타일로 가공하고 새로운 메시지를 만들어내며 자라는 것이 바로 현재의 인터랙션이다. 이 새로운 시대의 리더쉽은 start버튼을 눌러주고 계속적으로 자라날 수 있도록 피드백을 간간히 해주는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그러한 경향성을 읽어내는 눈이다. 가장 쉬운 방법은 의문문. 메시지를 읽은 이들이 어떤 방법으로건 반응을 보이기 쉬운 것이 의문문이기 때문이다.

 

선거를 비롯하여 언제나 무언가를 결정하려는 순간에는 미래를 향한 열망과 과거의 인력(引力)이 힘을 겨루어왔다. 누가 더 디지털 디자이너에 가까운지 아니면 그냥 몽상가인지, 상상한 것을, 꿈꾸는 것을 실현화해낼 수 있는 인프라가 있는지 없는지 살펴보는 것이 필요할 것이다. 하지만 궁합이 짝짝 맞아들기 시작하면 다른 것을 따질 이유가 없다. 도드라져 보일 테니 말이다. 하지만 새로운 시대의 리더쉽을 재대로 보려면 좀 더 기다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안철수 교수님_04
안철수 교수님_04 by Jinho.Jung 저작자 표시동일조건 변경허락


 

예를 들어 문재인 의원이나 안철수 교수가 책을 쓰고 자신의 청사진을 제시하면 그것이 맞다, 그르다는 것을 따니는 것도 아니고 나는 이 사람을 지지한다는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바로 구시대적 반응이다. 물론 원텍스트가 이런 반응을 이끄는 면이 있다고 한다면 그 메시지를 던진 이들도 구시대적 인물이다. 어떻게 포장되어 있다고 해도 말이다. 새로운 시대의 반응은 이런 것이다. 각 영역의 실무자들이 이런 세상을 만들기 위해 이런 것이 필요하며 내가 혹은 우리가 이런 것을 충분히 담당할 수 있다는 반응과 더불어 소위 정치 평론가 혹은 인문학자들의 평론과 평가, 허황된 상상도 그저 예전부터 이야기되던 것을 반복한 것도 아닌 현실적이면서도 진보적 요소를 갖고 있는 것으로 이것은 기본적인 자유주의 사상에 해당하는 것이나 우리나라에서 존재한 적이 없었다라고. 비전을 밝히고 실무 진들이 그것의 현실성을 담보하고 지식인 집단이 그것의 사상적 의미와 필요성을 역설하는 삼각형의 반응이 있어야 완벽한 대세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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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SCN3313 by 2011 청년컨퍼런스 기획단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물론 비단 정치에서만이 아니다. 이제는 누가 어떤 꿈을 꿀 수 있는가가 가장 중요한 포인트이다. 바로 리더가 되기 위해서 말이다. 디지털 디자이너. 하지만 과연 현재 초중고 교육과 대학 교육을 통해 이런 디지털 디자이너를 키워낼 수 있을 지는, 참 궁금하다. 하지만 디지털 디자이너는 미래형이 아니라 현재형이라는 것이 가슴 아프다고 할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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