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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웅인가 배신자인가? 유시민론과 대선에서 통합진보당의 역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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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진보당의 내분이 이제 끝이 난 것처럼 보이지만 이렇게 서로 대립하고 있는 세력이 선거를 통해 서로 화합하게 된 경우가 있었는지 모르겠다.

 

제일 눈길을 끄는 것은 통합진보당의 당권이라는 것, 경기동부 주사파가 갖고 있어야 하는 것, 그 이유야 짐작이 되지만 아무튼 그렇게 소중한 당권이라는 것을 진보계에서는 어떤 기억에 의해 정말 다시 되찾고 싶었겠지만  진보신당이 아직 존재하고 있는데 자신의 세력에서 그랬겠느냐는 점과 참여계에서 과연 통합진보당의 당권을 노렸겠느냐 하는 점이다.

당권을 이런 식으로, 갈등 속에서 선거를 통해 차지하는 것이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하는 것이다.

앞으로 더 언급하겠지만 유시민 전 대표가 대권에 나서기 위해서 당권을 노린다는 말이 있는데 노무현 대통령이 서거하시고 2011년 초까지 야권의 지지 1위는 바로 유시민 전대표였고, 역할에 대해서는 논쟁이 있을 수 있으나 유시민 전 대표는 여전히 가치 있는 카드이다. 과연 참여계가 통합진보당의 당권을 노렸는지 안 노렸는지는 보면 알겠지만 어떤 이들에게는 소중한 것이 어떤 이들에게는 정말 의미 없을 수 있다.

 

이런 문제는 사실 언제나 나타나는 것으로 구의원, 시의원을 거쳐 지구당 위원장들은 자신들의 지역구를 관리하면서 총선을 준비한다. 그냥 기다리면 기회가 오는데 갑자기 합당을 하거나 하면 이 서열이 흔들이고 어떤 이들은 평생은 헌신하며 기다렸으니 모든 것을 상실한 기분이 들 것이다. 이해할 만하다.또한 학생운동 하면서 말 잘 들었던 이들, 외모, 스타일 등에서 젊은 느낌을 주는 이들은 서열을 무시한 새로운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는 희망도 날라 가버릴 수 있고 기타 관련된 사업체에 있으신 분들은 이제 실업자가 되는 것이 아닌지 에 질릴 수 있다.

 

그러니 이런 이들의 투쟁은 생존권 투쟁이다. 우리의 밥그릇을 건드리지 말라는.

그만큼 강경하고 처절하다.

 

이 강경하고 처절한 투쟁의 대상이 바로 유시민 전 대표가 있다. 통합진보당 게시판과 기타 인터넷 정치 토론 게시판과 일부 블로거들에게 유시민 전 대표는 거의 악마급이다. 저주에 가까운 비난 속에 있다.한때 인터넷에 이 모든 것이 다 노무현 때문이다라는 말이 유행했다. 어쩌면 이것의 패러디처럼 느껴진다. 이 모든 것이 다 유시민 때문이다?

 그런데 이게 통합진보당 안에서만 통용되는 말이 아니다. 야권의 어디에서는 마찬가지로 악마적 인물로 묘사된다. 

쉬운 예로 어떤 이들은 유시민 전 대표의 지지율과 비례하여 박근혜 의원의 지지율이 올라간다는 둥, 유시민 전 대표가 후보로 나오면 박근혜 의원이 필승이라는 둥,쉽게 유시민은 안 된다는 저주를 퍼붓고 있으며 어떤 이들은 야당 분열을 꾀하려는 한나라/새누리 당의 협작꾼이란 표현마저 한다.

 

만약에 유시민 전 대표가 부정선거를 뒤에서 조정했다거나 부실선거를 야기했다거나 하는 것도 아니다.

사실 유시민 전 대표는 특별히 한 일도 없다.

 

물론 야권에서만 그런 것은 아니다. 보수 세력에게도 유시민 전 대표는 공평하게 비판, 쉽게 까임을 당한다. 중앙일보에서는 정치인에게 사형선고와 같은 제목으로 사설을 발표한다.역사가 유시민을 거부한 이유라고. 여기서는 천안함에 대한 언급을 지적하며결과적으로 안보의식 때문에 낙선했다고 한다.

사실 이것은 정신 나간 소리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정치인 유시민에게 도지사가 그리 어울리지 않았다. 선거기간 동안 후보 유시민은 달변이었고 냉철하고 정확했다. 토론회 혹은 국회였다면 당연히 승리였겠지만 그 모습이 경기도지사 유시민과 겹쳐지지 않았다. 확실한 이미지 분석과 마케팅 전술 같은 것이 모자랐다. 한 야권연대의 철박함도 현재와는 달랐다. (이번 대선에서는 각 후보들이 확실한 이미지 메이커, 마케팅 전술가를꼭 두어야 할 것이다.이제 텍스트가 아니라 이미지의 시대이니 말이다.)

 

 

과연 유시민, 정치인 유시민에 대한 저주는 과연 어디서 시작한 것일까?


 

#1. 내 정치적 보스가 아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정치인 유시민을 폄하하는 가장 흔한 표현이 바로 싸가지가 없다는 것이다. 정치인 유시민는 한 번도 어떤 정파에 속해 보스를 섬긴 적이 없다. 이것은 사실 자신의 정치적 소견을 보스 등의 명령에 따라 굽히거나 취소한 적이 없다. 정치인이 자신의 정치적 사상과 정치적 의견 표명을 하고 토론 등을 통해 서로의 의견을 조정해 나가는 것이 정치의 기본이다. 하지만 보스정치에서는 이 의견 조정과 토론이라는 과정이 생략된다. 까라면 깠던 사람들에게 까라는데 안 까는 사람은 왕따의 대상이 되기 쉽다. 물론 언제나 그렇다고 할 수는 없지만 현재 민주통합당의 후보 경선에 나선 이들은 각각 그룹을 형성하고 뒤에서 지휘하는 실세가 없다고 하면 경선 후보를 중심으로 위계질서가 생기기 마련이다.

스스로 극복하려는 의지가 없다면 이것을 거부하기는 힘들다. 현재 새누리당의 경우 그 누구도 보스정치라는 것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고 보면 현재 새누리당에 유시민같은 정치인이 있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를 상상해 본다면 어쩌면 야권이 뭐랄까 확실히 더 관대하다고 할 수 있다. .  

결론적으로 보스도 정파도 없는 정치인은 기댈 언덕도 없고 쉴드 쳐주는 사람도 없다. 정치인 유시민의 말실수라고 하는 것과 여권, 신한국당, 한나라당, 새누리당의 의원들의 성희롱 발언 등을 비교해 본다면 그 수준의 차이를 알 수 있다. 자유주의적 사상을 기본으로 한 일관성 있는 말과 행동, 그리고 추접한 추문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것이다.

 

정치인 유시민의 시작은 아마도 1980515, 서울역 회군이라 부르는 서울역 집회일 것이다. 80년이란 이야기만 들어도 보통 광주가 떠오르게 된다. 역사에 가정을 하는 것은 그리 의미가 없다고는 하지만 만일 515일 모였던 약 10만여 명의 학생과 시민들의 시위, 독재에서 벗어나고 싶었던 사람의 외침이 계속되었다면 과연 신군부가 군사적 행동을 할 수 있었을까는 생각해볼 문제이다. 밝혀진 것에 따르면 윤보선 전 대통령과 DJ 그리고 함석헌이 공동의장이었던 국민연합에는 전국적인 시위를 기획했던 것으로 보이고 일부 정치 인사들은 대권의 꿈을 갖고 있던 때였다.

물론 유신 때부터 일명 충정부대라고 하는 대도시 소요, 시위사태를 대비하는 부대들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아주 개인적인 상상이지만 876월과도 같은 전국적 시위가 계속되었다면 신군부 또한 어찌하지 못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한다. 당시 학생 유시민은 해산에 반대하는 입장이었다고 한다.

이후 보통 서울대 브락치 사건이라 불리는 사건이다. 서울대 복학생협의회 간부이자 서울대 총학생회 대의원회의장이였고 이 사건에 관련하여 징역 1년형을 받았다. 당시 학생이었던 유시민의 항소 이유서는 아직도 명문 중 하나로 손꼽힌다. 물론 이 사건은 일반인, 84년 당시 방송통신대 학생이던 전기동씨를 학생들이 교내에서 폭행한 사건이다. 분명히 반성해야 하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것이 당시 공권력에 의한 일반 시민들의 억압을 긍정하지 못한다.

이후 언론인 등을 활동을 하다 2002개혁국민정당을 창당하게 된다. 이 개혁국민정당은 상당히 특이했다. 2002년 당시 한나라당의 이회창 당시 대권 후보는 부동의 1위였으며 2위는 정몽준 후보였고 민주당의 대통령 후보 노무현은 3위였다. 2위와 3위의 차이는 그리 크지 않았고 엎치락뒤치락했으나 전대협 의장 출신으로 서울 시장 선거에 출마하여 선전했던 김민석이 정몽준 후보 쪽으로 움직이고 이후 다양한 세력들이 이동할 것이라 짐작되던 때에 생긴 것이 바로 개혁국민정당이다. 노사모와 민주당 국민경선 당시 자원봉사단을 중심으로 생긴 정당이다. 이 정당을 통해 정치인 유시민이 탄생했고 백만민란, 혁신과 통합, 시민통합당을 만들어 민주통합당의 탄생에 앞장 선 문성근 고문도 개혁국민정당의 주역이었다. 여기서 응? 하실 분도 있고 이미 알고 있던 사실이지만 가슴이 아픈 분도 있을 것이다.

개혁국민정당은 국민참여 정당이었고 노무현이라는 정치인을 지지하는 것을 기본으로 했으며 구태정치에 대한 반동으로 생긴 정당이었다. 이 정당과 민주당의 세력이 합쳐져 열린우리당이 탄생했다. 열린우리당의 개혁적, 진보적 성향을 대표했던 것이 바로 개혁국민정당이었고 열린우리당의 한계라고 하건 참여정부의 한계라고 하건 열린우리당을 해체하고 구민주계 혹은 구DJ계 인사들과 함께 만든 정당이 대통합민주신당이다. 민주당의 좌향좌를 이끌었던 것이, 열린우리당의 탄생을 이끈 것이 개혁국민정당이었다. 그리고 공교롭게도 이 열린우리당의 우향우를 이끈 것이 구민주계, DJ계이며 이 대통합민주신당의 우향우의 마지막에 바로 손학규 전대표가 있었다. 이해찬 현 민주통합당 대표와 유시민 전 통합진보당 대표의 대통합민주신당의 탈당에 여러 가지 해석들이 있으나 이런 구조, 반복하는 진자의 움직임과 같은 구조로 본다면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현재 대통령 후보를 결정하는 과정에서는 민주통합당의 잠재적 갈등요소 또한 그리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사실 정치인으로서 노무현 또한 어떤 정파의 수장도 아니었고 어느 정파에서 정략적으로 키운 정치인도 아니었다. 구태여 말을 하자면 YS에게 픽업되어 민자당으로의 3당 합당을 비판한 후 한 번도 순탄한 길을 걸은 적이 없다. 통일민주당 잔류파와 평화민주당(신민주연합)이 합당하여 통합민주당이 창당되었고 여기에 소속되어 있다가 DJ의 복귀로 새정치국민회의가 창당되자 여기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런데 통합민주당이 민자당과 합당하여 신한국당이 창당되자 정치적 낭인생활을 하다 95년 새정치국민회의에 입당하게 된다.

 

정치인으로 유시민의 행보와 노무현의 행보는 겹치는 부분이 있다. 물론 같다고는 할 수 없지만 말이다. 양당체제로 굳어가는 과정에서 항상 고민을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2011년 초반, 정치인 유시민은 야권의 잠재적 대권후보 중 1위의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었다. 물론 현재도 그렇고 그때도 그랬던 박근혜 의원의 지지율에 비하면 초라하지만 말이다. 하지만 정치인 유시민은 왔다 갔다 하던 진자의 움직임에서 벗어났다. 이것은 사실 어떤 실험이다. 양당이 체제가 아닌 구조, 정치적 신념과 비전이 확실한, 그래서 보스가 아닌 사상과 정책으로 움직이는 정치가 가능할 것이냐는 질문에 사실 그 누구도 쉽게 그렇다고 대답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이 길은 상당히 어렵고 힘든 길이 될 것이다. 사실 현재 유시민 전 통합진보당 대표는 아무런 현직 타이틀이 없다. 또한 현재 통합진보당의 천호선 최고의원은 손바닥TV에서 참여당이 유시민이란 정치인을 중심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다. 다시 말해 현재 참여계의 정치적 보스가, 적어도 우리 정치역사에서 존재했던 보스가 아니라고 말했다.

 

한때 양김이라는 단어는 구태정치의 의미하는 단어였다. 이렇게 표현한다면 이견이 있을 수 있으나 보스정치는 마피아 패밀리 정치와 같은 의미일 것이다. 어느 쪽에서는 마피아 패밀리 정치를 지향하고 어느 쪽에서는 지양한다. 마피아는 보스부터 말단까지 확실한 위계질서가 있다. 정치인 유시민에 대한 다양한 비난과 비판은 이런 위계질서에서 벗어나 있음에서 비롯된 것이 많다. 그래서 그 비난과 비판의 대부분이 싸가지 없다거나 '밉상'이라는 태도에 대한 것 혹은 감정적 부분에 집중되어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좀 다르다. 본인이 원하건 원하지 않건 작게는 참여계와 크게는 통합진보당의 중심, 쉽게 보스이며 야권의 비중 있는 정치인 중 한명이다.

그런데 빠진 부분이 있다. 비난, 비판보다 더 안 좋은 것이 바로 실패패배의 아이콘 혹은 분열해체의 아이콘이라는 것이다.



 

2002년 개혁국민정당 발기인 대회에서 문성근 현 민주통합당 고문의 연설.문성근이란 배우이자 정치인은 중요한 순간에 등장하여중요한 역할을 해온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10다.  

 




http://ko.wikisource.org/wiki/유시민의_항소이유서

명문으로 알려진 항소 이유소 전문이다.

 



#2 갈 길은 멀고 길은 막혀있고 약속 시간은 다가오고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080110114311674&p=ohmynews

 

http://media.daum.net/politics/assembly/view.html?cateid=1018&newsid=20080116123104418&p=hani

 

이해찬 현 민주통합당 대표와 유시민 전 통합진보당 대표의 대통합민주신당의 탈당관련 뉴스이다. 이해찬 현 대표가 친노계 좌장급인 것도 사실이고 한명숙 전 대표가 친노계 좌장인 것도 사실이다. 또한 친노계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정치적 성향 또한 개혁적 성향이라는 데에는 다들 무리 없이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진보냐 아니냐라는 논쟁에 들어가면 반응들이 제각각이다. 그런데 잘 생각해보면 맑시즘에 기반을 둔 정치적 사상을 갖고 있어야만 진보라고 볼 수 없다. 피아의 구분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사상 논쟁을 하는 것은 써클 수준의 문제이다. 개별적인 사항에 대해 합의할 수도 있고 연대할 수도 있고 서로 경쟁할 수도 있는 유연한 태도가 대중 정치인에게는 필요하다. 물론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밝히고 주권자인 국민이 거기에 동의하도록 설득하는 것도 정치인의 의무 중 하나이며 주권자의 국민의 이익을 위해서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양보할 수도 있어야 하는 것이 대중 정치인이다. 또한 선거를 통해 한 걸음씩 나가는 것이 바로 대중 정치의 기본일 것이다.  

 

쉽게 당원과 지지자들에게는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밝히고 동감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일반 국민들에게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물론 중요하게 생각해주면 정치인에게는 아주 좋은 일이다. 노골적으로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밝힐 수 있는 기회이기 때문이다. 이런 면에서 저술가로서 유시민이 존재하기 때문에 대중적으로 자신의 비전이 가장 잘 알려진 사람이 바로 정치인 유시민이다. 하지만 대통합민주신당을 탈당한 이후의 정치인 유시민은 가시밭길이었다.


http://book.daum.net/search/bookSearch.do?query=%EC%9C%A0%EC%8B%9C%EB%AF%BC

저술가 유시민이 쓴 책들. 양도 양이지만 주제도 다양하다

   

첫 번째가 여전히 그 목적이 의심스럽다고 하는 대구 수성을 출마이다. 무소속으로 출마했고 낙선했다. 32.6%의 지지를 받았으나 보수적 성향이 강한 대구에서 당선되기는 쉽지 않다는 것을 누구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이 부분을 비판하는 많은 사람들은 정치인 유시민의 노무현 따라하기라고 말한다. 물론 그런 부분이 없다고 볼 수 없다. 대구에서 출마를 결심했다는 자체가 대단한 것이었다. 사실 부산보다 대구에서의 승리, 그것도 야권의 비중 있는 정치인인 유시민이 당선되었다면 그것은 굉장히 상징적인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 당선될 것이라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을 것이다. 2008년은 대통령이나 한나라당이나 대단한 지지를 받던 때이고 당시 주호영 당선자는 65% 이상의 지지를 받았다. 하지만 더 비판받는 부분은 대구를 자신의 정치적 기반으로 하겠다는 약속을 뒤로 하고 2010년 경기지사 선거에 후보로 나선 것이다. 그렇다면 대구 출마는 과연 그저 정치적 쇼이며 노무현 코스프레였을까? 사실 유권자들은 어떤 배신감을 느낄 수 있고 정치인 유시민은 이 부분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빤히 보이는 일을, 그것도 정치인이 했을 때는 우리가 쉽게 상상할 수 있는 이유 탓이 아니다. 이미지가 중요한 정치인이 왜 스스로 자신의 이미지를 망치는 길을 선택하겠는가? 거기엔 다 그만한 이유가 있거나 아니면 머리가 정말 나쁘거나 정도의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다. 일단 그 사이 참여당이 생겼고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이 그렇게 서거했다. 상황이 많이 바뀐 것이다. 일일이 다 언급할 필요는 없겠지만 여러 가지 책임 속에서 정치인 유시민은 여기서부터 진짜 시작이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0875553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336094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10100112122147&Section=01&page=1

 

20106.2 지방선거는 야권의 승리라고 해도 좋지만 정치인 유시민은 낙선했다. 19만표 차이로 졌는데 특이한 것은 18만표 이상의 무효표가 있었다는 것이다. 물론 여러 가지 언급할 만한 사항들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2011년 초중반까지 약 10-15% 정도의 지지율을 보이던 야권의 대표 대선 후보였다는 것과 서울 경기 지역에서 야권이 우세했다는 것을 감안하면 선거 결과는 시사하는 바가 점이 분명히 있다. 정치인 유시민의 성장과 당시 참여당의 성장은 새로운 지지 세력을 얻어 야권을 확장시키는 것이 아니라 야권의 지지가 나누어지거나 빼앗길 지도 모른다는 것으로 믿었던 이들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물론 이것 또한 민주당에서 열린우리당으로의 이동이 다시 있을 수 있으며 다시 권력 혹은 패권에서 소외될 수도 있다는 공포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현재 진자의 움직임은 다시 반대로 와서 현재 민주통합당의 분위기는 친노세력이 더 강한 듯 보이기도 하지만 말이다.

여기에 결정타가 있다. 바로 김해을 재보궐 선거에서 이봉수 후보를 야권 단일 후보로 내세웠다. 그리고 패배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출신지역이라는 상징성이 있는 지역에서 유시민의 참여당 후보가 패배했다는 것은 사실 상당히 뼈아픈 것이었다. 사실 참여당에 입당한 이후 계속 되는 대통합민주신당에 대한 비판, 호남지역주의와 중도 보수적 정치성향의 비판으로 인해 어느 정도 각이 서있는 상태에서 경기도지사 선거 낙선 후 어떤 감정적인 골이 있었으며 그것이 김해을 재보궐 선거에서 오히려 깊어졌다는 것이 중론이었다. 선거 결과는 선거결과이다. 하지만 생각해볼 것이 있다. 나꼼수에서 주진우 기자는 대체 민주당은 뭐하는거냐? 가카의 은혜가 없었다면 이미 가루가 돼서 없어졌을 것이다.라는 다분히 자극적인 멘트를 자주 날렸다. 당시 대통합민주신당에 대한 강렬한 비판을 던진 이는 거의 없었다. DJ에 대한 저술가 혹은 언론인 유시민의 비판과 같은 맥락으로 민주당에 대한 비판은 당연히 누군가는 해야 할 것이었다. MB 정권에 반대하지 않았다고 박근혜 의원을 비판하기 이전에 민주당 국회의원들은 스스로 방치한 것이 없는지 방조한 것은 없는지 돌아봐야 했었다. 당시 민주당의 무능이 결국 야권의 대통합을 필요하게 한 것이다. 민주당이 마치 큰형처럼 다른 야당들을 받아들이고 함께 갈 수 있었다면 그런 비판은 아무런 의미를 갖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정치인 유시민 혹은 참여당의 유시민의 비판만을 꼬집어 분열적 책동이라 몰아붙이는 것은 사실 이해하기 어렵다.

 

http://media.daum.net/society/others/view.html?cateid=1067&newsid=20110418132532702&p=sisain

http://www.poli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38552

http://media.daum.net/politics/others/view.html?cateid=1020&newsid=20100118161913630&p=yonhap

 

 

어찌되었건 참여당과 정치인 유시민의 첫 번째 모험은 다 실패로 끝났다. 대한민국에서 정치적 보스도 없고 지역적 기반도 없는 정치인과 정당이 성공할 수 있는 가능성이 그리 높지 않음을 보여준 것이다. 개중에 정치인 유시민을 대통령병에 걸린 정치인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 적어도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정치인 유시민이 대통령병의 중증은 아니라는 것이다. 만일 대통령병에 걸린 정치인인데 이런 정치행보를 보였다면 즉흥적이고 감정적인 사람이거나 대통령이 되고 싶지만 대통령 되는 것이 무서운 복잡한 심리를 지닌 인물일 것이다. 대통령이 되는 것은 모든 정치인들의 꿈이라고 하지만 자신의 정치적 목표가 스스로 대통령이 되는 것인 사람은 누구나 알 수 있고 볼 수 있는 진자의 움직임을 타고 놀면서 날카로운 비판은 참고 두루뭉술한 이야기만 하고 정적은 될 수 있는 데로 만들지 않으며 무엇보다 확실한 정치 보스 밑에 들어가 딸랑거리다가 후계자가 되는 것일 것이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적어도 정치인 유시민은 그런 길을 가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또한 그는 정치 데뷔한 이후 자유주의자, 개혁적 혹은 진보적 자유주의자이지 않았던 적이 없다. 자신의 정치적 신념을 포기하지 않고 지켜나가는 것, 정치적 낭인이 되어 누가 봐도 다른 정치적 보스에게 기대야 하는 상황, 쉽게 머리를 숙여야 하는 상황에도 오히려 저 진보적인 방향으로 나가는 정치인 유시민70년대 말과 80년대를 살아간 정치인들, 특히 운동권 출신 정치인들에게는 상당한 밉상일 것이다. 가장 쉬운 1차적 반응이 너만 잘났냐!일테니 말이다. 물론 모든 것을 이렇게 볼 수는 없다. 시 말해 실수가 전혀 없었다고 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현재 인터넷에 떠도는 노골적인 비난과 거리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이런 점에서 정치인 유시민은 항상 청년의 이미지가 있다. 쉽게 권위의식이 없다는 것이다. 그것이 자유로움과 가벼움으로 동시에 표현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 기대하는 것은 현재와 미래이다. 권위의식이 없는 정치적 보스의 모습. 누가 뭐라 해도 정치인 유시민은 이제 한 계파의 보스급 정치인이다. 진보적 자유주의자의 면모가 정치적 보스의 자리에서 어떻게 표현될 지 참으로 궁금하다.

 

통합진보당 사태를 놓고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었다. 한 가지 확실한 것은 그 어떤 정당도 비례대표 경선을 선관위에서 하듯 정밀하고 공정하게 관리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또한 결과가 웬만하다는 것, 특별한 이변이 없다는 것도 여러 특징 중 하나이다. 당원도 아니던 관련업체의 사장이 정당 가입 3달 만에 비례대표 1위를 한다거나 대학시절 총학생회장과 한총련 의장 후보가 경력의 전부였다가 약 10년 만에 한총련보다 더 작은 모임은 한 대련의 집행부에서 활동한 이가 43%가 정도의 지지를 받았다는 것은 적어도 대중적 지지에 의한 결과는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과거가 아닌 미래를 이야기한다면, 통합진보당은 3-5정도의 정책 연대를 민주통합당의 경선 후보와 하는 것이 스스로 후보를 내기 위해 경선을 하는 것보다 좋을 것이다. 어쩌면 통합진보당의 대통령 후보 경선은 국민들의 냉소와 실소 속에서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 사실 유시민, 심상정, 노회찬 그리고 이정희까지 통합진보당에서 후보 경선에 나올 것으로 예상되는 정치인 중 여당의 눈으로 보면 그 누구 하나 부담스럽지 않은 정치인이 없다. 하지만 현재 통합진보당의 상황, 이석기, 김재연 의원의 제명도 쉽지 않을 것이고 당의 혁신 프로세스 또한 그리 쉽지 않을 것이다. 또 기타 진보적 정당들과의 통합 또한 쉽지 않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대권 후보를 정한다고 경선을 하게 되면 그 자체로 우스워질 수 있으며 보수 언론들은 그렇게 만들기 위해 많은 짓거리, 전략 등을 짤 것이다. 그래서 몇 가지 정책을 비롯하여 일부 연정을 약속받고 경선 결과가 나오기 전에 한 후보를 지지하는 2002년 개혁국민정당과 비슷한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방법일 것이다. 남이 아쉬울 때 먼저 지원하고 자신의 지분을 인정받는 방법이 있을 것이다. 이 과정에서 ‘2050 대한민국 플랜등과 같은 시기별 과제들을 나열하고 해결해나가는 시간표를 제시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5년 안에 핵심적이고 필수적으로 해결하는 과제들에 대하여 공감하므로 지지한다는 것은 유권자들에게도 상당한 공감과 지지를 받을 것이다.

또 한 가지 방법은, 아마도 꼼수라고 할 수 있는데 최대한 후보결정을 늦추는 것이다. 확언할 수는 없지만 민주통합당의 후보와 안철수 교수와의 단일화 과정에 통합진보당의 대통령 후보가 결정된다면 시너지라는 차원에서 단일화 회담에 들어가고 먼저 통 크게 먼저 양보한다면 그 반대편이 계속 출마를 고집하기 쉽지 않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캐스팅 보드를 쥐는 것이 될 것이다. 또한 10월 혹은 11월이 되면 여야 후보 간의 차이가 오차 범위 안으로 들어올 가능성이 높다. 야권의 3명의 대선 후보가 여론 조사도 아니고 서로 회담을 하고 2명이 한 명에게 양보하는 그림이 나온다면 10.26 재보궐 선거의 감동을 충분히 능가할 것이다. 드라마틱함은 후자 쪽이 더 강할 테지만 진정성은 전자, , 스스로 대권후보를 포기하고 민주통합당의 후보를 직접 지원하는 것일 것이다.

또한 현재 민주통합당에는 이해찬대표, 박지원 원내대표 이렇게 원투펀치가 있지만 비중 있는 저격수들도 눈에 안보이고 비중 있는 저격수가 출마를 준비하고 있고 이런 상태이다. 그러므로 통합진보당의 유시민, 노회찬, 심상성 황금의 삼각편대가 저격수를 자청하고 나선다면 재벌쪽도 정부 여당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정권교체를 위해 낮아지고 희생하고 최전선에서 열성적으로 싸운다는 것이 바로 진보정당에 국민이 기대하는 것 아니겠는가? 사실 개인적으로는 이런 모습을 기대한다.

 

사족: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경선 부정 및 부실에 대해 정치인 유시민의 작품이란 설이 인터넷에 횡횡한다. 뭐 그렇게 보일 수도 있다. 유시민이 박무를 시켜 조사위를 꾸렸고 결과 발표를 이석기에게만 맞춰 통진당이 회생불능이 되었다...는 시각이 있다.

 

http://www.parkbongpal.com/bbs/board.php?bo_table=B01&wr_id=208113

 

정치인 유시민이 이 모든 것을 주도 했다면 그는 이미 실세이다. 조준호 전 대표와 민노청, 그리고 진보신당 통합파마저 자신의 밑에 둔 것이다. 여기에 소위 혁신파라는 자주파 세력까지 확실하게 지분 50%를 넘게 가진 것이다. 그런데 몇번을 강조했지만 정치인 유시민이 과연 그런 모략과 전략 간계 등을 사용하여 통합진보당, 혹은 여러 게시판에서 말하는 민주노동당, 그것도 진보신당과 분리된 민주노동당의 당권을 탐내겠는가? 그런 권력이 탐났다면 문성근 고문과 이해찬 대표와 함께 민주통합당에 참여하고 그곳의 당권을 탐내지 않았겠는가? 대표는 되지 못했을 것이라 해도 대표 최고의원은 되지 않았겠는가? 또한 대권 출마를 하지 않는다고 해도 친노계, 민주계 등 각 대권 후보들에게 확실한 꽃놀이패가 되었을 것이다. 서로간의 갈등을 해소한 후보? 미래를 위한 확실한 화합적 결합, 뭐 이정도의 이미지로 말이다. 이런 과정에서 참여계의 지분을 확보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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