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젠장 내가 찍은 사진들이나 내가 찍은 것 같지가 않다. 마추핏추의
좋은 앵글은 이제 공식이 되었다.비수무리한 사진들이 너무 많다.]
마추피추의 미스테리는 무엇인가 ??
이번 여행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콜롬비아 뻬루의 국립도서관에서
그 해답을 찾을 수 있었다.
그것은 바로 ....
누가 언제 왜 만들었는지 모른다는 것이다.
(이게 A급 미스테리가 되나 ??)
마추피추가 누구에 의해 언제 발견되었는가 하는 것은 인터넷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정보이다.
마추핏추의 성립연대 또한 기원전 2000년설부터 잉카설까지
다양하다. 확언할 수 없으나 잉카인들이 만들지 않은 것은
확실하다. (잉카는 16세기까지 존재했던 나름 근대적 문명 혹은
국가이다)
마추핏추의 특징은 남북으로 높은 봉우리가 감싸고 있어
주변산 정상에서도 이 곳은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숨어있기 좋은 곳이란 이야기인데 ...
이런 곳에 만여명이 거주 가능한 공간을 만들었다는 것은
분명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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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려고 만든 것이다. ^^ 죽으려고 만들리는 없으니 말이다.
마추핏추의 구조를 자세히 보면 마치 분지와 같은 산정상에
계단형의 성벽을 쌓고 그 위에 집을 짓고 밭을 갈고 마치
신전이 아니라 교회와 비슷한 규모의 뭐 ...신전도 만들었다.
[마추핏추의 태양의 돌, 저 주변이 신전이란다. 떼우띠와깐
생각하면 참 ... 민망한 태양의 신전이다.]
계단형 구조의 성벽은 직접 본 결과 두 가지 결론 외엔 없을 듯
하다. 아래도 말한 것 처럼 사상누각 뻬루의 특성상 산사태
방지를 위해 쌓았다고 볼 수도 있고 군사적 이유로 쌓았다고
볼 수도 있다.
사실 개인적으로는 둘 다 큰 이유가 되었을 것으로
본다. 산사태 방지용 치고는 상부가 하부보다 더 견고하고
더 큰돌로 구성되어 있다는 것도 단지 산사태 방지만을 위한
것이 아니란 것을 짐작하게 만든다.
계단형의 성벽은 기어오르는 적들을 관찰하기가 용이하며
위에서 돌과 기타 무기들을 던지는 것만으로도 유효한 공격이 되며
최후의 경우 상부의 거석을 굴리거나 하는 공격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오얀따이땀보의 유적. 여기서 계단형 성벽의 용도를 더 확실하게
짐작할 수 있다. 마추핏추보다 보존상태가 좋은 이 유적은
북서쪽을 등지고 분지를 내려보고 있다. 해가 뜰때도 질때도
확실하게 계단형 성벽을 타고 올라올 적들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하지만 정말 희한한 것은 벽돌을 사용했다는 것이며 거의 완벽에
가까운 조합을 보인다는 것이다.
[이곳의 유적 보존 상태가 더 좋다. 특히 사람보다 훨씬 큰
거석이 성벽 정상에 서있으며 이런 거석을 이용해 작은 성(?)과
같은 구조물을 만들어 놓았다.]
마추핏추는 사실 지진으로 인해 그 모습이 예전과는 약간의
차이가 있다. 멀리서 찍은 사진으로 보면 잘 모르지만 가까이서
보면 뻬루 현지인들의 유적 복구란 정말 조잡하기 그지 없다
[오른 편의 구조물이 고대인들(?)의 것이고 왼편의 것이 뻬루 혹은
잉카인들의 것이다. 정말 ... 문자 없는 탓인가 ..?? 조잡하기 그지
없으며 그저 돌담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왼쪽과 완벽한 구조의
오른쪽, 교류와 경쟁이 없는 문명은 퇴보한다는 좋은 증거이다.]
자연석을 이용한 벽돌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 사진을 한잔 더
추가한다.
[마추핏추 가는 길에 찍은 사진으로 저런 돌의 갈라짐을 이용하여
저 구조를 살려 벽돌을 만든 것이다. 근데 돌에 파란 빛이 도는
이유는 플레쉬때문인 듯 하다]
오얀따이땀보와 삐삭 등 쿠스코 근처의 유적들을 보고 나서
마추핏추를 보는 것이 좋고 이런 곳들은 걸어서 돌아보는
잉카 트레일이 마추핏추 지역을 여행하는 가장 좋은 방법일 것이다.
다만, 너무나 많은 구라와 바가지 요금은 정말 사람 짜증나게
한다. 이 지역에서 뻬루사람이건 한국사람이건 이들이 하는
유적에 대한 설명은 반 정도 접고 들어가야 한다.
대표적으로 마추핏추는 여성들만이 살던 도시이다 뭐 아틀란티스의
후예이다 등등 이런 말들은 전부 구라이다.
또한 이들 유적들을 잉카와 스페인 군대의 전투에서 잉카인들이
사용한 것이 사실이긴 하다. 하지만 그것은 우리 역사에서
요동성과 비슷한 것이다. 철옹성으로 알려진 요동성은 고구려
패망이후 당, 거란, 몽고, 여진, 청, 발해, 등등이 사용하였다.
(고려말에 이성계의 군대가 잠시 정복한 적도 있다)
만든 것은 고구려인들이지만 사용한 이들은 다양하다.
즉, 이용했다고 그것의 건축방법과 그 비밀을 아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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