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멕시코시티, 섬에서 육지로 그리고 이후엔?

Latin Feel/역사 이야기

by Deko 2013. 12. 14. 11:52

본문













멕시코시티, 섬에서 육지로 그리고?

 


 

     치수(治水)는 고대로부터 문명이 태어나는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로마는 그 수로로 완공되면서 그 위대한 전설이 시작되었으며 마춧핏추 또한 안정적인 수원(水原)을 확보함으로 인해 공중도시로 탄생할 수 있었다. 또한 아시아에서 황하(黃河)의 치수는 대대로 중국의 중요한 문제였다. 우리나라 또한 치수에서는 둘째가라면 서럽다고 할 수 있다. 삼한시대부터 우리 선조들은 저수지를 만들어 안정적인 농업을 도모했다. 하지만 치수가 그 어떤 것보다 중요했던 곳이 바로 아쓰떼까Azteca 문명의 떼노칫뜰란tenochtitlan, 현재의 멕시코시티이다. 아쓰떼까의 수도로서 떼노칫뜰란은 사실 대도시의 입지여건이란 관점으로 보면 그렇게 매력이 없다. 멕시코 계곡에 자리 잡은 호수의 한 섬에 도시를 만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쉽게 자연 해자(垓子)를 가진 천혜의 요새라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제국의 수도로서 떼노칫뜰란은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홍수였다.



 

떽쓰꼬꼬 호수의 물은 염분이 함유되어 있어 생활용수로 적합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치밀꼬 호수의 물은 담수이며 상대적으로 맑았으나 식수로는 그리 용이하지 않았다. 색으로 구분된 호수를 가르는 것이 네싸우알꼬요뜰Nezahualcóyotl이 만든 것으로 알려진 인공제방이다 



 

     멕시코 계곡의 호수는 호숫물이 빠져나갈 곳이 특별히 없었다. 그래서 홍수가 나면 자연스럽게 수위가 올라가고 평상시에는 일정한 수위를 유지하는 호수였다. 떼노칫뜰란에 수도를 정한 이후 아쓰떼까는 몇 번의 홍수를 겪게 된다. 특히 부족에서 도시국가로 그리고 도시 국가에서 제국으로 발돋움하려던 목떼수마 1세때 큰 홍수를 겪으면서 도시는 완전히 물에 잠기게 된다. 군사력으로는 주변에 경쟁상대가 없었으나 강력한 군대로도 대자연의 힘 앞에선 어찌할 수 없었다. 제국으로 성장하려던 길목에서 아쓰떼까는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사실 치수(治水)는 아쓰떼까의 지상과제와도 같았다. 물은 사방에 있었으나 염수(鹽水)이기에 식수로 사용할 수 없었고 식수의 부재가 아쓰떼까를 정복제국으로 성장시킨 원동력이었다. 그들은 비슷한 시대의 알함브라 궁전의 수로와 비교될만한 수로(水路)를 건설했다. 약 4.8km에 달하는 수로는 자유낙하 에너지만 사용했음에도 불구하고 떼노치뜰란 도시 중앙의 분수에서 물이 뿜어져 나왔고 도시의 저수지를 채웠으며 모든 시민들이 불편하지 않게 물을 사용했다. 도시에 목욕탕이 발달한 것으로 미루어보면 아쓰떼까는 생활용수 문제를 훌륭히 해결했던 것으로 보인다. 아쓰떼까의 생활용수의 문제, 다시 말해 수로를 건설한 인물이 라틴 아메리카 역사상 최고의 건축가 중 하나로 손꼽히는 네싸우알꼬요뜰Nezahualcóyotl이었다. 그는 아메리카 대륙에서 가장 거대한 토목 공사를 기획한다. 1449년 바로 남과 북으로 호수를 구분하는 16km에 달하는 인공 제방을 만든 것이다. 또한 제방 중간에 개폐할 수 있는 수문을 만들어 수위 조절도 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홍수 대비뿐만이 아니라 염분이 함유된 물을 막아 안정적인 용수를 확보할 수 있도록 했다. 이로 인해 떼노치뜰란 주변에도 치남빠스Chnampas를 만들어 안정적인 식량 공급이 가능하게 되었다.



 

1628년 후안 고메스Juan Gomez가 그린 멕시코 시티의 모습. 위에 보이는 것이 인공제방이다. 그림에서 사선으로 나있는 것이 배수를 위해 만든 인공 수로이다.




     하지만 홍수와 범람은 멈추지 않았다. 엘니뇨현상 혹은 그와 흡사한 기상 이변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아마 아쓰떼까는 세기말적인 공포로 가득했으며 이때에 인신공양 또한 거기에 비례하듯 횡횡하게 된다. 1502년 홍수로 도시의 대부분이 침수되고 황제마저 대피 중 사망하게 되면서 상황은 절정으로 치닫게 된다. 다행이 호우도 그치고 도시는 다시 예전의 모습을 되찾았지만 인신공양을 비롯한 세기말적인 공포는 아쓰떼까를 떠나지 않았다. 그때, 꼬르떼스를 비롯한 스페인 세력이 떼노치뜰란에 도착하게 된다. 스페인과 아쓰떼까의 전투는 말 그대로 전면적이었다. 특이한 것은 꼬르떼스가 전투선을 건조하여 해전을 펼쳤다는 것이다. 해발고도 2200미터에서 벌어진, 세계 최고 높이에서 벌어진 해전일 것이다. 하지만 이 전쟁으로 인해 아쓰떼까는 멸망했으며 네싸우알꼬요뜰이 건설한 제방도, 수로도 이 전쟁으로 인하여 모두 파괴되었다. 도시는 마치 아쓰떼까 제국 이전의 모습으로 돌아간 것 같았다.

 

     이후 스페인의 식민시대를 겪으며 누에바 에스빠냐 부왕청은 유럽풍의 도시를 건설했고 홍수를 예방하기 위해 일부 제방을 건설하기도 했지만 그 규모는 그리 크지 않았다. 1551년 제방이 재건되고 홍수를 통재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1555년, 1579년 대규모의 홍수가 있었고 도시는 다시 물에 잠기고 말았다.

 

     1607년 엔리꼬 마르띠네스Enrico martinez에 의해 최초로 지하 터널을 통해 인공적인 배수 공사가 있었고 홍수는 어느 정도 통제될 것으로 보였다. 이 공사는 17세기에 이루어진 토목공사 중에서 손꼽히는 것이었지만 완료된 것이 아니었다. 이 공사는 18세기 중반까지 계속되었으나 홍수는 공사가 끝나기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1629년 대홍수로 이후 5년동안 도시는 침수되어 있었으며 1637년 홍수로 3만 명 이상의 사상자가 발생하기도 했다. 1697년 그리고 1707, 1714, 1764, 1792, 1795년에 홍수가 발생했고 도시는 언제나처럼 침수되었다. 또한 특이하게도 1785년과 1786년에는 사상 최악의 가뭄이 발생하기도 했다. 18세기 후반에는 홍수와 가뭄이 번갈아 일어나 멕시코시티는 자연재해로 고통 받았다.



 엔리꼬 마르띠네스가 배수 작업을 위해 당시 사용하던 지도

 



     1789년 노치스똥고Nochistongo의 계곡에서 계속되던 배수로 공사가 드디어 완료된다. 1795년 다시 대홍수로 도시는 물에 잠기게 된다.

     1856년 대규모 운하 공사와 떼끼스끼악Tequixquiac 터널 공사가 시작되게 된다. 하지만 근대사의 혼란으로 인해 공사는 지지부지 하게 된다. 이후 정권을 잡은 것은 스스로 과학자라 부르던 뽀르피리오 디아스Porfirio Días였다. 공사의 결과로 1897년 멕시코시티의 생활하수는 떼끼스끼악 강으로 배수되게 된다. 1912년부터 1932년까지 배수는 계속 된다. 호수가 마르자 상당한 부분이 사용할 수 있는 토지로 전환되었다. 20세기 초에서야 비로소 현재 멕시코시티의 모습과 흡사한 대도시가 형성되게 된 것이다. 1938년 떽스꼬꼬지역에서 멕시코시티 중심가 사이의 지역 빠사헤 데라 비가Pasaje de la Viga 지역이 사용할 수 있는 토지로 전환된다. 1950년 다시 대홍수로 도시의 2/3지역이 침수되게 된다. 1954년 두 번째 떼끼스끼악 터널이 완공된다. 이 공사로 인해 조그만 강 혹은 개천으로 흐르던 추로부스꼬Churubusco, 레메디오스Remedios, 꼰술라도Consulado과 삐에닷Piedad이 말라버리고 후에 도로로 만들어져 이름만 남게 된다. 1967년 심층배수공사가 시작된다. 이 공사는 1975년에 완공된다. 이후 막달레나Magdalena, 믹쓰꼬악Mixcoac, 따꾸바야Tacubaya와 온도Hondo 강이 말라버리고 길과 거리로 건설되어 역시 이름만 남게 된다.




1944년 완전히 침수된 소깔로 지역의 모습, 잡지에 실린 사진이다.



현재 남아있는 떼끼스끼악 터널의 배수로 모습. 배수되어 나오는 쪽의 모습이다.

 



     이렇게 배수 공사는 끝이 난다. 현재 멕시코의 모습이 갖추어진 것은 40년도 되지 않는 것이다. 하지만 이 대공사는 호반(湖畔)의 도시를 건조한 도시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이후 아쓰떼까의 아름다운 호반 도시는 세계 최고의 대기오염 도시라는 타이틀을 차지하게 되며 도시 건조화 사막화는 매년 가속도가 붙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도시는 사막화가 계속되지만 그렇다고 홍수가 끝난 것도 아니었다.

   1998년 홍수로 꽈히말빠Cuajimalpa과 밀빠 알따Milpa Alta 지역이 침수되었고 1999년 꽈우떼뻭Cuauhtepec강이 범람하였다. 2000년과 2002년 익따빠루까Ixtapaluca와 찰꼬 Chalco 지역이 홍수로 침수되었다. 2004년 후아레스 국제공항이 침수되었다.

 

     또한 2010년에는 대규모의 홍수와 침수가 멕시코 주(州) 지역에서 일어났다. 하지만 2010년의 홍수는 상황이 좀 달랐다. 호수를 물을 배수했던 터널로 빗물이 원활하게 빠져나가지 못하기 시작한 것은 꽤 되었고 일부 멕시코 주지역과 멕시코시티의 일부지역은 집중호우 혹은 스콜을 연상케 하는 게릴라성 폭우가 내리면 많은 곳이 침수되곤 했지만 2010년의 홍수는 그 규모가 달랐다. 2011년 3월 8일 펠리페 칼데론 대통령은 멕시코 주(州)에 새로운 배수 파이프를 건설한 것이며 여기에 수백억의 멕시코 페소를 투자할 것이라 밝혔다. 하지만 문제는 그저 배수 파이프를 만드는 것으로 해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멕시코시티의 물 문제는 이렇게 모순적이다. 가장 큰 문제는 아쓰떼까가 겪었던 것과 똑 같은 생활용수의 부족이다. 단 34%정도의 생활용수가 강에서 공급된다. 하지만 100km정도 떨어진 수원에서 수돗물이 취수되어 여러 번의 펌프로 멕시코시티에 이르게 된다. 나머지 66%의 수도는 지하수를 이용하고 있다. 지하수의 경우 석회질이 함유가 놓아 사실 생활용수로 그리 적합하지 않다. 또한 물 소비는 지반 침하를 야기한다. 지하수가 있던 공간이 비어버림으로 해서 지반은 침하되고 있고 지반이 약화됨으로 인해 일부지역은 지진 등의 재해에 치명적인 위험에 노출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현재 다양한 정보들이 있으나 대통령 연설에 의하면 10년에 1미터 정도 가라앉는다고 하지만 멕시코시티 동부와 멕시코주(州) 동부지역 등은 2년 반 정도에 1미터 정도가 가라앉고 있다고 한다. 10년 동안 4미터 아래로 가라앉는다는 것은 상당한 수준의 차이이다. 이런 상황에 변화가 없다면 가까운 미래에 어떤 일이 생길지 그 누구도 쉽게 예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지반 침하는 결과적으로 처음 만들어진 배수 파이프로 중력에 의해 자연적으로 배수가 될 수 없음을 의미한다. 멕시코 고산 지대의 계곡에 비해 멕시코시티와 그 주변 지역의 고도가 낮아졌기 때문이다. 멕시코시티와 멕시코 주는 마치 거대한 찻잔처럼 생활하수는 배수되지 못하고 고여 가며 부패하고 있고 여기에 비례하듯 수도 사업국CONAGUA은 새로운 수원(水原)을 찾아야 하며 일부지역은 건조기에 아예 수도가 끊기거나 오염된 지하수를 수돗물로 사용해야 하는 상황이 생긴다. 수돗물에서 악취가 나거나 검은 물 혹은 우유처럼 뿌연 물이 나오는 것은 특이한 일이 아니다.

     게다가 10년 안에 이어진 수차례의 홍수에서도 볼 수 있듯이 배수 파이프보다 더 낮아진 지역은 홍수에 취약하다. 지역에 따라 차이가 있지만 14미터 정도 차이나는 곳도 있다고 한다. 이런 경우 우리나라의 기준으로 보면 그저 한 차례 시원한 소나기도 배수가 확실치 않은 지역에서는 아주 치명적이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지하 20미터 깊이에 새로운 배수 파이프를 건설하려 한다. 수도 사업국은 더 양질의 수돗물을 공급하기 위해 더 깊은 곳의 지하수를 개발해야 하고 그러면 그럴수록 지반 침하는 가속화가 될 것이고 사막화, 수질 오염, 대기오염도 비슷한 수준으로 가속화될 것이다.

     다시 말하면 그저 새로운 배수 파이프를 건설하고 터널을 파는 것만으로 해결될 문제는 아니라는 것이다. 지난 2011년 4월 16일 오후 5시경부터 약 2시간 동안 멕시코시티 중심가에 마치 열대 게릴라 폭우를 연상케 하는 집중 호우가 내렸다. 이로 인해 주요 도로는 침수되었고 10곡의 지하철역이 침수되어 폐쇄되었으며 멕시코시티를 남북으로 가르는 주요 도로인 비아둑또Viaducto의 터널은 물에 완전히 잠겼다. 또한 도시의 곳곳이 침수되었다. 17일 오후에는 거의 모든 지역이 복구가 되었지만 16일 밤 멕시코시티의 주요도로와 지하철은 운행 중지 상태였다. 어떤 면으로 도시 기능 자체가 마비된 것이다. 



 2011년 4월 16일 비아둑또의 터널, 차가 완전히 잠길 정도로 침수되었다.


 

 

     멕시코시티의 인구는 60년대에 이미 오백만을 넘었고 현재 이천만 명이라는 전망이 있지만 실질적으로 주소지를 이전하지 않고 거주하는 일용직 노동자와 멕시코 주(州)에 거주하는 사람들까지 합친다면 그 숫자는 상당할 것이다. 우리나라 인구의 반 정도가 자기 삶의 터전으로 삼고 있는 멕시코시티의 현재 환경은 어쩌면 위태하다는 말로도 모자를 것이다. 근원적인 해결책이 없다면 이런 문제는 앞에서 본 것처럼 계속 될 것이다. 물론 상황은 더 악화되면서 말이다.

 

     짧게 보았지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호수는 여전히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가려 한다. 아무리 인위적으로 노력을 한다고 해도 자연의 힘은 어쩌면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는 지도 모를 일이다. 물론 멕시코 당국도 이것을 모르지 않았다. 이미 1982년에 후아레스 국제공항 동쪽으로 거대한 인공호수 나보르 까리요Nabor Carrillo를 만들었다.

 

     하지만 문제는 쉽게 해결되지 않았다. 어떤 이유로 멕시코시티의 중심가와 남서쪽을 중심으로 아니 왜 멕시코시티의 남서쪽만 발달했는지는 아래의 인공위성 사진을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떼노치뜰란이 있었던, 다시 말해 원래 섬이었던 지역인 중심가와 원래 육지였던 지역을 중심으로 발달했기 때문이다. 특히 북동쪽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저개발 되어 있다. 서울의 강북 강남 개념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이다. 어쩌면 70년대와 21세기라고 할 수 있을 정도이다.

 

     이런 여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호수 복원사업이 자주 언급되며 멕시코 시장 선거에서도 여러 번 등장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이유로 현재까지 구체적으로 이루어진 것은 없다. 수돗물의 수원(水源)에 대한 문제, 지하수 문제, 지반 침하의 문제, 홍수 방지의 문제 등을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 것이 바로 호수 복원사업 혹은 멕시코시티 대운하 사업이 될 것이다. 일단 멕시코시티에 인공 강인 운하가 생기는 순간 더 이상 배수(排水)를 걱정할 필요가 없을 것이며 또한 수로 자체를 관광 상품화할 수도 있고 운하의 주변으로 공원을 만든다면 도시 경관에도 상당한 도움이 될 것이다. 무엇보다 도시의 습도가 올라간다는 것은 건조한 사막같은 도시에서 벗어난다는 것을 의미하고 공해, 매연에서 약간을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하므로 구원과도 같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수도의 문제는 정수(淨水)의 문제와도 결부되어 있다. 소금기도 있는 호수의 물을 어떻게 식수화할 수 있을 것인가는 아직 구체적인 기술력이 담보되지 않고는 쉽게 말할 수 있는 부분은 아닐 것이다. 어쩌면 멕시코 정부에서 계획은 하고 수주하기 이전에 우리가 먼저 적극적으로 자료를 조사하고 사전 답사하여 먼저 프러포즈하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멕시코 또한 곧 대선이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의 베니스로 멕시코시티를 변화시킬 수 있는 대대적인 공사가 된다면 상황은 달라질 것이다. 관광자원으로의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물론 이런 계획은 쉽게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멕시코시티의 호수 복원은 선거 때마다 종종 볼 수 있는 주장이고 그것은 사실 단순한 수준에 머물러 있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적극적 계획과 도시의 균형 발전까지 고려하는 사회 국가적 사업으로 멕시코시티 인공 호수 및 인공 강 사업은 분명히 매력적인 것이 사실이다.

 

     게다가 이것은 양재천에서 청계천까지 그리고 현재는 백지화된 것으로 알려진 대운하 사업까지 실질적 경험과 그 효과 그리고 있을 수 있는 부작용까지 경험한 우리나라에서 관심을 가질 만한 사업이다. 또한 멕시코 정부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 천문학적인 돈이 들어갈 수도 있는 사업들, 배수로 건설, 수원 개발, 도시에 관련 기타 사업들이 인공 호수와 인공 강의 건설로 해결될 수 있는 가능성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이것은 결과적으로 자연적 상황으로 회귀하는 것을 의미하므로 다른 인공 강이나 인공 호수의 건설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어쩌면 이 사업은 혁명적으로 멕시코시티를 변화시키는 대사건이 될 것이다.





멕시코시티 위성사진으로 오렌지색 점선이 예전의 떼노치뜰란의 구역이며 오른쪽에 검게 표시된 것이 인공호수 나보르 까리요이다. 파란색으로 표시된 지역이 바로 예전의 호수 지역이다. 다만 이 사진에서는 인위적으로 표시한 것이나 우기의 인공위성 사진을 보면 마치 숲이 있는 것처럼 호수였던 지역이 표시되는데 이것은 지하로 물이 고여 그렇게 나타나는 것이다.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