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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화에서 역사로 라틴아메리카 개정판 6. 미스터리는 이제부터 시작이다. 떼우띠우아깐 혹은 그 이전

Latin Feel/역사 이야기

by Deko 2012. 10. 9. 1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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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8, 멕시코 국립 인류학/역사 연구소(INAF))에서 특별한 발표를 했다. 그것은 떼오띠우아깐 유적 지구에서 발견된 지하도에 관한 것이었다. 께쌀꼬아뜰 신전 앞에서 발견된 이 거대한 지하도는 수많은 사람들을 흥분시키기에 충분했다. 2003년 큰 홍수로 인해 직경 83cm의 구멍이 나타났다. 처음에는 지반 침식에 의한 것으로 보수하려 했으나 보수하려 할수록 구멍은 점점 커졌고 12미터 깊이로 내려가자 엄청난 규모의 지하도와 만나게 되었다. 적외선 카메라와 무인 지형 스캐너 등을 장착하여 조사한 결과에 의하면 그 길이가 100m 혹은 120m에 이를 것으로 보이고 지하 레이더를 이용한 결과 지하도의 중앙과 끝에 약 100㎡ 크기의 공간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입구의 규모만 보아도 이것이 상당한 규모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사실 지하도라는 표현보다 땅굴이라 표현하면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구조를 분석한 결과 현재까지는 언제 만들어졌는지는 단언하기 어려우나 AD200년에서 250년경 인위적으로 폐쇄된 것으로 보인다. AD250년이면 마야가 전성기를 누릴 때로 떼우띠우아깐이 성립하기 200년에서 150년 전이다. ( AD400년경부터 떼우띠우아깐이 현재의 모습으로 성립된 것으로 본다. 최초로 성립된 것은 그 이전이다.) 또한 그냥 시간에 흐름에 의하여 풍화된 것이 아니라 지하도는 인위적으로 폐쇄되었고 그를 위해 200톤의 정도의 바위, 자갈, 모래 등이 이용된 것으로 본다. 현재까지 이 터널에서 6만점의 유물이 발견되었는데 그 중에는 마야지역, 현재의 과테말라 지역에서 온 것으로 보이는 제이드(푸른 옥)과 흑요석 유물, 조가비로 만든 유물 등이라고 한다. 현재까지 전시되지는 않았으나 이 지하도를 이용한 이들은 당시 마야와 무역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 발굴을 통해 떼우띠우아깐의 역사를 비롯하여 멕시코 중앙 고원의 문명사가 바뀔 수도 있다. 적어도 AD250년 이전에 떼우띠우아깐 지역에 무역을 하는 문명이 존재했으며 이들은 께쌀꼬아뜰 신전을 중심으로 거대한 터널과 지하도를 만들었다. 물론 현재까지 떼우띠우아깐의 유적들은 완벽하게 발굴되고 보존되지 않았다. 그저 태양의 피라미드와 달의 피라미드를 중심으로 대로변의 피라미드들만 남아있으며 그 유적들의 보전상태 또한 그리 좋지 못하다. 부근의 동산이나 조그만 둔덕이라도 발굴을 하면 분명히 어떤 유적이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지만 어떤 면으로 상당히 방치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이 지하도의 존재가 이미 예전에 알려져 있었고 께쌀꼬아뜰 신전만이 아니라 달의 피라미드, 태양의 피라미드 근처에도 이와 비슷한 지하도 혹은 특정 목적을 위한 지하 공간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하는 이들도 적지 않다.

     지하도와 그 근처의 유적을 조사한 결과 가장 오래된 구조물은 약 BC100년경으로 추정된다. 물론 이 시기가 지하도를 건설한 시기는 아니다. AD400년경부터 전성기를 누린  떼우띠우아깐은 이미 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지역에 도시를 건립한 것으로 신축이 아니라 증축의 개념이었던 것이다. 또한 그 중심지역은 께쌀꼬아뜰 신전 부근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야간작업 중인 모습, 조명에 의해 그 규모를 더 확실히 알 수 있다. 중앙에 작게 보이는 것이 작업 중인 연구원이다.



신전 위에서 바라 본 모습, 좌우로 보이는 공간에 발굴조사가 이루어진 적이 없다고 한다. 하지만 이 지역에 대한 대규모 발굴 조사가 이루어져야 할 것이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이것이다. 폐쇄된 지 1800년 정도 지난 지하도가 현재까지 무너지지 않고 남아있다는 것, 또한 그것을 폐쇄한 기술 역시 1800년 정도를 버텼다는 것이다. 또한 그런 건축기술을 가진 이들이 이미 떼우띠우아깐 지역에 정착하여 살고 있었으며 이들은 마야 그리고 싸뽀떼까 문명과 그리 차이 나지 않는 시기에 멕시코 중앙 고원에도 문명이 성립하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런 동시성은 그 자체로도 시사하는 바가 크고 어떤 면으로 아메리카 대륙의 문명의 지도를 바꿔야 하는 사건인지도 모른다. 또한 그들이 지하 10-15m 내외에 길이가 100m 이상인 지하도를 만들고 그 안에 직경 100㎡의 공간을 만들 수 있었다는 것, 지상만이 아니라 지하도 이용할 줄 알고 지하에도 무언가를 건설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것은 이런 문명을 대하는 우리의 시선을 바꾸어놓는다. 이제는 메소 아메리카의 피라미드와 유적들에 지하까지도 바라봐야 한다.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들이, 미스터리의 해답들이 숨어있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빨렝께 왕국 지하에 만들어진 공간이다. 직삼각형의 아치공법으로 만들어졌다. 아마도 떼우띠우아깐의 지하도 같은 모양은 아니라해도 아치 공법이 사용되었을 가능성이 높다.


     앞에서 언급한 빨겡께의 경우 무엇보다 그 특징은 삼각형의 아치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도시의 지하 수로이다. 빨렝께의 경우 근처에 강이 흐르고 지하수 수원이 가까이에 있어 같은 마야의 유적지이며 마찬가지로 정글의 유적인 띠깔의 경우가 수원을 확보하는 문제로 고생한 것과는 달리 빨렝께는 물이 풍부한 지역이었다. 게다가 열대성 집중호우가 있을 때는 대부분의 지역이 침수되는 문제가 있었다. 그래서 도시 지하로 대규모의 수로를 만들어 물길을 바꿨고 점점 좁아지는 수로를 만들어 수압을 높이고 이를 통해 도시에 물을 공급했고 생활 하수를 처리하는 수로도 만들었다. 로마의 수로와 아스떼까의 수로가 물을 끌어올 목적으로 만들어졌다면 빨렝께의 수로는 풍부한 수원을 이용하고 열대성 집중 호우의 상황에 배수를 할 목적으로 만들어졌다. 물론 중요한 것은 모든 수로가 삼각형 아치로 만들어졌으며 이 수로 위에 도시의 토대를 두었고 그 위에 도시를 건설하였다. 수로는 총 길이가 121m에 이르며 높이가 3.6m 그리고 폭이 4.5m나 되는 대형 규모이다. 현재도 수로는 별 문제없이 작동되고 있고 석재를 쌓아 만들어진 대형 광장을 떠받치고 있다. 또한 떼오띠우아깐의 경우와 비슷하게 빨렝께의 궁전 지하에는 삼각형 아치로 만들어진 비밀스런 공간이 있다. 빨렝께인들에게 지하는 바로 죽음을 상징하는 의미였고 또한 동시에 신비한 영들, 조상의 영들과 만나는 공간으로 해석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들의 기술수준을 고려했을 때 라틴아메리카에 혹시 지하도시도 충분히 가능했을 것으로 보인다.

 

원래 빨렝께 스타일 아치는 로마 스타일과 다르게 직삼각형 모양이었으나 후대로 가면 꼭지점의 부분이 약간 평평해진다.




당시 만들어진 수로로 현재도 아무런 문제 없이 배수가 되고 있다.


왼쪽은 광장 아래에 만들어진 수로의 모습이다. 직삼각형의 아치를 이용해 하중을 분산시키는데

현재도 견고하다. 오른쪽은 수로의 마지막 출구로 입구를 좁게 하여 홍수나 집중호우의 경우에도

일정한 양의 물이 배출되고 물은 내부 수로에 댐과 비슷한 형식으로 보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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