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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메테우스의 의미 깨닫기, 에일리언과 블레이드 러너가 만났다? (문제는 역시 인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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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기원,

그것을 말하는 영화 프로메테우스

 

어쩌면 이것은 속임수이 혹은 함정이다.

이 영화는. 아니 에일리언과 블레이드 러너를 통해, 그리고 프로메테우스를 통해 

리들리 스콧 감독이 말하고 싶었던 것은 다름 아닌 인간이다.

그것과 신화적이며 존재론적인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사실 지적 생명체가 인간만인 경우

이런 질문은 무의미하다.

모든 정의는 범주를 정하고 나누어

결국 구별하는 것인데

구별한 다른 대상이 없을 때

모든 정의는 무의미하다.

 

쉽게 황인종만 존재한다면 황인종이란 개념은 불필요하다.

그저 인간이면 되는 것이다.

 

블레이드 러너는 감정을 느끼는 안드로이드, 복제인간에 대한 이야기다.

감정을 느끼며 육체적으로 인간보다 우월한 존재, 그 존재의 한계는

수명이었다. 4.

프로메테우스의 마성의 안드로이드는 여기에 지적인 능력을 더했다.

그들의 공통의 관심사는 바로 생존과 진화이다.

아니 그들에게 생존이 진화이고 진화가 생존이다. 

물론 죽음의 문제는 상당히 다르게 풀 수도 있다. 하지만 일단 살고봐야 

죽음도 말할 수 있다. 아니 이미 죽었으면 죽음을 다시 경험하지 못한다. 

그러므로 적자생존, 강한 자가 살아남건 살아남은 자가 강한 놈이건 뭐가 먼저인지 모르겠지만 말이다. 

(안드로이드와 외계인의 대화는 아마 적자생존 혹은 더 진화된 존재에 관한 내용이었을 것이다.)


안드로이드가 백인에 파란 눈과 금발로 표현된 것은 블레에드 러너와 공통점이다. 감독은 무의식적으로 나치를??


 

그 검은 물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아마도 유기체를 분해하는 성분과 그 분해된 세포들을

스스로 진화하게 하는 성분으로 구성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후 모체를 분해하는 성분은 없어지고 진화를 촉진하는 성분만이

남은 것으로 보인다.

 

다시 말하면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는 외계인을 모체로 하지만

인간이라는 종은 진화에 의한 산물이지 직접적인 외계인의 복제는

아니라는 결론이 나온다. 지구의 모든 종이 동일한 조상을 가졌다는 것이

현재의 다양한 모습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결국 인간은 지구라는 상황에서 스스로 진화한 지적 생명체이다.

 

 

인간과 안드로이드 그리고 외계인과 에일리언의 관계

리들리 스콧 감독은 구지 에일리언이란 명칭을 사용하길 바라지 않는 것 같다.

하지만 딱히 다른 명칭을 생각하기 귀찮으므로 그냥 에일리언이라고 쓴다.

 

인간은 안드로이드를 능력이 돼서 만들었을까?

물론 능력은 기본이다. 또한 필요해서 만들었다.

그렇게 인간은 자신을 뛰어넘는 존재를 만들었다.

감정의 문제는 여전히 완벽히 해결되지 않지만

기억을 조작하고 (블레이드 러너), 특정한 상황과 자극에

반응하는 프로그래밍이 가능하다면 어느 정도 해결이 가능할

것이다. 어차피 인간의 희로애락도 어떤 보편성, 법칙성을

보이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사실 문제는 매트릭스에 나왔던 것과 같이 비합리성이다.

인간의 비합리성, 독단과 독선은 아주 합리적인 안드로이드의

시각에서는 그저 한숨 나오는 일이다. (프로메테우스의 마지막 장면)

 

외계인과 에일리언

그들은 관계는 마치 유대 카발라의 전설 골렘 이야기를 연상케 한다.

에일리언 1편의 안드로이드 설명을 빌리면 완벽한 유기체, 순수한 생존 욕망,

오직 생존의 본능만 존재하며 양심과 도덕성 등은 전혀 없는 존재.

여기에 광폭한 공격력과 압도적 육체 능력 그리고 번식력에 숙주를 이용하는

능력까지, 에일리언은 진화론의 관점에서 보면 완벽한 생명체다.

적자생존과 환경적응이라는 측면에서 도저히 당할 수 없다.

외계인의 과학수준에 걸맞은 피조물이다. 그런데 이성이 없다.

문명을 창조할 능력도 다른 생명체와 커뮤니케이션을 할 능력도 없다.

어차피 생존이란 측면에서 보면 문명 또한 본능을 억제케 하는 제도이므로

그리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그런데 생존본능이 너무 강하고 번식력도 강하여 다른 생명체를 모두 제거할 만큼 

강력하다. 하지만 숙주 없이, 또한 식량도 없이 모든 것을 먹어치우고 

결국 스스로 자멸해버리고 말 것이다. 물론 자신을 창조한 외계인들도 다 죽여버리고 말이다. 

외계인이 만든 가장 강력하고 완벽한 생명체이자 진화론의 챔피언은 동시에

그렇게 약하고 불완전했다. 역설적으로 말이다.

(연장된 관점에서 보면 에일리언 1의 에일리언은 안드로이드+인간+진화촉진제+외계인  등

짬뽕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더 강한 지도 모르겠지만)

 

여기에 인간이 만든 안드로이드는 인간의 불합리적 특성을 제외하면

지적으로는 외계인에 필적하며 합리적이며 덜 폭력적이며

생존에 대한 욕망, 번식에 대한 욕망도 상대적으로 덜하다.

적어도 영화에선 말이다.

누가 더 우월하다고 할 수 있을까?

안드로이드와 이야기를 나눈 외계인의 폭력적 반응을 기억해본다면

대답은 아주 간단하다. 안드로이드가 가장 우월한 존재인 것이다.

그 다음이 인간... 그런데 인간은 인간을 디자인 한 것으로 보이는 

외계인 보다 우월한 존재일까? 그럼 안드로이드는 ....


지적인 면으로는 경쟁자가 없는 안드로이드, 인간 외계인 에일리언 중에서 가장 합리적이고 이성적이다. 

 

그런데 안드로이드의 말, 모든 아들 혹은 자식들은 부모가 죽기를

바란다는 것은 프레이져의 황금가지류의 해석으로, 실제 생물체적 부모가 아닌 

부모 혹은 아버지 혹은 전임자의 권력과 권한을 의미한다.

안드로이드에겐 인간, 인간에겐 외계인, 그런데 안드로이드가

새로운 종을 만들게 된다면 이 구조는 묘하게 틀어진다.

게다가 안드로이드가 만든 종이 외계인도 인간도 한방에

날려버린다면?

진화의 관점에서 최강의 생명체가 탄생하게 되는 것이다.

에일리언과의 연관성을 생각해보면 바로 안드로이드의 피와

진화 촉진제, 여기에 인간의 정자와 난자가 만나 만들어진

새로운 종은 에일리언 1편의 에일리언 혹은 그 유전자를 보호하고 있는

1차 생물로 보인다. 1차 생물은 숙주를 만나 퀸을 만드는

목적이 있으니 말이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기독교의 창조론을 외계인 유전자라는 아이디어로 날려버렸다.

사실 이 외계인 창조론은 사이언톨러지를 비롯하여

얼마 전 사망한 제카리카 시친의 지구연대기 시리즈와

그레이엄 핸콕의 신들의 전차 등에 자주 등장하는

것이 바로 외계인의 인류 창조 혹은 디자인 가설이다.

, 그러거나 말거나 아무튼 이 외계인 가설이 인류의 진화와

기타 모든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쉽게 그들이 우리를 만들었다고 해도

현재 우리와 직접적인 관련이 없다. 그저 UFO로 힐끗 엿보는 수준이다.

또한 진화론도 마찬가지로 싸대기를 심하게 날린다.

앞에서 이야기한 것과 마찬가지로 생존이란 측면에서 가장 강한 존재는

에일리언이고 먹이 사실의 제일 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건이 도덕적으로 문화적으로 우월하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외계인의 폭력성에서 인간의 폭력성이 유래했고

그 폭력성의 결정체가 바로 에일리언일 것이다.

 

결국 에일리언 혹은 생존의 최적화된 존재가 인간이 아니라는 것으로

진화론의 중심, 진화의 마지막 존재, 최종 버전이 바로 인간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간은 과연 무엇일까?

 

바로 이 질문이 리들리 스콧 감독이 던지는 최종 질문일 것이다.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결국 외계인의 혹성으로 떠나는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 그녀는 비단 창조하고 파괴하는 이유가

무엇이냐는 질문만이 아니라 우리를 왜 창조한 것이냐

우리는 어떤 존재인가, 우리의 존재가 과연 너희들과 관계가 있느냐 등등

온갖 형이상학적 질문이 뭉쳐있는 것이다.

물론 그 질문은 결국 우리들, 인간은 무엇이냐라는 질문으로 소급될 것이다.

 

프로메테우스는 블레이드 러너와 교묘히 겹친다. 영생 혹은 생명연장을

꿈꾸는 회사 사장은 블레이드 러너의 안드로이드와 같다.

또한 생명의 근원을 찾아간다는 것도 지구로 들어온 안드로이드와

그리 다르지 않다.

또한 리들리 스콧 감독의 차기작에 블레이드 러너가 있는 것도 우연이 아닐 것이다.

 

 

약 이천년이란 시간의 상징, 그리고 다시 거는 십자가 목걸이

창조론과 진화론을 모두 굴절시키고 나면

이제 진짜 하고 싶은 메시지가 등장한다.

 

인간은 과연 어떤 존재인가?

 

바보 같고 무모하고 허영과 허세에 비합리적인

감정적이고 감상적이며 여기에 고집마저 센,

대체 이들이 우리를 만든 자인가?

안드로이드가 보는 인간이란 제우스의 아버지

크로노스 같은 존재가 아니겠는가?

물론 인간에게 외계인도 뭐 그렇게 차이 나지는 않겠지만.

 

 

추신: 블레이드 러너의 새로운 버전에서는 안드로이드가 불멸의 생명을

혹은 반영구적인 삶을 누릴 수 있게 되면 어떨까 싶다.

유한한 존재인 인간이 무한한 혹은 무한에 가까운 피조물을 창조한다?

이것만으로 상황은 참 재미있어 질 테니 말이다.

 

추신2: 영화의 여러 소품들, 광경, 장면의 상징과 연관성 등

이런 것들이 중요하지 않다고 할 수는 없지만

그렇다고 핵심적인 요소는 아닐 것이다.


추신3: 프로메테우스, 인간에게 불을 가져다 준 티탄족의 영웅이자 반신 혹은 후에

신이 된 자로 알려져 있는데 프로메테우스는 인간 중에서 남성을 만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제우스는 불을 가지고 인간이 신처럼 되지 못하게 하기 위해

여성, 판도라를 만들었다. 판도라는 에피스테메우스와 결혼하는데 (미쉴 푸코의

에피스테메와 같은 어원을 가진 단어로, 인지 지각, 혹은 지혜를 의미한다)

합리와 불합리의 결합이라 할 수 있다. 아무튼 영화는 프로메테우스로 시작해서

판도라로 끝났다고 할 수 있다. 판도라의 상자는 열렸다.

이제 모든 가치, 철학적, 윤리적 체계는 흔들릴 것이다.

다만 그 판도라 상자에 마지막까지 남은 것은 무엇인가?

 

다시 목에 거는 십자가가 상징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기독교가, 아니 십자가가 인간성의 모든 것을 상징하는 상징인 것이다.

그러므로 이 영화를 거부하고 혐오하는 기독교인들은

다시 한 번 찬찬히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본인들의 믿음이 무엇인지를.


추신: 3 눈길을 끄는 대두상은 멕시코 올메까 문명의 흑인 대두상과 닮았다. 

자세한 내용은 신화에서 역사로 라틴아메리카를 참조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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