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보니 뒷북처럼 되버렸는데 ...
80년대 그런 사람 너무나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김현식과 신촌블르스 그리고 봄여름가을겨울 등등의
쉽게 동아기획의 팬이었다.
당시 동아기획에는 이들만이 아니라
조동진 들국화, 이정선, 박학기, 김현철, 빛과 소금, 시인과 촌장 한영애
김장훈 장필순 푸른하늘 그리고 이소라까지 ....
정말 80년대부터 2000년까지 라디오에서 나오는 가요의 상당부분을 바로
이 동아기획 패밀리 ?? 가 차지 했었다.
게다가 동아기획의 특징은 노래만 하는 가수들의 집단이 아니라
음악을 만들고 편곡하고 연주하는 쉽게 가내 .. 아니 사내 수공업 집단과
비슷했다. 현재 전자 사운드에 일렉트로닉한 음악과는 아마도 음악을 대하는
정서자체가 달랐을 것이다. 물론 이것을 꼭 디지털과 아날로그의 차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다. 디지털 음악에도 동아기획은 상당한 노하우가 있었고 ..
기억은 안나가지만 무슨 일렉트로닉 댄스 음악을 하는 팀도 있었다.
아무튼 최고의 세션맨이 즐비한 사내 수공업 집단 동아기획 가수들의
최고의 무대는 바로 라디오 공개방송이었다.
당시 토요일 일요일 이종환의 밤의 디스크쇼 별이 빛나는 밤에 2시에 데이트 등등
수많은 프로그램이 공개방송을 했고
이 공개방송, 쉽게 DJ가 사회보고 가수들이 공연하는 스타일, 즉 콘서트 스타일
방송에서 최고의 스타는 바로 동아기획 패밀리 그중에서도
김현식 봄여름가을겨울 신촌 블르스 한영애 등등이었다.
라디오로 듣기에도 사운드의 질감이 달랐던 것이다.
90년대 김현식의 죽음과 이소라의 등장으로 동아기획은 마지막 전성기를 누리고
현재는 ... 망했다는 말도 있고 아직 살아있다는 말도 있지만
예전같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김현식의 정규 마지막 앨범 5집과 유작앨범 6집의 자켓은
유난히 눈길을 끈다. 무언가 쓸쓸한 분위기
모노톤과 비내린 도시의 장면들이 당시 도시적 느낌의 쓸쓸함이
살아있는 그의 음악을 돋보이게 하였다.
커다란 LP판은 그 자켓도 커서 그 자켓만으로도 하나의 시각적 충격을 줄 만했다.
거기에 가사집도 작은 사진집같이 꾸밀 수 있었다.
사이즈와 스타일 모두 자유로웠다.
김현식 5집은 가사집도 마치 하나의 사진집 같았다.
그리고 김중만이라는 이름을 볼 수 있었다.
이후 김중만의 사진은 유작이 된 김현식 6집과
봄여름가을겨울 3집에서 만날 수 있다.
김현식의 사진들이 우울하고 쓸쓸한 분위기 였다면
봄여름가을겨울 앨범은 생생한 칼라톤의 이국적인 모습들을 담아냈다.
아마도 앨범의 분위기를 반영한 것이다.
물론 개인적으로 봄여름가을겨울 3집은 빠다를 너무 많이 먹은 듯한 ..?
당시 코엑스에서 열린 라이브에서도 느꼈던 것이지만 너무 빠다를 먹어서
아니면 퓨전째즈라는 말이 너무 무거웠던지
가요적인 느낌이 너무 적었다.
물론 그래도 어느정도 히트는 했던 것으로 기억난다.
이후 그들의 음악적인 지향점은 째즈가 아니라 로큰놀로 바뀌게 되지만 말이다.
아무튼 이들의 앨범을 보면서 김중만을 알게되었고
유명한 사진작가라는 사실 외에 별다른 정보가 없었다.
그러다 ... 물론 한참 지나서지만 예전 한국영화를 보여주는
프로그램에서 그의 부인이었다는 오수미를 본 것이다.
그 충격이란 ...
김완선이 데뷔했을 때
그리고 박지윤이 성인식으로 변신을 했을때의 충격이랄까 ...
정말 '헉' 소리나게 이쁘다
요즘 활동했다면 정말 최고의 주가를 올릴 수 있을
화려하고 발랄한 섹쉬함을 지닌 배우였다.
특히 눈과 입술은 지금봐도 정말 손색이 없다.
뭐 어찌되었건 아름다운 신인여배우가 거의 절대적 권력을 누리던
대감독의 수청 요구를 거절하기는 어려웠을 것이고
어찌되었건 두 사람 사이에 두명의 아이가 있었다는 것은
서로 사랑했었다라는 말도 될 것이며
최은희를 따라 혹은 최은희를 찾다가 납북 혹은 납치되었다는 것이 정설이므로
오수미가 버림받았다는 것도 부정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이후 ... 남편은 북한에 있지 애는 둘이나 있지
거기에 첩년이라는 멍에를 쓰고
활동한다는 것은 당시 기준으로 보면 마치 섹스 동영상이 공개되고 나서
다시 재기하는 것 보다 더 어려운 것이었을 것이다.
아무튼 이런 그녀의 마음을 받아주고 안아준 김중만은
멋진 남자이다. 물론 ... 첫눈에 반했겠지 ... ^^
물론 그를 추방시킨 것이 과연 누구의 의지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결과적으로 국가권력이 한 사람, 한 가정을 무참히 부순 것이 아니겠는가 ...
아무튼 그녀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보고 찾아본 그녀의 모습은
이미 생동감이 사라져 버린 마르고 길어진 얼굴 게다가 약간 슬퍼
보이는 모습이었다. (물론 그녀는 이미 30대 중후반이었다)
포털 사이트에 등록된 그녀의 사진 .. 다른 걸로 바꿔도 좋을 것 같은데 ...
물론 그녀가 나오는 영화를 그렇다고 보지 않은 것은 아니다.
토요일은 밤이 없다 색깔있는 남자 몸 전체로 사랑을 등등
동시상영관, 비디오 대여점에서 그저 저절로 제목만 보고
발길이 손길이 가는 영화에 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제일의 섹시남으로 꼽히던 임성민과 자주 나왔던 것으로
기억난다.
오른쪽이 젊은 김부선 그리고 중앙이 오수미이다
이 남자가 바로 임성민이다.
그러다 90년대 초반으로 기억나는데
그녀가 죽었다는 소식을 보게 되었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에 참 미인 많았다 ...
아니 지금도 많겠지 ...
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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