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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멕시코, 우리와 같은 다양성의 세계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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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표적인 우리음식이 무어냐는 질문에 마치 조건반사 하듯 김치, 불고기, 비빔밥을 말하지만 무언가 아쉬움이 남는 것이 사실이다. 우리음식이 비단 김치, 불고기만은 아닌데, 우리의 음식문화는 더 큰데, 더 다양한데 김치, 불고기, 비빔밥 등에 우리의 음식문화를 담아내기는 너무 모자란 것이 사실이다. 이것은 비단 우리의 음식문화에만 해당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멕시코의 음식문화도 따꼬(Taco, 옥수수나 밀전병에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한 고기, 해물, 채소, 치즈를 싸먹는 요리)와 살사 등으로 대표된다. 따꼬는 서울에서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는 어쩌면 범세계적인 요리이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멕시코의 음식문화를 모두 표현할 수 없다. 멕시코는 원주민 전통문화에 유럽의 문화 그리고 스페인의 역사적 특성에 의해 아랍의 문화도 전래되었다. 또한 멕시코의 비옥한 토지에서 나오는 많은 작물들과 카리브 해와 태평양에서 다양한 해산물이 다양한 방식으로 조리되며 조화 속에 다양성을 담고 있다. 이런 멕시코 음식문화를 소개하는 일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지만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일 것이다.

우리나라에는 멕시코 요리의 다양성이 거의 소개되어 있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외국에 있는 한식당이 우리음식의 다양성을 담지 못하는 것과 같이 우리나라의 멕시코 음식점에서도 멕시코 음식의 다양성을 만나기 어렵다. 하지만 멕시코 음식의 다양성은 비단 우리나라에만 잘 알려지지 않은 것이 아니다. 멕시코 요리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도 멕시코 음식에는 따꼬, 따말(Tamal, 여러 가지 재료를 넣은 옥수수 찐빵), 그리고 그저 매운 맛으로 알려진 살사가 전부였다. 멕시코를 여행한 일부의 사람들만이 호박씨와 각종 향신료를 섞은 몰레mole나 삐삐안pipián을 맛보았고, 오직 리몬즙으로만 저린 우리나라 물회와 비슷한 세비체Ceviche를 알고 있었다. 허나 겨울날 따뜻하게 마시는 초콜릿 한잔에 고대 멕시코의 초기 문명으로부터 전해지는 카카오와 바닐라가 들어간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멕시코 음식이 제대로 전 세계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였다. 그전까지 패스트푸드의 일종으로만 여겨지던 멕시코 음식은 영국인 다이애나 케네디(Diana Kennedy)에 의해 다양한 그 맛의 세계와 스페인 식민시대 이전의 음식문화가 현재에도 살아 숨 쉬며 원주민들이 사용하던 재료인 호박씨, 선인장등을 이용한 요리들이 일상적으로 향유되고 있음을 밝혔다. 또한 멕시코 각 지방색이 드러난 요리들의 조리법을 소개하면서 비단 멕시코 요리만을 소개한 것이 아니라 다양한 퓨전들이 가능하도록 새로운 가능성의 문을 열었다고 할 수 있다.

퓨전이라는 것은 어쩌면 멕시코 요리의 본질적인 특징인 지도 모를 일이다. 멕시코 혹은 메소아메리카 지역에서 음식문화가 발달하기 시작하는 것은 무엇보다 옥수수를 재배하기 시작하면서라고 할 수 있다. 그 이전까지 수렵과 채집으로 살던 사람들이 농경을 시작하고 정착을 하면서 식생활이 달라진다. 초기에는 그저 땅에 구멍을 뚫고, 날카로운 막대기를 이용해 옥수수 씨앗을 심은 뒤 물을 주는 방법을 사용했는데, 이는 이후로 3천년 가까이 이어져오는 옥수수 재배의 기본 방식이 된다. 이 방식은 올메까, 싸뽀떼까, 믹스떼까, 꼴떼까, 떼우띠우아깐 그리고 아쓰떼까로 연결된다. 물론 아쓰떼까에서는 전통적은 방식을 탈피하여 호숫가라는 자연조건을 이용해 수경재배에 성공하였고 호수의 침전물과 인분 등을 거름으로 삼아 일 년에 3, 4 모작이 가능한 형태로 발전했으며 도시의 모든 인구가 자급자족하고도 남을 정도의 옥수수를 재배했다고 한다. 멕시코 중앙 고원지대에서 사용되던 옥수수 재배법의 전통적인 형태는 이후 스페인 세력에 정복당하면서 어느 정도 소실되었다. 현재 복원이 가능하지만 100%라고 단언하기는 어렵다. 하지만 유까딴 반도에 살고 있던 마야의 경우 현재도 정글에서 고전적인 방식인 화전(火田)으로 옥수수 및 기타 작물을 재배하고 있다. 그들은 수천 년 동안 조상들의 방식을 이어온 것이다. 물론 그것이 좋은 것인지 나쁜 것인지는 개개인이 판단할 문제이다.

옥수수는 메소아메리카의 쌀이라 할 수 있다. 다시 말하면 탄수화물을 공급받는 주 식재료라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쌀도 그저 밥으로만 조리되는 것이 아니라 국수, 떡을 비롯하여 술 등의 재료가 된다. 옥수수가 얼마나 다양한 방법으로 조리되고 그 맛은 어떻게 다른 지를 알아보는 것도 메소아메리카 요리를 알아보고 찾아보는 하나의 방법이 될 것이다.



amaranth 꽃



Pipian과 갈은 Pipian


 

로마와 중세 유럽의 귀족들은 상당한 미식가(美食家)였다. 물론 미식가라는 기준이 애매하기는 하지만 그들은 음식의 질감이나 맛보다 향을 중요하게 여겼다. 그들의 향이야 말로 천상의 맛, 천국의 맛이라 생각했다. 당연히 향신료의 가격은 높았으며 새로운 향신료에 대한 갈망도 상당했다. 하지만 비잔틴 제국이 멸망한 이후 고급 향신료를 찾는 것은 쉽지 않았다. 동방으로의 무역만이 아니라 지중해의 패권도 오스만 터키 제국이 장악하고 있었다. 유럽의 국가들은 해외교역을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이 어려운 상황 탓인지 대표적인 향신료인 후추는 금과 거의 같은 가치를 지니게 되었고 현재는 허구적 공상 물로 판명이 된 마르코 폴로의 이야기도 이런 상황을 반영한 것이라 할 수 있다. 콜롬부스가 라틴아메리카를 찾아 떠나게 된 주요한 이유 중에 금도 있었으나 그보다는 향신료였을 것이란 추측도 있다. 그도 그럴 것이 후추를 능가하는 향신료를 발견하여 가져오게 되면 후추가 금값이니 금값을 뛰어넘는 가치를 지니게 될 것이니 말이다.

어쩌면 세계의 무역과 문화 교류의 직접적 원인이 향신료 다시 말해 식재료를 찾는 것이었고 콜롬부스도 예외는 아니라면 라틴 아메리카 혹은 아메리카 대륙은 이 세상에 새로운 식재료를 선보였던 보물섬 아니 보물 대륙이었다 할 수 있다. 콜롬부스가 처음으로 카리브 해에 도착한 바로 그 순간 두 대륙의 음식문화는 필연적으로 만날 수밖에 없었다.

이후 제국주의 시대에는 식민지를 만들고 정복하기 위해 뱃길을 떠났지만 적어도 이때는 달랐다. 새로운 맛에 대한 요구로 인한 여행, 맛을 찾는 여행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여행의 결과는 상상 이상이었다.

 

콜럼버스는 악어와 앵무새를 제외하면 땅에는 동물이 없다. 염소도, 양도, 다른 종류의 동물이 없다.라고 말했다. 바르똘로메 데 라스 까사스Bartólome de las Casas인도 이야기History of the Indies에서 149210월 카리브에 처음 도착했을 때를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그들은 다양한 종류의 나무, 허브, 향기 나는 꽃과 수많은 새를 목격했으며, 이는 스페인의 것과는 전혀 다른 종류였다." 물론 두 가지 진술은 서로 모순되는 것으로 보일 수 있으나 카리브 해에 도착한 선원들은 먹을 수 있는 가축을 찾았으나 찾지 못했다는 말이며 먹을 수 있는 식량이 아니라 주변 환경을 돌아보니 바르똘로메 데 라스 까사스의 표현과 같았다는 것이다그런 이유로 두 번째 항해에서 콜럼버스는 스페인에서 돼지, , , , 말과 같은 가축을 데려갔다. 이 가축들은 라틴아메리카의 풍부한 먹을거리와 천적이 존재하지 않는 환경으로 인해 전체적으로 크기가 커졌는데, 특히 돼지는 식탐이 많은 가축인 관계로 훨씬 더 커졌다고 한다. 천적이 존재하지 않는 상태는 결국 생존이라는 스트레스, 어딘가에 있을지 모르는 천적에 대한 경계심이 없어짐으로 인해 그렇게 된 것으로 보인다. 27년 후 에르난 꼬르떼스Hernan Cortés가 쿠바를 출발해 라틴아메리카에 도착했을 때, 돼지를 비롯한 기타 가축들은 병사들을 먹일 식량으로 요긴하게 쓰이게 된다. 어쩌면 유럽과 라틴아메리카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바로 가축의 크기일 것이다. 그 자체로 풍요로움의 상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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