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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1: 음식을 마련하는 마음은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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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기 #1: 음식을 마련하는 마음은 사랑이다.

 

저 멀리 땅거미가 지고 저녁노을이 붉게 타오를 때 놀이터에서의 흙장난 혹은 술래잡기는 그 재미가 점점 덜해진다. 그 즈음, 항상 언제나 그랬듯 아파트 베란다에서 들려오는 어머니들의 목소리와 하나 둘씩 사라지던 친구들, 그리고 들리던 소리, 어머니의 명호야 밥 먹어라그렇게 기다리던 바로 그 소리는 보글보글 끓어오르던 된장찌개 혹은 김치찌개 같았다.

 

마치 데자뷰와 같았다. 멕시코 남부를 여행하면서 들리게 된 원주민 마을에서 예전의 기억이 떠올랐다. 동네 어귀의 동산에 올라 마치 초가집을 연상케 하는 집들을 바라보고 있었다. 밥 짓는 연기는 없었지만 저 집들에서는 저마다의 저녁이 마련되고 있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때 들리던 소리, ‘알레, 알레, 쎄나~!(알레한드로 저녁 먹어라)’하는 소리에 말 타기 놀이를 하던 아이 하나가 집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세부적인 광경은 약간 다르지만 너무 익숙한 장면이었다. 그러고 보니 이 아이들은 마치 대지를 닮았다. 너무 검지고 않고 하얗지도 않았다. 비옥한 토지의 색깔이었다. 조그만 백열등 아래서 가족들이 둘러앉아 저녁 식사를 할 것을 상상하니 내 마음마저 포근해지는 것 같았다. 가족은 식구(食口)이다. 같이 밥을 먹는 사람들이란 말이다. 하지만 함께 나누어 먹는 것은 밥만이 아닐 것이다.





멕시코 남부에서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저녁 노을 광경



 

옥수수 가루로 반죽으로 하여 전병을 만들고 부치고 신선한 양파와 토마토 그리고 고추와 향료를 다져 살사를 만들고 검은콩과 강낭콩을 삶아 준비하는 원주민 마을의 아낙네들.

누군가를 위해 음식을 준비하는 마음은 사랑이다. 내가 그저 한 끼 때우기 위해 요리를 하는 것과 질적인 차이가 있다. 남을 위해 요리하는 그 마음은 어머니의 사랑이다. 남편을 자식을, 가족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은 바로 준비한 음식에 담겨있다. 이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공통된 것이다. 음식과 함께 우리는 이 사랑을 먹고 자란 것이다.

 

사람은 누구나 아무리 낯선 어떤 것을 본다고 해도 자신의 경험에서 미루어 짐작하게 된다. 새로운 경험, 완전히 새로운 경험을 한다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 일이다. 특히 음식이란 주제에서는 더욱 그렇다. 우리는 매일 음식을 먹는다. 그것이 바로 일상(日常)이고 다반사(茶飯事)인 것이다. 삼시 세 끼를 제 때에 먹고 오후에 차 한잔하는 것이 일상인 것이다. 이것은 전 세계적 공통점이라 할 수도 있다. 어느 수준이상으로 문화가 발달한 곳에서는 특유의 음식과 특유의 음료가 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이 바로 그 안에 담겨있는 마음이다. 그 마음에 공감하지 못하면 색다른 음식이란 그저 이질적인 것, 다른 것일 뿐이다. 우리는 마음을 통해 다른 것 사이에 다리를 놓게 된다. 소박한 돌다리, 징검다리가 놓아지면 정겨운 어떤 것이 되고 비슷하고 다른 것들 사이에서, 음식을 씹으며 뭉게뭉게 풍겨오는 광경을 만나게 된다.

 

바로 대지(大地). 땅이다.

 

우리가 먹는 것 중에 대지의 소산이 아닌 것이 있던가? 더 노골적으로 말하면 우리는 우리의 시체가 묻히는 바로 그 대지를 퍼먹고 사는 것이다. 지구란 공통의 울타리 안에 같지 않은, 무언가 다른 땅이 존재한다. 이 말은 다른 맛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같은 사과가, 같은 양파가 혹은 같아 보이는 식재료에서 다른 맛이, 다른 향이 나는 것은 자라난 땅이 다르기 때문이다. 그 미세한 차이, 약간, 아주 약간 향이 다르고 씹는 질감이 다르다. 이것이 바로 그 땅의 속성인 것이다. 음식을 소개하는 것은 바로 그 땅을 소개하는 것이다. 그 땅의 바람, 햇빛 그리고 흘러내리는 시냇물, 내리는 빗줄기 등을 알리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이 음식에 담겨있다. 갓 요리된 음식이 향과 색에서, 입에서 씹히는 질감과 향에서 그리고 삼킬 때 넘어가는 느낌들이 모두 맛이다. 이 책은 우리와 같으면서도 다른 멕시코의 자연을 소개하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 그래서 음식인 것이다.

 

그 자연 속에서 부엌에서 피어나는 어머니의 사랑을 공감했으면 좋겠다. 세계 어디에도 어머니의 사랑은 다르지 않다. 본질적으로 같다. 그 사랑이 다른 누구도 아닌 이 책을 읽는 이들이 모두 갖고 있는 공통의 경험이라는 것을, 어쩌면 우주적 체험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으면 한다. 우리 어머니의 사랑과 다른 어머니의 사랑이 다르지 않고 내 자식과 다른 자식들, 모두 소중하다. 이 사랑을 통해 우리는 같은 나무의 같은 포도송이가 된다. 나만의 것, 내 것, 내 부모와 내 아이만을 강조하는 사랑이 아니라 보편적 사랑이라는 매개를 통해서만이 같은 나무의 같은 포도송이, 보기에 약간씩 다르다고 해도, 같은 포도송이가 된다. 또한 그 나무를, 그 열매를 키우는 것도 바로 사랑이다.

 

그래서 음식이 바로 사랑이다.

준비하는 것도 그리고 먹는 것도 말이다.

 

 

또한, 이 책의 진정한 목적은 바로, 물론 간접적이라고 해도, 그 사랑을 전달하는 것이다.

하지만 글 솜씨가 모자라 그저 아는 한 자세히 설명하는 것 외에 더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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