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멕시코 음식 이야기 #0 프롤로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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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는 멕시코를 사랑하는 것 같다.

 

     사실 좋아한다는 표현과 사랑한다는 표현 중에서 약간 고민했다. 그런데 난 아무래도 멕시코를 사랑하는 것 같다. 그것도 아주 오래된 연인처럼 사랑하는 것 같다.

 

     우리나라 미디어에서 멕시코에 대한 나쁜 뉴스를 다루면 나 또한 화가 난다. 현재 멕시코는 여러 가지 어려운 문제가 있다. 매일같이 마피아들에게 살해된 사람들의 소식이 나온다. 여러 가지 어려운 현실을 외면하고 어쩔 수 없는 일이라 무기력하게 말하는 사람들, 분위기 깨지 말고 그저 술이나 한잔 하자는 사람들을 보면 역시 화가 난다. 정말 오래된 연인처럼 장점보다는 단점이 더 익숙하고 여러 가지 일로 실망도 하고 잔소리를 하듯 이것저것 비판도 한다. 어느 날 영국에서 온 한 친구가 왜 그렇게 비판적이냐, 멕시코의 정치/경제적 현실이 네게 그렇게 중요하냐? 어차피 너 한국으로 돌아가면 그만 아니냐는 말을 했을 때, 깨달았다. 난 여기 멕시코에 손님처럼 와있는 것이 아니라 마치 주인처럼 와있다고. 물론 그렇다고 멕시코에 우리나라에 대해 갖는 것과 비슷한 애국심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적어도 이 나라, 이 나라의 사람들 어떻게 살건 말건 나와는 상관없으니 내 알 바 아니라는 입장은 아니다.

 

     현재 멕시코는 우리나라에 두 가지 이미지로 소개되는 것 같다. 그 하나가 한미 FTA와 함께 가장 실패한 자유무역 협정국으로 자유무역 협정의 온갖 문제와 폐해를 멕시코에서 찾아볼 수 있을 듯한 이미지가 있다. 물론 멕시코의 빈부격차는 여전한 문제이고 나프타 협정과 함께 세계에 그 존재를 알린, 마르코스 부사령관으로 대표되는 네오 사파티스타들이 어쩌면 멕시코의 극단적 차이의 상징일 수도 있다.

     하지만 멕시코의 빈부격차를 나프타만의 탓으로 돌리기에는 역사적, 정치적, 문화적으로 더 복잡한 구조가 있는 것도 사실이다. 또한 오바마 대통령도 후보 시절 나프타를 폐기하겠다는 공약을 내세운 적이 있다. 미국의 경제에 그리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평가가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멕시코가 가장 실패한 자유무역 협정국이란 타이틀은 멕시코 입장에서는 약간 억울할 수도 있다. 또 한 가지는 현재 외신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이미지로, 멕시코는 무법천지이며 마피아가 경찰과 군대보다 강력한 국가라는, 다시 말해 법보다 주먹이, 아니 법보다 총이 가까운 국가라는, 사실 이런 개념이라면 국가라고 부를 수도 없다는 의미가 된다. 매일같이 사망자들의 숫자가 발표되는 것도 사실이고 매립된 시신들이 발견되는 것이 더 이상 특이한 일이 아닌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멕시코에는 뿌리 깊게 암시장, 소위 블랙마켓이 발전해왔고 여기에 파나마, 콜롬비아 등 남미지역에 이어 미국의 마약 공급 지역이 되면서 상황을 더 나빠졌다. 그러나 현재 일어나는 일련의 사건들은 이 구조를 개선하려는 정부의 노력으로 멕시코 역사라는 관점으로 보면 멕시코 혁명만큼이나 주목할 만한 사건이다. 우리나라의 문민정부 시절 범죄와의 전쟁과 비슷한 일이 현재 벌어지고 있으며 현 정권은 멕시코 역사에서 최초로 범죄와 전쟁을 선포하였다. 그 이전에는 이런 노력조차 없었다. 어려울 것이며 쉽지 않겠지만 점점 더 좋은 방향으로 향하고 있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현재의 불안과 불안정은 거짓된 안정이 아니라 진정한 안정으로 향해가기 위한 불안으로 볼 수 있다.

 

 

     사실 멕시코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유일하게 스스로 홀로 선, 독립(獨立)을 성취한 국가이며 스스로의 혁명(革命)을 통해 국가적 체질을 개선한 유일한 국가이다. 다른 국가들은 독립의 영웅이라고 하는 시몬 볼리바르Simón Bolívar와 산 마르틴San Martín이 독립을 시켜준 것으로, 엄밀한 의미로 독립이 아니라 해방(解放)이라고 할 수 있다. 수많은 현실적인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멕시코는 분명히 극복해나갈 것이며 다시 스스로의 역량으로 상황을 반전시킬 것이라 믿는다. 또한 예전처럼 멕시코 전역이 긍정적인 미소를 서로 지을 수 있는 때가 멀지 않다고 믿는다. 물론 개인적인 믿음이며 구체적인 근거를 말하라고 하면 애매하다. 하지만 멕시코 역사가 지금까지 그러했다. 어쩌면 모든 나라들의 역사가 그렇듯 말이다.

 

     여러 가지, 정말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멕시코의 대자연이 주는 식재료들과 언제나 농담 속에서 밝게 웃는 사람들, 작렬하는 태양, 갓 짠 주스와 함께하는 시간은 멕시코에 대한 사랑이 절로 솟아나는 시간이다. 정말 다양하고 많은 것들을 먹었고 마셨다. 그러다 내가 멕시코를 위해 한 것이 별로 없으며 내가 멕시코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이 있을까를 고민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연스레 음식을 소개하는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멕시코의 음식을 소개하는 것은 바로 그 애정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이다. 어쩌면 멕시코 역사에 대한 소개 또한 그 애정의 한 방법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언가 더 직접적이며 쉬우며 확실한 것은 바로 음식에 대한 소개일 것이다. 또한 그것은 멕시코의 자연에 대한 소개의 방법일 것이며 정치, 경제 그리고 사회적 문제와는 다른 문화적 소개이기도 할 것이다. 함께 음식을 먹는 것만으로 완벽하게 식구食口가 되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나 적어도 어떤 호감과 환대를 서로 교감한다고는 할 수 있을 것이다. 맛있는 외국 음식은 그 지역에 대한 나쁜 선입견을 없애며 호감을 갖게 할 수도 있다. 게다가 멕시코는 고추와 토마토 그리고 옥수수, 고구마 등의 원산지이다. 토마토는 서구 유럽의 음식에 빠져서는 안 될 식재료이며 고추는 우리의 식탁에 매일같이 올라오는 식재료이다. 고구마와 옥수수 그리고 남아메리카가 원산지인 감자는 기근에 굶주리는 많은 우리 조상들이 먹은 구황(救荒)식품이었다. 다시 말하면 우리 식탁에 이미 멕시코는 들어와 존재하고 있었다. 오늘 먹은 김치 한 조각에도 고추장 한 덩어리에도 말이다.

 

     이 책에는 멕시코 본토의 요리만을 소개하며 알려진 멕시코 요리와 약간의 차이가 있을 수 있다. 텍사스와 캘리포니아는 원래 멕시코의 영토였으나 현재는 미국의 영토이다. 이 지역을 중심으로 텍스멕스Tex-mex 스타일이라고 하는 텍사스 스타일 멕시코 요리가 있다. 물론 멕시코 북부 지역의 음식과 그렇게 큰 차이는 없다. 하지만 멕시코 요리는 그 보다 더 광범위하고 다양하다. 시중에 발간된 멕시코 요리에 대한 책들은 거의 텍스멕스Tex-Mex 스타일 요리만을 언급하고 있으며 멕시코의 다양한 요리를 언급한 책은 없는 것 같다.





세계에서 4번째로 매운 하지만 식용으로 사용되는 고추로는 제일 맵다고 하는 아바네로 고추


저렴한 국민 따꼬, 따꼬 알 빠스또르 라임과 고수(실란트로) 다진 양파가 저민 돼지고기와 어우러져 식사대용으로도 맥주 안주로도 휼륭하다.




 

     사실 나는 개인적으로 부끄럽지만 서반아(西班牙)어가 스페인어인지 모르고 외국어대학 스페인어과에 들어왔다. 입학한 해가 개교 40주년이었고 그 다음해가 바로 과 창설 40주년이었다. 그때 우연히 먹게 된 할레뻬뇨Jalapeño 통조림, 다진 라하스Rajas가 들어간 비빔밥을 먹었던 순간, 그 화끈한 비빔밥에 순정 마초의 열정을 느꼈고 우리나라 남자라면 누구나 좋아할 떼낄라를 마셨던 순간 불타는 사나이의 열정을 느꼈던 것 같다, 처음으로 따꼬를 먹었던 그 순간, 살사와 고기가 옥수수 전병과 어우러지며 입안에서 즐거운 랑데부를 할 때, 뭔지도 몰랐던 서반아어에 대한 사랑이 절로 생겼다. 잘 생각해보면 그런 것이 계기였다. ‘이렇게 맛난 것이 있다니’라는 감동에서 스페인어 자체에 대한 관심이 더 생겼다. 이후 문학, 음악, 춤과 영화 등 문화적인 영역에서 계속 내 관심을 끌어왔고 그 인연은 현재까지 이어지고 있고 이 책은 어쩌면 개인적으로 하나의 러브레터이다.

 

     하나를 더 알고 하나를 더 깨닫게 되면 될 수록 더 수다스러워지고 더 질문도 많아졌던 것 같다. 아마 그 모습은 불평 많은 반찬 투정하는 아이의 모습에 가까웠을 것이다. 길거리에서 따꼬를 먹어도 ‘이 살사 맛은 왜 이래? 이거 치아빠스에서 먹었던 것과 다른데?’라고 묻고 즐거운 수다를 좋아하는 멕시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었고 또 물었고 그리고 음식에 얽힌 수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이것저것 캐묻는 키 큰 동양인을 멕시코 사람은 무던히도 좋아해 주었다. 아마도 반찬 투정을 하지만 그래도 다행히 그렇게 밉상으로 보이지는 않았던 것 같다. 이것저것 주는 대로 잘 먹으면서 나름 비평도 하는 동양인을 재미있게 봐 주었던 것 같다. 인간은 정말 이야기를 만들고 이야기를 듣기를 좋아하며 어쩌면 기억 자체를 영화처럼, 자신이 주인공인 영화처럼 하는지도 모르겠다. 음식에도 그렇게 많은 이야기들이 얽혀 있었고 그 이야기 중심에는 정(情)이 있었다. 함께 먹으며, 맛난 음식을 권하는 그 사이에 정은 소리 없이 퍼져 나오는 것 같다.

 

 

     지극히 개인적으로 우리 어머니와 누이, 그리고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 이 책을 바친다. 또한 좀 더 넓게는 아침햇살이 바람과 함께 창 너머 들어올 때, ‘오늘은 뭘 먹지.’가 아닌 ‘오늘은 뭘 해줄까?’라는 고민을 하는 많은 분들, 다른 이를 위해 요리를 해주는 분들이 이 책을 재미있게 읽어주셨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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