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어 제목이 인상적이다. 전쟁의 꽃이다.
과연 어떤 꽃이 어떻게 피었다는 말일까?
그리스천 베일의 표정, 평소에 내가 잘 짓던 .....응??
무엇보다 장예모 감독의 여배우 고르는 눈은 죽지 않았다.
니니 혹은 예니라고 하는 배우, 신인같지 않은 연기력에
청순함과 섹쉬함을 동시에 보여준 차세대, 장쯔이 이후 중국 여배우 계보를
이을 만한 재목으로 보였다. 정말 사랑에 빠질 뻔 했다. ^^
매춘의 색과 전쟁의 색, 이미지가 대립되면서 색감 자체가 슬프게 느껴진다.
난징 대학살은 일본 제국주의의 본모습을 보여준 상징적인 사건이다.
물론 당시 국민당 또한 문제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탈아론(脫亞論)을 내세우던 일본의 제국주의, 혹은
사회진화론의 마지막은 결국 인간성을 잃어버린 야수의 모습이었다.
그들은 공성전을 펼치던 난징의 30만명의 양민을 학살했다.
그것이 바로 일본 제국주의의 본모습이었던 것이다.
뭐 다른 말로 하면 악마(惡魔)라고 할 수 있겠다.
이런 장면이 역사에서 그렇게 드물지 않다.
십자군 전쟁에서 승리하여 예루살렘을 차지한 서구 유럽의 오랑캐들은
사람을 죽이고 죽여 피의 강을 만들었다.
신의 사랑을 가장한 악마들이었다. 그 악마들이 로마제국의 진정한 계승자인
비잔틴 제국과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한 것 또한 감출 수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아무튼 영화는 상당히 잘 만들어졌고
웃음도 나고 눈물도 난다.
물론 창녀와 수녀, 매춘부와 소녀 등의 극단적 이미지로 대조되는 두 집단의
갈등과 화해는 상당히 흥미롭다. 어쩌면 이 영화는 희생에 대한 페미니즘 영화로도
볼 수 있을 것이다.
사실 이것이 아니라면 매춘부 혹은 접대부들의 희생에는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만일 소녀들이 사단 행사에 가서 노래했다고 해서 겁탈을 당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을 것이다. 또한 난징의 기타 외국 대사관들은 보존 및 보호되었기에
외국 대사들의 항의 또한 만만치 않았을 것이다.
확실한 것은 인격살인 혹은 사회적 살인이 되었을 것이다.
적들의 점령을 축하한 것이 되니 민족 반역자가 되는 것이니 말이다.
일본, 혹은 일본 제국주의의 냄새만 나도 약간 냉정을 잃는 사람들이 많고
이 영화를 보고 역사적으로만 해석하면 일본 나쁜 놈 뭐 이렇게 될 것이다.
물론 직접적 피해자인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 영화 혹은 이런 류의 영화를
냉정하게 보라고 하는 것은 무리한 요구일 수도 있다.
매춘부들이 열세 명의 소녀를 대신하여야 하는 이유는 과연 무엇이었을까?
그것은 분명히 어떤 교감에서 시작했을 것이다.
상황이 상황인지라 그런 극단적인 상황은 직접 경험하지 않고는
뭐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하지만 여성으로, 아니 여성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외적인 상황이나 삶의 이미지는
극단적으로 대립하지만 인간성, 휴머니티를 통해 또한 희생을 통해 하나가 된다.
일본군에게 쫓기던 순간 지하로 숨어들어가려 했으나 지하에 숨어있던 매춘부들을 위해
다른 쪽으로 발길을 돌려버린 그 순간, 그 덕에 매춘부들은 무사했으나 소녀들은
희생할 수밖에 없었다. 그 희생을 통해 매춘부들은 감동받게 되고 그 감동으로 인해
점점 변하게 된다.
사실 이 영화의 진정한 매력은 점점 변해가는 사람들의 모습일 것이다.
죽어가는 중국인 소년 병사에게 비파를 연주해주기 위해 비파 줄을 찾아나서는 모습
캐쉬, 캐쉬를 들먹이며 현찰을 찾던 모습에서 그 어떤 신부보다 더 신부 같은 모습으로
변하는 가는 모습,
경멸에서 공감으로 그리고 이해로 향해가는 모습
그리고 서로를 위한 희생.
이 영화가 위대지기 위해선 그런 휴머니티가 분명히 있었으나 현재의 중국에
과연 그런 휴머니티가 존재하는지, 꼭 티벳만이 아니라 중국이 예전의 일본제국주의를
닮아가는 것은 아닌지 분명히 스스로 자문해야 할 것이다.
전쟁이라는 상황, 오로지 생존, 상대방을 죽여야 자신이 살 수 있는 그런 지옥에서
어떤 이들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악마가 된다.
그리고 스스로를 합리화한다. 자신에게만 유난히 관대하게.
하지만 어떤 이들은 그런 상황에 진정한 인간성을 깨닫고 실천한다.
성당에서 여기는 주님의 집이라 외치던 존의 모습
그가 갈등하다, 갈등하다 자기 생명만을 소중히 여기고 현찰만을 찾던 그런 존에서
성스러운 존으로 다시 태어나는 순간이다.
영화는 이런 순간들이 존재한다.
마음속으로 이건 영화다, 생존을 위해서는 어쩔 수 없다.
일제 시대에서 친일을 피할 수 없다 등의 생각을 직간접적으로 갖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보이지 않을 순간이다.
누구는 그래서 그랬다고 하고
누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랬다고 한다.
캐쉬 어딨나!! 를 외치던 존의 모습
신부님으로의 존의 모습
타락할 것인가 승천할 것인가?
영화는 숭고함을 말하고 있다.
그 목소리를 들었는가?
처음 한 질문에 답은 바로 여기에 있다.
바로 휴머니티라는 꽃이 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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