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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에서 핀 꽃 라틴재즈 5. 라틴재즈가 성립하기까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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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재즈댄스라는 용어가 있다. 재즈가 들어간 공식적인 용어이긴 한데 사실 재즈라는 단어에 음악적으로 연상되는 이미지와 재즈 댄스의 이미지와는 사뭇 다른 것 같다. 원래 재즈댄스라는 용어의 의미는 재즈에 맞추어 추는 춤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다시 말해 재즈의 시작에 영향을 미친 포크음악과 더불어 자연스럽게 함께 영향을 미친 유럽의 포크댄스와 플라멩코 그리고 기타 라틴 아메리카 지역의 민속춤까지 다양한 춤들이 재즈음악에 녹아내리면서 40년대 스윙의 시대까지 과거와는 전혀 다른 춤의 문화가 시작되었다.

     이 일련의 커플 사교댄스, 우리가 지루박으로 알고 있는 지터벅, 트위스트, 스윙, 맘보 등 20세기를 흔들었던 춤들이 바로 재즈댄스가 되는 것이다. 하지만 재즈댄스는 다른 의미도 갖고 있다. 대중적인 공연무용과 재즈에서 유래했거나 재즈의 영향을 받은 현대무용의 제반 형식을 가리키는 의미로도 쓰인다. 정말 대중적인 사교 커플댄스의 명칭과 재즈의 영향을 받은 현대무용 혹은 공연무용을 의미한다는 것은 상당히 재미있는 사실이다.

 

     이것은 현재 재즈가 미국의 대중문화에서 현대음악, 더 나아가 현대 대중예술의 대표적 장르로 자리 잡은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미국은 이민정책으로 인해 1885년부터 1917년까지 인구가 2배 이상 늘어났고 농업과 공업 생산력 또한 세계 정상급으로 올라서게 된다. 록펠러와 카네기 그리고 모건으로 대표되는 미국의 산업은 근대의 상징과도 같았다. 또한 10년 사이에 미국은 푸에르토리코, 필리핀 등을 합병했고 쿠바, 산토도밍고 아이티 파나마를 보호령으로 만들었으며 멕시코 만 전역을 관장하게 되었다. 재즈 또한 이 미국의 상황과 함께 새로운 경제 문화의 중심지가 된 시카고와 뉴욕으로 그 중심지를 옮기게 된다. 게다가 1919년 금주령이 발령되면서 재즈는 비밀스런 카바레로 자리를 옮기게 되고 마찬가지로 음악 또한 비밀스럽고 퇴폐적인 분위기를 보이게 되기도 하지만 반대로 자유에 대한 갈망과 융합되어 재즈를 좀 더 자유로운 형식으로 발전시키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또한 대규모 이민에 의한 급격한 사회적 변화는 재즈의 분위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되는데 초기 재즈 스타일이라 할 수 있는 래그타임의 분위기는 많이 사라지고 일반적으로 다중의 멜로디가 전개되다가 각 관악기가 솔로 연주를 하여 마치 여러 멜로디가 실타래처럼 뒤엉키는 재즈 형식으로 발전하게 된다.

 

     이것은 다성적인 재즈의 특징이 처음으로 발현된 것으로 이민에 의한 다양한 문화적 요소가 재즈라는 음악적 틀 안에서 녹아내린 결과라 할 수 있을 것이다. 흑인과 유색인종으로 이루어진 밴드만이 아니라 백인들로 이루어진 밴드도 만들어지게 되고 음악적인 다양성과 경제적 풍요는 결과적으로 20년대 빅밴드 재즈 시대를 열게 된다. 경쟁적으로 스케일이 큰 음악을 선보이며 이 시대를 대표하는 곡으로는 교향곡 스타일의 재즈곡이라 할 수 있는 랩소디 인 블루Rhapsody in Blue이다.

 


이제 랩소디 인 블루의 경우는 재즈가 아니라 클래식같이 느껴지기도 한다.


     1차 세계대전 덕분에 더 부유해진 미국은 1925년 외향 상으로는 당대 최고의 행복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자동차, 냉장고, 라디오는 당시 미국인의 삶을 대표하는 부의 상징이었다. 레저와 유흥업의 발달은 자연스럽게 재즈에도 영향을 미쳤으며 금주령은 오히려 카바레와 기타 클럽들의 부를 축척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술을 단숨에 들이키는 원샷이 유행하였고 경제적인 윤택함을 누리던 대도시에서는 미국의 전통이라 할 수 있는 청교도적인 금욕주의에 저항하는 풍조 또한 있었다. 이 모든 것이 재즈에 영향을 미치게 된다. 이 모든 상황이 재즈가 발전하는 데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던 것이다.

 

     뉴올리온스 스타일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루이 암스트롱의 음악은 독주가 중심이 된 멜로디 형식으로 발전하게 되었으며 밀주와 알카포네와 같은 마피아, 언터쳐블와 같은 영화의 상황이 당시 재즈를 키운 배경이 된다. 독주가 중심이 된 음악 스타일은 각 파트별 연주기법의 다양한 발전을 야기하기도 하지만 한정된 공간에서 숨어서 이루어진 재즈 공연은 전체적으로 재즈를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는다. 하지만 자유에 대한 갈망이라는 에너지는 이후 재즈가 혁명적으로 발전하게 하는 원동력이 된다. 30년대 시카고의 싸구려 술집에서 연주하던 흑인 연주자들은 부기우기 스타일의 흥겨운 블루스 음악을 연주하곤 했다. 취객을 위한 반주(伴奏)정도의 음악이었던 것이다. 재즈의 일부분이었던 블루스는 35년 스윙의 시대와 55년 로큰롤의 시대에 주목을 받게 되고 이후 독립된 음악장르로 분리 발전하게 된다.



듀크 엘링턴의 피아노와 존 콜트레인의 색소폰 협연.

재즈는 도시적이면서 멜랑꼴리한 음악이기도 했다.  

 

     1920년대 재즈의 역사에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는 인물이 바로 듀크 엘링턴이다. 듀크 엘링턴은 정교한 작곡 작업을 기본으로 하여 팀 전체와 각 연주가 사이에 대화하는 것 같은 연주 스타일을 착안하게 되었고 이후 이것을 엘링턴 스타일이라 부르며 자기 음악의 틀을 만들게 된다. 듀크 엘링턴의 가치는 바로 재즈 오케스트라의 음악적 미학이 꽃피우게 되었다는 것, 바로 그 시작이었다는 데에 있다. 하지만 이런 음악적인 실험과 예술성만 꽃 피운 것이 아니다. 10여명의 대규모 밴드들의 음악에 맞추어 춤을 추며 즐기는 것이 당시의 일반적인 상황이었고 재즈는 미국의 대표적인 대중문화로 자리 잡고 있었다. 우리가 일제의 지배에 신음하고 있을 때 미국에서 재즈는 대중적으로 성장하고 있었으며 비단 미국만이 아니라 유럽과 다른 세계의 여러 지역, 심지어 일본,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도 재즈라는 새로운 소리가 전해졌다. (계속)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듀크 엘링턴의 Take A Train

재즈 피아노를 연상하면 듀크의 바로 이곡이 떠오른다. 

아래는 같은 곡의 빅밴드 편곡으로 듀크 엘링턴 밴드가 연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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