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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에서 핀 꽃 라틴재즈 2. 포크(folk), 양키 그리고 크레욜 혹은 끄리오요 : The subjects of The 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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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전에 포크라는 단어를 찾아보면 아래와 같다.

 

1 [집합적] (생활양식을 같이하는) 사람들(people) 문화적 의미로 민족

[USAGE] 집합적으로 복수 취급을 하나, 《미·구어》에서는 이 뜻으로 folks 형태도 쓴다. 지금은 대체로 people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old folks 노인네들

2 [보통 pl.] [친밀감을 가진 호칭으로] 여러분

Folks, we are now approaching New York City. 여러분, 곧 뉴욕시에 도착하겠습니다.

3 [pl.;ones folk] 《구어》 가족, 친척; 양친

my folks 우리 가족[부모]

your young folks 댁의 자녀들

4 [the folk;복수 취급] 서민, 민중, 민족 《나라의 문화·전통·미신 등을 전승하는 사람들의 집단》

5 《구어》 =FOLK MUSIC

 

   일반적으로 우리나라에서는 70년대 통기타(포크기타) 시대 유행한 음악을 포크뮤직이라 부른다. 청바지와 맥주 그리고 통기타의 선율이 어쩌면 포크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연상되는 이미지일 것이다. 하지만 사전적 의미로만 본다면 포크라는 단어는 생활양식을 같이하는 사람 즉, 같은 민족을 의미하고 포크가 들어가 합성된 용어들은 모두 민족적인 성격을 나타내는 단어라 할 수 있다. 개개인들의 상황이나 이주의 역사에 따라 차이가 있긴 하겠지만 조상들이 살던 그 터전을 떠나 새로운 미지의 세계로 떠나는 것은 나름대로 절박한 이유가 있기 때문이며 이때에 가져갈 수 있는 악기란 휴대할 수 있는, 크지 않은 악기 정도가 전부였을 것이다.

   적어도 확언할 수 있는 것은 음악적으로 유럽의 이주민들의 민속음악이 미국과 아메리카 대륙의 초기의 음악이었으며 다양한 이주민들의 서로 다른 문화와 예술은 새로운 터전에서 서로 교류하며 앞에서 언급한 흑인문화의 경우와 흡사하게 하나로 통합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그렇게 형성된 융화된 유럽의 포크음악이 재즈의 역사에서 이야기하는 백인음악 혹은 유럽음악인 것이다. 유럽의 클래식 전통과는 다른 전통을 가진 쉽게 우리의 민요와도 흡사한 노래들이었던 것이다.

 

   물론 유럽의 민족음악, 민중음악이라 표현하는 것이 어쩌면 좀 더 사회과학적일 수 있겠지만 유럽의 주류라기보다는 초기 미국의 이민자들이 정치적 경제적 종교적 소수자였기에 오히려 포크음악이라 표현하는 것이 확실하게 그 의미를 전달할 수 있을 것이다. 민중/민족 예술이 당시 유행하는 문화사조와 영향을 주고받으며 특히 도시 상공업지역을 중심으로 새로운 대중문화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은데 반해 이런 관계에서 소외된 지역은 전통적인 의미의 민족문화/예술의 경우처럼 음악//연극 등의 요소들이 결합된 종합예술적인 성격을 띠며 이것은 구전의 방법을 통해 새로운 사람들이 퍼포먼스에 참여하며 자연스럽게 익히게 되며 그날의 분위기, 장소, 공연자들에 따라 끊임없이 변화하며 세대를 거쳐 다양한 방식으로 재창조되지만 기본적인 틀은 그리 크게 변하지 않는다. 이런 포크 문화가 대서양을 건너서 새로운 땅 미국에 도착했을 때는 무엇보다 그 틀이 변화하게 된 것이다. 상이한 민족 간의 포크문화가 미국땅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무언가 새로운 것으로 변화한 것이다. 여기에 새로운 땅의 풍요로움과 무언가를 개척하고 정복해야 한다는 미국 개척시대 초기의 분위기까지 섞여 유럽적인 것과는 구별되는 무언가가 탄생한 것이다. 그것을 어쩌면 이 단어로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양키(Yankee)


     양키에 어원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일반적으로 처음에는 뉴잉글랜드의 주민들을 지칭하였고 이후 뉴잉글랜드 출신의 이주민들을 언급하는 단어였다. 남북전쟁 당시에는 북군을 지칭하는 단어였고 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미국적인 어떤 것, 유럽적인 것과는 구별되는 미국적인 어떤 것을 약간 폄하의 의미를 담아 부르는 단어가 되었다. 미국적인 어떤 것을 무엇이라 명명하는 것과는 별개의 문제로 미국은 독립전쟁 당시 영국으로부터 정치적 경제적 그리고 문화적으로 독립되기를 바랐던 것 같다. 전쟁의 승리로 인해 미국은 정치/경제적으로 영국으로부터 독립을 했다. 하지만 문화적인 부분은 독립이 되었다 쉽게 말할 수 없다. , 확실한 문화적 독립이 필요한 시기였던 것이다.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최고의 부동산 사업에 뛰어든 미국은 1783년 독립당시 영토의 몇 배가 되는 땅을 100년도 안되어 차지하게 된다. 1867년 러시아로부터 알래스카를 구입하고 1898년 미서전쟁의 승리로 카리브해 지역의 주도권을 확보하고 태평양 중앙의 섬 하와이마저 영토로 편입하게 된다. 지도에서 짙은 핑크빛으로 표현된 플로리다는 스페인의 땅이었고 현재 미국의 중부지역에 해당하는 당시 루이지애나는 프랑스의 땅이었다. 다시 말해 재즈의 고향이라 알려진 뉴올리온스를 비롯한 미국의 남부지역은 스페인, 프랑스, 멕시코 등의 영향을 받는 곳이었다. 물론 당시 국경선이라는 것이 우리나라와 북한처럼 휴전선이 있는 것도 아니고 지형적인 구분점이 없다면 그저 국가 간의 회담의 결과로 서류에서만 존재하는 것이었다. 여권과 신분증이 없이도 충분히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다른 나라로 여행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멕시코 만을 중심으로 플로리다 지역을 비롯한 미국 남부의 항구들은 멕시코와 쿠바와 빈번한 교류가 있었으며 뉴올리온스지역과 인접한 텍사스는 멕시코에 속해있다 독립하여 미국에 편입되었으나 문화적으로는 멕시코 북부의 문화지역이었던 것이다. 이처럼 다양한 문화가 어렵지 않게 교류하고 있었던 곳이 바로 당시의 아메리카 대륙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재미있는 것은 독립당시의 영토와 오리건주와 북부 일부 지역을 제외하면 캘리포니아지역과 텍사스는 멕시코의 땅이었고 현재도 멕시코적인 문화가 남아있다. 루이지애나 지역은 프랑스 문화권이며 붉은 색으로 표시된 플로리다는 스페인에서 넘겨받은 지역이다. 다시 말해 미국의 대부분의 중서남부 지역이 넓게 라틴 문화권이었다고 말할 수 있다.



    이런 사회적 배경으로 미국적인 어떤 것이 탄생하게 된다. 유럽의 포크문화와 스페인 프랑스의 문화 그리고 멕시코의 문화에 아프로 라틴의 요소가 미국에서 서로 만나며 대화를 나누게 되는 것이다. 이 새롭고 유럽적이지 않은 어떤 것을 양키라고 불렀으며 초기에는 폄하의 의미를 담았으나 곧 전 세계적인 유행이 된다. 특히 세계 2차 대전 이후 황폐해진 유럽과 아시아의 여러 국가에서 미국적인 것, 양키라는 것은 신대륙의 풍요로움과 새로움의 상징으로 폄하의 의미보다는 동경의 의미가 점점 강해진 것이 사실이다. 20세기 중반 이후 무엇보다 문화적으로는 거대한 열풍이 되었으며 그 열풍 중앙에 우리나라 또한 예외 없이 위치하고 있었다. 6.25전쟁 이후 ‘미제’라는 말은 마치 지금의 ‘명품’이란 단어와 다르지 않게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열풍의 문화적 음악적 이름이 재즈였고 어쩔 때는 맘보였고 한때는 스윙이었다


     흑인, 크레올creole1 혹은 끄리오요criollo2

 

     재즈의 역사를 다루는 많은 자료들이 공통적으로 언급하는 것이 바로 크레올이다. 1920년대 일명 뉴올리온스 재즈 시대를 이끈 주역이 바로 이 크레올이다. 재즈가 흑인에 의해 시작되었다는 생각 때문에 크레올을 흑인과 프랑스인 혹은 스페인인과의 혼혈로 언급하는 경우가 많으나 마치 캐나다 퀘벡 주의 프랑스 출신 사람들처럼 유럽계이나 아메리카 대륙 태생일 경우 크레올 스페인어로는 끄리오요라고 불렀으며 ‘아메리카 대륙에서 성장한’ 정도의 의미이다. 캐나다 퀘벡 주의 프랑스어와 프랑스 본토의 프랑스어가 차이나고 그 둘 사이의 문화도 차이나는 것과 마찬가지로 16세기 이후 아메리카 대륙에서 성장한 프랑스계 사람들 그리고 스페인계 사람들과 유럽 본토의 사람들 사이에서는 문화적으로 점점 다른 모습이 많아졌고 나중에는 확연히 구별될 정도였다. 이 단어는 이후 점점 의미가 확장되어 몇 세대를 거쳐 아메리카 대륙에 정착한 흑인 혹은 백인과 흑인과의 혼혈과 새로 아프리카에서 유입된 흑인을 구별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했고 또는 유럽 화된 아메리카 대륙의 원주민들을 언급하는데 사용되기도 했다. 굉장히 애매하며 광범위하게 사용되는 단어이나 아메리카 대륙 자생적인 인종적 문화적 어떤 것을 의미한다는 것은 공통이라 하겠다.

     1492년 콜롬부스의 신대륙 발견이라는 세계사적 사건 이후에 16세기부터 유럽계의 이주민들은 계속 늘어났으며 19세기정도가 되면 자생적인 문화만이 아니라 정치조직과 경제적 구조도 어느 정도 틀이 잡힌다. 지도-2와 같이 플로리다, 루이지애나, 텍사스 캘리포니아 지역이 멕시코 프랑스 스페인의 영향 하에 있었으며 무엇보다 항구를 중심으로 연결되는 무역루트는 물류만이 아니라 문화적인 교류도 가능케 했으며 이것은 1898년 미서전쟁에서 미국이 승리하면서 카리브 해의 주도권, 다시 말해 해상권을 장악하면서 오히려 더 강화된 면이 있다.

지도-3을 보면 대서양과 아메리카 대륙, 특히 멕시코 만과 카리브 해를 볼 수 있다. 플로리다에서 쿠바를 지나 늘어선 카리브 해의 도서지역은 남아메리카 대륙과 연결되고 쿠바는 마치 멕시코의 유카탄반도와 연결될 듯 보인다.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와 쿠바 그리고 마이애미(플로리다)지역이 감싸는 바다가 바로 멕시코 만이며 그 바로 밑으로 이어진 유카탄 반도 쿠바, 그리고 카리브 해 도서지역과 남아메리카 대륙이 둘러싼 바다가 바로 카리브 해다.

 

지도에서 푸른 색으로 보이는 것이 강줄기들이다. 당시에는 강이 현재의 철도 혹은 고속도로의 역할을 했다. 증기선들이 검은 연기를 뿜으며 운송한 것은 사람만이 아닌 것이다. 이 강과 바다를 통해 문화 또한 자연스럽게 이동했다.



     멕시코 만 지역과 카리브 해 지역 모두 바다를 가로막고 있는 형상이다. 쿠바를 중심으로 마이애미와 멕시코 만 그리고 유카탄 반도가 하나의 원을 그리고 있고 쿠바에서 시작하여 트리니다드 토바고 그리고 베네수엘라와 콜롬비아가 만들고 있는 원이 바로 카리브 해이며 저 지역이 일반적으로 트로피칼 문화권이라 부르는 곳이다. 바다가 그리 깊지 않아 넓은 대양을 항해할 때보다 좀 더 안정적으로 항해할 수 있었으며 미국 남부지역은 더욱이 강줄기를 따라 물류를 이동시킬 수 있었으므로 당시 플로리다와 뉴올리온스(루이지애나) 그리고 멕시코의 베라쿠르스 그리고 쿠바의 하바나 등은 해상무역의 중심지였고 다른 카리브 해의 도서지역 또한 마찬가지였다.

     이 말은 결국 이 해상무역의 거점도시에는 자연스럽게 마치 심수봉의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의 가사와도 같은 일들이 빈번하게 일어났고 선원들을 위한 여러 향락시설이 들어섰으며 술과 춤, 노래 등이 자연스럽게 함께 했었을 것이란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유럽의 유행과 새로운 문물도 이 지역을 중심으로 퍼져갔으며 해상무역과 내륙지역의 무역과 장사를 통해 크레올, 끄리오요들은 자신의 경제적 입지를 확고히 했으며 특히 뉴올리온스의 경우 멕시코 만을 통해 물류를 공급받고 이것을 미시시피 강을 통해 내륙으로 판매하는 물류의 기지와 같은 역할을 했으므로 당연히 다른 지역에 비해 조금 더 빈번한 문화적 교류가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멕시코 만을 중심으로 한 해상무역의 거점지역들은 멕시코, 스페인, 쿠바 그리고 루이지애나 지역으로 루이지애나는 1803년 미국으로 넘어가기 전까지 프랑스의 식민지였다. 다시 말해 이 지역이 19세기까지 바로 라틴 문화권이었다는 것을 말한다.

 

깊이가 200미터도 채 안되는 연안을 따라 배가 이동하고 물자가 이동했던 것이다. 쿠바와 뉴올리온스는 어찌보면 같은 문화권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또한 기타 멕시코 지역과 카리브 해 도서 지역도 마찬가지이다.



     ‘라틴’이란 단어는 코레올, 끄리오요와 마찬가지로 굉장히 애매한 단어이다. 유럽에서는 무엇보다 라틴어가 사용되던 지역, 로마제국의 뒤를 이어 종교적으로 가톨릭이며 언어적으로 라틴어를 공용어로 사용했던 지역의 문화와 예술 등을 의미하기도 하고 아메리카 대륙에서는 앵글로 색슨과 대립되거나 반대되는 어떤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보통 라틴문화 혹은 라틴음악이라고 하면 두 번째의 의미, 다시 말해 아메리카 대륙에서 앵글로 색슨과 구별되는 문화, 음악을 의미하는 것이다.

     재즈가 뉴올리온스 지역을 중심으로 발전한 음악이라면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 바로 이것이다. 재즈라는 음악이 성립된 문화적 배경에는 해상 무역이 중심이 된 라틴문화권이 있었으며 이 라틴 문화권을 움직인 이들이 바로 크레올 혹은 끄리오요라고 부르던 사람들이었다. 다시 말해 크레올 혹은 끄리오요에 의해 시작된 아메리카화 된 포크음악이 19세기 말 혹은 20세기 초에 성립되기 시작된 재즈의 원형이라 할 것이다. 이후 뉴올리온스에서 시작된 재즈가 미시시피강을 따라 퍼지기 시작한 것을 보면 적어도 20년대 재즈까지 이 멕시코 만을 중심으로 하는 라틴문화권을 자양분으로 하여 성장하였다 할 수 있을 것이다. 거듭 강조하지만 재즈를 그 탄생이란 기준으로 본다면 라틴문화권을 자양분으로 하여 만들어진 아메리카의 포크음악으로 볼 수 있다.

 

     물론 재즈는 이렇게 시작되었으나 새로운 세계 강자로 등장한 미국의 음악으로 성장하게 되었으며 50년대를 전후하여 전 세계적인 인기를 얻게 되고 그 이후로 현재까지도 계속 발전하고 있는 음악이며 어떤 의미로는 현대 대중음악, 근대적 음악, 근대적 대중음악, 현대의 클래식 등의 이미지를 갖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특히 19세기 중반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100년은 세계가 급격하게 변화했던 시기로 기존의 전통과 인식의 틀이 혁명적으로 바뀐 시기였던 것은 그 누구도 부정하기 어려울 것이다. 이 시기에 재즈는 그 자체로 가장 혁명적인 음악이었고 스스로의 혁명, 자기 혁신/변신 또한 역사에서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대단한 것이었다. 이런 새로움을 양키라는 단어가 함축적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재즈의 장르적 특성을 따라가다 보면 마치 초등학교 가을 운동회의 만국기가 연상된다. 그 정도로 다양하고 심지어 이질적으로 보이기까지 하는 음악 스타일이 같은 재즈라는 이름으로 불린다는 것이다. 마치 불협화음처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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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가장 대표적인 인물이 재즈의 상징과도 같은 루이 암스트롱이다. 라틴 아메리카적으로 표현하면 모레노moreno, (피부색이 검은 정도의 의미)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2. 라틴 아메리카 지역 특히 남아메리카 지역에서 끄리오요하는 명칭은 아메리카에서 태어난 유럽의 후예라는 의미가 강하다. 유럽계의 후예, 죽 백인에 가깝긴 하지만 문화적 차이로 인해 유럽에서 건너온 이들로 부터 차별을 받기도 했다. 남아메리카의 독립 영웅인 시몬 볼리바르와 산 마르띤 또한 끄리오요라고 할 수 있는데 유럽에서 건너온 이들의 차별이 결국 독립을 꿈꾸게 한 큰 원인이 되었던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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