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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속에서 핀 꽃 라틴재즈 #2. 아프리카, 흑인문화 그리고 백인문화 : The Background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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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노예무역에1) 대해 언급하려면 또 다른 책 한권을 써도 모자를 것이다. 아메리카 대륙에2) 플랜테이션 농업이 시작하면서
아메리카 대륙에는 엄청난 노동력이 필요했고 자연스럽게 흑인 노예들이 유입되었다. 담배, 사탕수수, 면화 등의 작물을 재배하기
위해 흑인 노동력이3) 필요했기 때문이다. 이후 광산으로 대표되는 산업원료들을 생산하는 1차 산업이 발달함에 따라 노예들의
수요는 계속 이어졌다. 주로 카리브 해 도서지역과4) 브라질 그리고 미국 남부 등의 지역에서 흑인 노예들은 거주하였고 남미와
중미의 일부 지역에서도 여러 가지 필요에 의해 흑인들이 거주했다고 한다. 특히 카리브 해의 도서지역의 경우 인구의 85%
이상이 흑인 노예였다고 한다.

   다시 말해 흑인들의 새로운 땅은 아메리카 대륙에서 바로 카리브 해 지역이었다고 봐도 그리 큰 무리가 없는 것이다.

 

당시 세계 교역의 일반적 경향, 물론 무역루트를 따라 문화도 교류한다.


 

   가혹한 노동 속에서도 어느 정도의 쉼이 허락되었으며 초기에는 각 부족별로 약간 격리된 채로 자신들의 음악과 노래와 춤을
즐겼으나 함께 고생한다는 공감대속에서 각 부족 사이에서 적극적인 문화의 교류가 일어나게 되었다. 아프리카 본토 각 부족문화와
비슷하면서도 다른 새로운 문화가 탄생하게 되는데 이것이 일반적으로 이야기하는 흑인문화의 원형이 될 것이다.
5)

   게다가 스페인은 유럽국가 중에서 특이하게 지리적으로 모로코와 인접하여 흑인에 대한 인종적인 차별이 상대적으로 덜했으며
아랍의 영향 하에서 자연스럽게 아랍문화를 받아들였으며 아랍문화에는 또한 흑인문화의 요소들도 존재했다. 게다가 플라멩코로
대표되는 개방적인 스페인 남부 문화와 뱃사람들의 문화가 사탕수수의 재배지역이면서, 콜롬부스가 처음으로 발견한 지역이며,
아메리카 대륙의 다른 지역으로 들어가기 위한 관문과도 같았던 카리브 해 도서지역에서는 별다른 저항과 거부감 없이 다양한
문화가 하나로 융화될 수 있었다. 그 원인으로는 여러 가지를 생각해볼 수 있으나 무엇보다 혼혈, 혼인 등으로 이어진 관계에서
생각해볼 수 있다. 문화가 섞이고 교류하고 발전하는 데에는 혼인만한 것이 없을 것이다. 서로 다른 문화권을 바탕으로
태어나고 자란 아이가 바로 혼합된 문화의 상징적 증거가 될 것이니 말이다.
6)

   다시 말해 아메리카 대륙에서 각 인종별 차이를 넘어 새로운 문화적 융합을 거친 것이 아프로-라틴 문화라는 것이다.
아프로 라틴의 정확한 개념은 아메리카화한 아프리카7) 및 라틴문화라 이해하면 될 것이다. 즉, 새로운 어떤 것이라는 것이다.
그저 아프리카적이 요소들이 섞여서 된 것이 아니라 다양한 부족문화가 하나로 섞이며 새롭게 융합한 새로운
어떤 것이다
.

   자신의 부족의 정체성을 나타내거나 사냥하는 방법, 전투하는 법등을 담은 사회 교육적 의미의 춤과8) 음악이 단순히 향수를
달래기 위한 음악 혹은 노동의 피로를 달래기 위한 사회적 놀이로서의 춤과 음악으로 변하게 되었던 것이다. 부족 간의 교류가
커지면 커질수록 부족색이 점점 옅어져 아메리카 대륙안의 아프리카 공통문화가 형성되고 이후 지역 축제와 함께 발전하면서
아프리카 각 부족 사이에서의 문화적 융합만이 아니라 스페인 프랑스 등의 유럽문화9)와도 자연스럽게 섞이며 아메리카만의
흑인문화 혹은 아메리카 문화의 한 요소가 된 것이다. 이것이 아프로 라틴문화이다.

  특히 다양한 타악기를 사용하여 엇박이 가득한 경쾌한 아프리카의 리듬이 비슷한 성향의 유럽의 포크음악과 만나면서 새로운
화학반응이 일어나게 되는데 이것이 초기 라틴음악, 19세기 중반까지의 아메리카 대륙의 음악인 것이다. 물론 아프리카 음악이 
타악기만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은 아니지만 배를 타고 건너온 노예들에게 허락된 음악이라는 것은 노래와 자신의 몸 혹은 기타
사물을 두드려 낼 수 있는 리듬이 전부였을 것이다. 
 

   문화 제국주의 혹은 오리엔탈리즘이란 개념이 있다. 에드워드 사이드가 주장한 개념인데 쉽게 표현하면 서구에서 보는 동양의
모습 그것은 서구의 선입견에 기인된 허구의 것이라는 것이며 쉽게 동양에 대한 서양의 사고방식이며 지배방식이라는 것이다.
여기서 갑자기 왜 문화 제국주의/오리엔탈리즘10)을 언급하는지 의아해할 것이다. 오리엔탈리즘이 존재한다는 것은 옥시덴탈리즘
도 존재한다는 말일 것이다. 이때 등장하는 동양과 서양11) 의 개념은 미국과 라틴 아메리카의 문화를 언급하면서 등장하는
흑인문화의 개념과 아주 비슷한 양상을 보인다. 즉, 실체가 있고 구체적인 예를 들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라 군집명사, 추상명사의
특성과 같이 막연하게 구체적 실체가 있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실체가 있는 어떤 것으로 착각하고 그 선입견에 따라 새로운 현상
혹은 눈앞에 있는 현상과 정보를 수용하고 파악하고 분석하는 것이다. 사실 한 개인이 평생 할 수 있는 직접 체험이라는 것은
어쩔 수 없이 한계가 있는 것이다. 80일이 걸리던 몇 해가 걸리던 세계 여행을 할 수도 있겠지만 그렇다고 전 세계를 다 알았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직접 체험하지 못한 세상에 대한 정보를 인식하기 위해 어쩌면 선입견으로 가득한 이 틀을
사용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오해와 여러 오류들이 야기될 수 있지만 많은 이들이 이 틀을 통해 사고하면 할수록
이 틀은 힘을 발휘하며 사상적, 예술적, 문화적 결과물들을 낳기도 한다.

    쉬운 예로 뒤에서 다시 언급할 할렘 르네상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문예의 모든 부분에서 역동적인 창작이 일어났던 할렘
르네상스는 이후 아프리카 본토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미국과 라틴 아메리카에서 이해되는 흑인문화라는 것은 결과적으로
아프리카 중서부 지역의 일부 부족들, 노예로 끌려온 일부 부족들의 고유한 문화들이 노예생활이라는 특이한 환경 속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형성된 것이지만 주류에서 배제된 소수인종의 문화운동 속에서는 그 사회의 주류문화와 대립하는 성향의
문화로 인식되면서 원래 자신들의 문화와는 비슷하면서도 또 다른 어떤 것이 되는 것이다.

   즉, 미국과 라틴 아메리카의 전체 문화에서 흑인문화를 언급하거나 재즈의 역사에서 흑인문화를 언급할 때, 그것은 역사적
문화적 실체를 가진 어떤 것이었으나 점차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추상적인 인식의 틀로 변화하게 된다. 그리고 추상적 인식의
틀을 통해 생각하고 그 틀을 통해 가시적인 문화적 예술적 결과물들을 만들게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일반적으로 말하는 미국에서의 흑인문화는 아프리카의 문화가 아니며 미국과 라틴아메리카에서 성장한 새로운
문화이다. 하지만 그렇게 형성되고 인식된 흑인문화가 문화 예술적 결과물을 만들고 되고 미국이라는 길을 통해 전 세계로 퍼진
것이다. 비단 미국과 라틴아메리카만이 아니라 아프리카의 문화와 예술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이다. 현지의 문화와 예술이 미국의
영향을 받아 변하는 것이다. 이것이 옳은 것인가 아닌가를 따지기 이미 일어났던 일이고 일어나고 있는 일이다.
   그러므로 흑인문화란 것은 있는가란 질문에는 그렇다와 아니다가 모두 정답일 것이다. 물론 ‘그렇다’쪽에 좀더 무게 중심이 있다.
왜냐하면 지금 이 순간에도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에너지가 되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하고 신석기 시대에서 청동기 시대로 넘어가는 시대부터 20세기까지 노예라는 존재가 없었던 적은 없다.
침략은 당한 약한 부족들은 자연스럽게 노예가 되었지만 이것이 인종적인 차별에서 기인한 것은 아니었다. 물론 경쟁관계의
각 부족이나 민족 사이에 서로를 폄하하거나 미워하는 마음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그것이 제국주의 시대에 드러난 인종적
차별과는 거리가 있다할 것이다. 인종적인 이유로 사람을 차별하는 것은 굉장히 근대적인 사건이며 이 차별로 인해 인종적으로
구분되는 문화까지 생겨난 것이다. 다시 말해 인종적 차이와 문화적인 차이에 의해 인종적 차별이 있었던 것이 아니라
인종적 차별로 인해 다르다고 믿는 혹은 적대시 하는 문화가 생겨난 것이다.
인종적인 차별이 상대적으로 적었으며
혼혈이 광범위하게 이루어진 라틴 아메리카 지역에서 여러 문화가 혼재된 새로운 문화가 발전한 것과는 달리 인종적/문화적 차이를
강조했던 미국의 문화12) 를 비교해보면 이것을 쉽게 알 수 있다.

 

   빛이 있어야 어둠이 있고 하얀색은 검은색이 있어야 그 존재를 확연히 드러낼 수 있다. 동양이 있어야 서양이 있을 수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흑인문화라는 개념이 다분히 허위성을 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백인문화라는 개념도 허위인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무엇을 언급해야 할 것인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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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역설적으로 노예 무역의 중심은 바로 영국과 프랑스였다. 천부인권과 시민사상이 태동한 곳에서 노예무역이 성행했었다는 것, 그로 인해 엄청난 부를 누렸다는 것은 역사의 역설을 느끼게 하는 부분이다.

2) 19세기 아메리카 대륙은 국가의 구분이 별 의미없는 문화적 공동체였다. 현재의 국경선은 대부분 20세기 중반이 되어야 확실해진다. 한 마디로 오랜기간 동안 문화적 공동체였다고 봐야 할 것이다.

3) 흑인 노예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우리 선조들도 애니깽이란 이름으로 멕시코 유까딴 반도에 노예로 팔려온 것이 있다. 노예의 문제는 비단 흑인들만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4) MBC에서 방송된 [아마존의 눈물]이란 다큐에서 볼 수 있듯이 현재 원주민들은 유럽의 전염병에 무방비였다. 특히 카리브해 도서지역에서는 원주민을 거의 볼 수 없는데 이는 유럽의 전염병 탓이란 설이 유력하다.

5) 다큐멘터리 영화 calle54에서 추초 발데스가 인터뷰한 내용을 인용하였다.

6) 인종적 혼혈은 어쩔 수 없이 문화적 혼혈로 이어진다. 라틴 아메리카의 다양한 혼혈은 다양한 문화의 섞임이 있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7) 정확히는 지도-1과 같이 아프리카 중서부지역과 북회귀선에서 적도 사이의 지역 문화를 의미한다.

8) 흑인들의 공격적이면서 다이내믹한 춤은 춤 자체의 의미보다 실재 사냥이나 전쟁의 모습을 본 딴 것으로 이것은 유희적 측명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사실 사회교육적인 측면이 강했다. 사냥터에서 전쟁에서 춤을 잘 추는 것만으로 사냥감을 잡고 전쟁에서는 승리할 수 있었다.

9) 여기서 의미하는 유럽문화는 정확히 유럽 민중 문화이다.

10) 원래 의미로 보면 서양에서 본 동양관, 혹은 그 선입견 정도의 의미이나 보통 오리엔탈리즘으로 통용되어 오리엔탈리즘이라 표현했다.

11) 우리나라 혹은 동북아의 기준으로 보면 굉장히 확실해 보이는 동양과 서양의 구분은 사실 굉장히 애매한 것이다.  동유럽과 중동지역의 문화적 유사성 혹은 인도 유럽어족이라는 언어의 구분 등을 생각해보면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같은 종류의 언어를 썼다는 것은 같은 뿌리 혹은 같은 문화권이였다는 강력한 증거이다.

12) 미국의 원주민, 아메리칸 인디언의 생활을 생각해보고 라틴 아메리카가 혼혈로 인해 메스티조라는 인종이 탄생했으며 라틴 아메리카의 인구 중 가장 많은 숫자를 차지한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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