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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비에르 바르뎀 그리고 The Sea Insid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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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에서
사이코패스적인 살인마 연기를 했고
내 남편의 애인도 좋아 .. 에서는 페넬로뻬 꾸르즈와 스칼릿 요한슨을 동시에 ..
거기에 한명 더 ... 암튼 세계에서 꼽히는 행운남 연기를 했다.
진정 부러운 ....T^T

하비에르 바르뎀 ...
스페인어권의 대표적인 마초 .. 영화판에서는 라틴계 변강쇠 !!!

젊은 시절 바르뎀의 이미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비가스 루나 감독의 마초!! 숫컷!!




우리나라에서는
하몽하몽의 주인공으로 약간 알려졌었고 (그 영화에서도 페넬로뻬와 연기했다.)
라틴계 야한 영화의 주인공으로 널리 알려졌었다.
섹스 심볼 ..?? ^^

그런데 30대 중반부터 그의 연기가 날개를 단다.
명품도 이런 명품이 있을까 ??
 

저 눈이다. 바르뎀은 눈으로 반이상 먹어줬다.


Sea Inside ...  Suicide

스페인어를 사용하는 사람들에게는 두 단어가 아주 비슷하게 발음된다. 
물론 이것은 우연일 것이다. 감독은 스페인로 제목을 지었으니 말이다. 
바다 깊숙이 ... 

이 영화는 안락사에 대한 내용도 아니고 
자살에 대한 내용도 아니다.

그렇게 본다면 영화는 이상한 곳으로 빠지게 된다.

이 영화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문제이다.
뭐 ..?
아니라구 ??

이 영화는 줄리아와 라몬의 사랑, 팔자가 비슷한 두 사람의 공감대가 하나의
따뜻함을 만든다. 두 사람의 키스신은 영화의 백미중 백미이다.
어찌나 절절 하던지 ...

그런데 감독은 교묘한 대칭을 만들었다.
라몬은 정신이 이성이 멀쩡하다. 그는 육체가 말을 안들을 뿐이다.
훌리아는 영화에서 정확하게 나오지 않았지만
온 몸의 신경이 마비되는 퍼거슨씨 병 비슷한 것 같다.
그런데 그녀의 두뇌도 점점 마비되어 버리고 있다.
그녀는 육체가 멀쩡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무엇보다 정신을 잃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살았으나 그녀의 정신은 살았다고 할 수 없다.

인간이 육체와 영혼의 유기적 결합이라고 할 때
둘 중에 하나가 문제가 생길때 인간을 인간이라 할 수 있을까?
이것은 닳고 닳은 질문이다. 정상이란 뭔지, 온전한 인간이란 뭔지
그 기준은 무엇이고 누가 만든 것인가 등등 여러가지
질문이 나올 수 있고 답은 없다.

답이 없다.
식물처럼 살고 싶다고 하면 당연히 인정해줘야 한다.
본인의 선택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내 정신이 온전할 때 죽고 싶다는 것이
인간의 만용적 욕망일까?
사고에서는 정신적으로는 주체적이나
육체적으로 다른 이에게 종속된 삶을 사는 것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라고 한다면
그것은 폭력이 아닐까?

어떤 삶을 택하던 그것은 개인의 자유이다.
자신을 타락시키는 것과
자신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주체적 행위로서 죽음을 선택하는 것과는
분명히 차이가 있다.

이 두 가지를 구별하지 못한다면 영화는 이상한 이야기가 된다.
당신이 자신 스스로 죽을 수도 없는 완벽한 의존적 삶을 살고 있다면
당신은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

그 선택은 당신의 것이다.
그러므로 존중받아야 한다.

그렇게 살던지 이렇게 죽던지 이렇게 살던지 그렇게 죽던지 ..

삶이 의무가 되던지
삶이 권리가 되던지 ..



사족)

바로 위의 말은 없어도 좋을 것 같다.
너무 직접적으로 모든 것을 말하니 말이다.

다만,
훌리아는 라몬을 이해했다. 라몬의 모든 상황을, 그의 심성을, 그의 내면을 ...
물론 자신의 병도 분명히 어떤 원인이 되었겠지만 말이다.

로사는 라몬을 몰랐다. 그저, 공명심에 그를 찾아왔고 그녀에게 그는 무언가를 털어놓는
대상이었다. 그러다 그녀가 그를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그를 도와주는 것이다.

두 여인 모두 라몬을 이해했지만
같이 죽는 것과 죽는 것을 도와주는 것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물론 벽에 똥칠을 해도 이승에서 굴러먹는 것이 좋다는 정서가 있는
아무리 어렵고 힘들어도 버티고 견디며 살아야 한다는 정서가 강한
우리나라에서 라몬의 모습은 약간 이해되기 어려운 면
본능적으로 거부하게 되는 면이 있다.

라몬은 세계를 비관적으로 보지 않았다.
그는 세상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아름다운 이별을 선택한 것이다.
그의 선택이 존중받아야 한다는
메세지를 던진 것으로
영화는 충분히 아름다웠다.


그리고 죽음이란 것은
언제나 두려운 것이다.

비관적 자살과 충동적 자살과
그의 선택을 구분하려 한다면
그것은 무리한 생각일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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