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리비아의 긴축은 왜 아르헨티나와 다른 길로 갔는가
같은 긴축 처방이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는 정권을 버티게 했고, 라파스에서는 정권을 벼랑으로 몰았다. 차이는 경제학이 아니라, 충격을 흡수할 정치가 남아 있었느냐에 있었다.
2026년 5월의 라파스는 도시라기보다 포위된 진지에 가깝다. 광원들은 정부청사를 향해 다이너마이트를 던지고, 경찰은 최루탄으로 응수한다. 도시로 들어오는 간선도로는 차단됐고, 식량과 디젤은 물론 병원의 의료용 산소까지 바닥났다. 구급차가 바리케이드에 막혀 숨진 시민이 나왔고, 충돌 과정에서도 사망자가 발생했다. 안데스 고원의 행정수도가 다른 누구도 아닌 자국 시민들에게 봉쇄당한 것이다.
이 장면을 한 줄로 줄이면 흔히 "긴축이 부른 폭발"이 된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너무 얇은 설명이다. 볼리비아에서 지금 무너지고 있는 것은 한 가지 정책이 아니다. 20년간 나라를 떠받쳐 온 경제 모델과, 그 모델이 일으키는 충격을 흡수하도록 설계됐던 정치 시스템이 — 동시에 — 주저앉고 있다. 긴축은 방아쇠였을 뿐, 화약은 오래전부터 쌓여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 지점에서 아르헨티나라는 비교항이 쓸모 있어진다. 부에노스아이레스의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도 볼리비아 못지않게 가혹한 긴축을 밀어붙였다. 그런데 밀레이는 임기 반환점을 돌며 의회 기반을 오히려 넓혔고, 로드리고 파스는 취임 반년 만에 하야 압력에 시달린다. 같은 약을 먹은 두 환자의 예후가 이렇게 갈린 이유 — 그것이 이 글의 질문이다.
고아가 된 유권자들
답을 찾으려면 먼저 볼리비아 정치의 지반이 어떻게 꺼졌는지부터 봐야 한다.
2006년 에보 모랄레스의 집권 이후 볼리비아는 20년 가까이 좌파 사회주의운동당(MAS)의 시대였다. 그러나 말기의 MAS는 안에서부터 갈라졌다. 모랄레스를 따르는 '에비스타'와 후임 루이스 아르세를 따르는 '아르시스타'의 권력 투쟁은 집권당을 의회 소수파로 전락시켰고, 2024년 6월 수니가 장군의 실패한 쿠데타 시도는 국가 제도의 취약함을 그대로 드러냈다. 결정타는 2025년에 왔다. 헌법재판소가 연임 제한을 재확인하며 모랄레스의 출마를 봉쇄했고, 지지율이 추락한 아르세마저 출마를 포기했다. 20년 만에 처음으로 MAS는 내세울 후보가 없었다.
그 결과가 '고아가 된 유권자들'이다. 원주민과 농민, 노동자 — 전통적으로 MAS에 표를 주던 계층 — 이 하루아침에 정치적 대변자를 잃었다. 이 사실을 기억해 두자. 뒤에서 아르헨티나와 갈리는 결정적 분기점이 바로 여기다.
이 진공 속에서 솟아오른 인물이 로드리고 파스다. 선거 초반 지지율 3%의 군소 후보, 전직 대통령 하이메 파스 사모라의 아들. 부패를 폭로한 경찰 출신 러닝메이트 에드만드 라라의 대중적 흡인력에 힘입어, 그는 '온건한 변화'를 내걸고 무당층과 갈 곳 잃은 옛 MAS 표심을 빨아들였다. 1차 투표 32.1%, 결선에서 우파의 호르헤 키로가를 누르고 당선.
여기서 핵심을 짚자. 파스는 충격요법을 공약으로 내걸고 이긴 게 아니다. 그는 '온건한 변화'의 얼굴로, 키로가를 막으려는 전술적 표와 갈 곳 잃은 좌파 표를 빌려 이겼다. 의회 과반도 없었다. 포퓰리스트와 옛 MAS계 원주민 그룹, 전통 보수가 뒤섞인 '빅텐트'는 출범부터 한 방향으로 걸을 수 없는 연합이었다. 파스는 권력은 쥐었지만, 자신이 곧 휘두를 칼에 대한 위임은 받지 못한 채 출발했다.

빈 곳간과 두 개의 환율
파스가 물려받은 곳간은 비어 있었다. 볼리비아 경제는 오랫동안 천연가스 수출에 기대 왔다. 2006년 이후 MAS 정부는 에너지를 국유화하고 산지 가격의 대부분을 국가가 환수하면서, 기업에는 수출가에 턱없이 못 미치는 값으로 내수에 공급하도록 강제했다. 단기적으로는 사회복지를 떠받쳤지만, 장기적으로는 재투자가 끊겼다. 다만 비판적으로 덧붙이면, 가스 쇠퇴는 국유화 '하나'의 탓이 아니다. 이미 발견된 광구의 고갈, 신규 탐사의 부재, 브라질과 아르헨티나가 자체 가스를 확보하며 사라진 역내 수출시장이 함께 작용했다. 어느 쪽이든 결과는 같았다. 가스가 벌어다 주던 달러가 마르자, 2014년 150억 달러를 넘던 외환보유액은 파스 취임 무렵 사실상 바닥났다.
그 빈자리를 메운 것이 두 개의 환율이었다. 2011년부터 1달러를 6.91볼리비아노에 못박은 공식환율과, 그 두 배 가까이를 넘나드는 암시장 환율. 수입업자는 달러를 구하지 못해 진열대를 채우지 못하고, 시민은 약품과 부품, 식료품 부족에 시달린다. 안정된 통화는 오랫동안 볼리비아의 조용한 자랑이었다. 그 안정이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 자체가 — 뒤에 보겠지만 — 아르헨티나와 갈리는 또 하나의 결정적 지점이다.
마취 없는 수술
여기에 불을 댄 것이 신정부의 처방이었다.
2025년 12월, 파스는 나라를 "경제·금융·에너지·사회 비상사태"로 규정하고 20년 묵은 연료보조금을 폐지하는 법령에 서명했다. 보조금은 하루 1,000만 달러씩 재정을 갉아먹고 있었고, 적지 않은 양이 밀수업자의 차익으로 새고 있었다. 폐지의 논리는 분명했다. 문제는 집행 방식이었다. 휘발유 가격은 하룻밤에 80%대, 디젤은 160% 뛰었다.
그 결과는 곧바로 거리로 나타났다. 2026년 1월 초, 보조금 폐지에 반발한 1차 시위가 터졌고, 1월 중순 정부와 노동·농민단체는 법령을 손보기로 하며 일단 봉합했다. 그러나 봉합은 오래가지 못했다. 4월, 정부는 1720호 법(Ley 1720)을 발효시켰다. 표면적으로는 소농이 자기 땅의 등급을 자발적으로 바꿔 그것을 담보로 은행 대출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법이었다. 그러나 원주민·농민 공동체는 이를 다르게 읽었다. 담보로 잡힌 땅은 압류될 수 있고, 압류는 곧 매각이며, 매각의 끝에는 애그리비즈니스 자본의 토지 집중이 있다. '농촌 신용'으로 포장된 수탈 — 판도와 베니의 원주민들은 그렇게 받아들였고, 4월 초 1,000km 떨어진 라파스를 향해 27일에 걸친 행진에 나섰다.
그리고 5월, 마지막 불씨가 더해졌다. 보조금을 없앤 정부가 그 자리를 메우려 수입한 저질 휘발유 — 이른바 '불량 휘발유' — 가 차량 엔진을 망가뜨린 것이다. 면세 부품 수입 약속에 한때 거리에서 빠졌던 운수노조가 이 문제로 되돌아왔다. 토지법에 분노한 원주민, 보조금에 분노한 노동자, 불량 연료에 분노한 운전기사, 임금에 분노한 교사와 광원이 한 흐름으로 합류했다. 5월 13일 정부는 1720호 법을 완전히 폐기했지만, 분노는 이미 토지를 넘어 정권 자체를 겨누고 있었다.
요컨대 보조금 폐지는 언젠가 누군가는 해야 할 수술이었다. 문제는 마취도 수혈도 없이 집도했다는 점이다.

둘로 갈라진 지휘부
수술대에 오른 정부 자체도 두 동강 나 있다. 라라 부통령은 파스의 강경 진압을 공개적으로 규탄하며 경찰·군 수뇌부 해임을 요구했고, 미주인권위원회의 개입을 호소했다. 두 사람이 다섯 달째 대화가 없다는 사실까지 그는 스스로 폭로했다. 위기를 수습해야 할 지휘부가 서로를 향해 총구를 겨눈 셈이다. 분열한 정부는 신뢰할 만한 양보도, 신뢰할 만한 진압도 할 수 없다. 그래서 분열은 그 자체로 위기의 증폭기가 된다.
위기는 국경도 넘었다. 미국은 시위를 "범죄자와 마약밀매업자의 민주정부 전복 기도"로 규정하며 파스를 엄호했고, 콜롬비아의 구스타보 페트로 대통령은 이를 "민중 봉기"라 부르며 시위대 편에 섰다 — 볼리비아는 콜롬비아 대사를 추방하는 것으로 응수했다. 밀레이의 아르헨티나가 인도적 물자 공수를 내세워 라파스의 고립을 뚫으려 했다는 보도도 있다. 다만 그 수송기에 진압장비가 실렸다는 주장은 어디까지나 시위대 측의 의혹이며 사실로 확인된 바는 없다. 분명한 것은, 볼리비아의 국내 위기가 라틴아메리카 좌우 진영 대결의 블랙홀로 빨려들고 있다는 점이다.
같은 처방, 다른 결과 — 아르헨티나라는 거울
이제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자. 밀레이의 아르헨티나도 가혹한 긴축을 했는데, 왜 볼리비아만 이렇게 타오르는가.
먼저 한 가지 오해를 걷어내야 한다. 아르헨티나에 저항이 '없었던' 게 아니다. 밀레이 임기 내내 노동총연맹(CGT)의 총파업, 수십만 명이 모인 대학 예산 삭감 반대 시위, 연금생활자들의 거리 행진이 끊이지 않았다. 차이는 저항의 유무가 아니라 저항의 '성격'에 있다. 아르헨티나의 저항은 컸지만 정권을 위협하지 못했고, 볼리비아의 저항은 정권을 벼랑으로 몰았다. 왜 그런가. 적어도 다섯 가지가 갈렸다.
첫째, 위임이다. 밀레이는 '전기톱'을 들고 나와 고통이 올 것이라고 취임사에서 못박고 당선됐다. 그리고 2025년 10월 중간선거에서 유권자는 그 고통을 겪고도 다시 그의 당을 밀어줬다. 고통에 민주적 정당성의 도장이 찍힌 것이다. 파스는 정반대였다. '온건한 변화'의 얼굴로 당선된 뒤 충격요법으로 돌아섰다. 시위대의 눈에 그것은 개혁이 아니라 '바꿔치기'였다. 위임 없는 긴축은 첫 단추부터 정당성을 의심받는다.
둘째, 보이는 보상이다. 아르헨티나의 고통에는 — 적어도 서사상으로는 — 끝이 보인다. 취임 무렵 200%를 넘나들던 인플레이션이 2025년 35% 안팎으로, 다시 20%대 전망으로 내려왔다. "약이 듣고 있다"는 이야기가 가능하다. 사람은 끝이 보이는 고통은 견딘다. 볼리비아는 거꾸로다. 보조금을 없앴는데 물가는 20%를 향해 오르고, 들여온 휘발유는 불량이고, 품귀는 계속된다. 고통은 왔는데 보상은 보이지 않는다. 견딜 이유가 없는 고통은 분노가 된다.
셋째, 충격의 낙차다. 아르헨티나 사람들은 만성 고인플레이션과 통화 불안에 — 2001년의 트라우마까지 포함해 — 이골이 나 있다. 긴축은 익숙한 사이클의 한 국면으로 받아들여진다. 볼리비아는 다르다. 15년 넘는 물가 안정과 못박힌 환율이 그들에게는 '정상'이었다. 보조금 폐지와 달러 품귀는 그 오랜 정상의 갑작스러운 종료다. 같은 크기의 충격도, 평지에서 떨어질 때 더 크게 다친다.
넷째 — 그리고 가장 결정적인 것 — 분노의 출구다. 아르헨티나에는 분노를 담아낼 제도적 통로가 있다. 페론주의 야당이 건재하고, 중간선거가 있고, 2027년 대선이 기다린다. 거리의 분노는 표로 환전될 수 있다. 볼리비아에는 그 통로가 없다. MAS는 무너졌고, 원주민과 농민, 노동자는 '고아가 된 유권자'다. 투표함이 닫힌 사람들에게 남은 유일한 발언대는 거리다. 제도적 목소리가 막히면, 목소리는 봉쇄와 파업이라는 형태로 터져 나온다. 아르헨티나의 시위가 '표로 가는 길 위의 시위'라면, 볼리비아의 시위는 '표로 가는 길이 없어서 하는 시위'다.
다섯째, 저항의 무기다. 아르헨티나의 저항 양식은 대체로 '표현적'이다. 하루짜리 총파업, 도심 행진 — 불만을 드러내되 나라를 멈추지는 않는다. 볼리비아의 저항 양식은 '강압적'이다. 내륙국이고 산악국이며 간선도로가 몇 안 되는 이 나라에서, 도로 봉쇄는 며칠 만에 수도의 숨통을 조일 수 있다. 볼리비아의 촘촘하고 자율적인 조직들 — 노동자중앙본부(COB), 코카 재배농 연맹, 투팍 카타리 농민연맹, 광산협동조합, 붉은 판초 — 은 2003년과 2005년에 이미 이 무기로 대통령을 끌어내린 경험이 있다. 같은 분노라도, 표현적 저항은 정권을 흔들고 강압적 저항은 정권을 무너뜨린다.
여기에 볼리비아만의 한 겹이 더 있다. 1720호 법은 긴축에 대한 분노 위에 '500년에 걸친 토지 수탈'이라는 기억을 포갰다. 볼리비아의 저항은 '긴축 대 민중'이 아니라 '원주민 민족 대 다시 돌아온 식민적 자본'의 언어로 말해진다. 아르헨티나의 갈등이 대체로 사회경제적 평면에 머무는 데 비해, 볼리비아의 갈등은 '한 민족의 생존'이라는 실존의 층위로 올라선다. 분노의 깊이 자체가 다르다.
정리하면 이렇다. 긴축이 볼리비아를 폭발시킨 게 아니다. 긴축이 도착했을 때, 그 충격을 흡수해야 할 장치들 — 위임, 보상의 전망, 표로 가는 출구, 통일된 정부 — 이 하나도 남김없이 고장 나 있었기 때문에 폭발한 것이다. 아르헨티나는 그 장치들을, 불완전하게나마, 갖고 있었다.
내전인가, 붕괴인가
이쯤에서 가장 무거운 질문을 피하지 말자. 이 사태가 내전으로 번질 수 있는가.
먼저 용어를 정직하게 쓰자. 조직된 무장 세력들이 영토를 나눠 갖고 장기간 교전하는 본래 의미의 '내전'은,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가능성이 가장 낮은 시나리오다. 시위대는 군대가 아니다. 그들의 무기는 다이너마이트와 돌, 그리고 도로 봉쇄다 — 정권을 마비시키기에는 충분하지만, 군을 상대로 영토를 점령하고 지켜내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국가의 물리력 독점은, 아직은, 깨지지 않았다.
볼리비아에서 훨씬 더 현실적인 위험은 '내전'이 아니라 '국가의 붕괴'다. 볼리비아 현대사가 그 각본을 이미 보여줬다. 2003년 '가스 전쟁'은 산체스 데 로사다 대통령을 미국으로 도피시켰고, 2005년의 동원은 메사 대통령을 끌어내렸다. 둘 다 내전 없이, 대중 동원과 봉쇄만으로 대통령을 끝장냈다. 그러니 가장 일어남직한 '최악'은 양측의 전쟁이 아니라, 파스 정권의 붕괴 — 하야든 탄핵이든 도피든 — 와 그 뒤에 올 통치 불능 상태다.
그러나 '내전'이라는 단어를 완전히 치워서도 안 된다. 볼리비아를 봉기에서 내전으로 밀어 올릴 두 개의 변수가, 다른 나라보다 훨씬 또렷하게 존재하기 때문이다.
첫째는 군의 분열이다. 이것이 모든 것의 경첩이다. 2024년 6월 수니가 장군의 쿠데타 시도는, 볼리비아 군이 결코 한 몸으로 충성하는 조직이 아님을 보여줬다. 지금 군은 경찰과 함께 배치돼 있지만, 정부는 군을 '비살상' 인도주의 회랑 작전이라는 신중한 틀 안에 묶어 두려 애쓰고 있다 — 군을 학살의 집행자로 만드는 순간 군 자체가 갈라질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진압 과정에서 대규모 사망자가 나오거나, 파스가 군이 따르지 않을 명령을 내리는 순간, 일부 부대는 이탈할 수 있다. 갈라진 군 — 그것이 내전의 전제조건이다.
둘째는 지역 균열이다. 볼리비아에는 오래된 동서 분단선이 있다. 산타크루스·베니·판도·타리하로 이어지는 동부 저지대 '메디아 루나(media luna)' — 애그리비즈니스, 상대적 부유층, 자치주의, 우파 — 와 라파스·엘알토·오루로·포토시의 서부 안데스 고원 — 원주민, 민중 부문, 옛 MAS의 심장부 — 가 그것이다. 2008년 이 균열은 판도의 유혈 사태와 자치 주민투표 속에서 나라를 거의 찢어 놓을 뻔했다. 그런데 이번 위기의 불씨인 1720호 토지법은 바로 그 동서 균열에 정확히 포개지는 농업 변경의 문제다. 만약 갈등이 '동부 엘리트와 애그리비즈니스가 떠받치는 정부 대 서부 원주민·민중의 봉기'라는 축으로 재정렬된다면, 그때는 '내전'이 더 이상 과장이 아니게 된다.
그리고 무장의 맹아는 이미 양쪽에 있다. 서부 고원에는 공개 열병식에서 소총을 든 모습을 보여 온 아이마라 민병대 '붉은 판초(Ponchos Rojos)'가 있고, 다이너마이트로 무장한 광원 부대는 그 자체로 준(準)군사 조직에 가깝다. 동부 산타크루스에는 폭력의 전력을 가진 우파 청년 조직이 있고, 대농장은 사설 경비를 거느린다. 볼리비아는 — 불행히도 — 양쪽 모두에서 준군사화의 원료를 이미 갖고 있다.
무장 세력의 라파스 '진입'은 사실 미래형이 아니라 이미 진행형이다. 에보 모랄레스는 5월 19일 190km를 걸어 라파스로 들어오는 행진을 직접 이끌었고, 광원과 농민 부대는 도시 중심부로 거듭 밀고 들어왔다. 5월 23일에는 백기를 든 정부의 인도주의 호송대 — 공공사업부 장관이 직접 인솔한 — 가 봉쇄 지점에서 매복 공격을 받아 장관이 피신했다. 호송대마저 무력으로 저지되는 단계에 들어선 것이다.
여기서 결정적인 장소는 엘알토다. 해발 4,000m, 라파스 바로 위에 얹힌 이 도시는 압도적으로 아이마라 원주민의 도시이고, 공항과 간선도로를 틀어쥐고 있다. 엘알토를 쥔 자가 라파스의 생명줄을 쥔다. 2003년 가스 전쟁이 정확히 그 각본이었다 — 엘알토가 라파스를 옥죄고, 이윽고 아래로 쏟아져 내렸다. 그러니 위험한 시나리오는 '외부의 민병대가 수도를 침공한다'가 아니다. 이미 그 고원에 사는 사람들이, 정부 청사가 있는 무리요 광장을 향해 좁혀 내려오는 것이다.
문제의 임계점은 두 가지다. 하나는 무장의 수준이 다이너마이트·화염병에서 총기로 올라서는 순간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가 그들을 향해 치명적 화력을 쓰는 순간이다. 후자가 먼저 오면 — 즉 학살이 벌어지면 — 볼리비아 현대사의 공식대로 군이 정권에 대한 지지를 거두거나 정권이 무너진다. 전자가 먼저 오면, 봉기는 무장 충돌로 질적으로 바뀐다. 두 임계점 중 어느 하나라도 넘으면, 이 글이 줄곧 말해 온 '충격 흡수장치의 부재'는 가장 잔혹한 형태로 모습을 드러낸다. 분노를 내려놓을 정치적 출구가 없는 사회에서는, 갈등이 오직 소진과 진압과 파열, 셋 중 하나로만 끝나기 때문이다.

안데스를 넘어
볼리비아의 위기는 국경 안에 머물지 않는다.
가장 먼저, 이념의 대리전이 더 뜨거워진다. 이미 미국은 파스를 엄호하고, 콜롬비아는 시위대 편에 섰으며, 아르헨티나는 호송기를 띄웠고, 볼리비아는 콜롬비아 대사를 추방했다. 만약 파스 정권이 무너진다면, 그것은 대륙 전체에서 두 개의 상반된 신화로 읽힐 것이다. 한쪽에서는 '미국에 줄 선 우파 정부가 민중의 힘에 무너졌다'는 좌파의 승전보로, 다른 쪽에서는 '민주적으로 선출된 정부가 에보가 부추긴 폭도에게 전복됐다'는 우파의 경고담으로. 콜롬비아·칠레·브라질의 선거가 줄지어 기다리는 시점에, 볼리비아는 좌우 진영이 서로의 정당성을 시험하는 상징적 전장이 된다.
둘째, 볼리비아는 '밀레이 모델'에 대한 살아 있는 국민투표가 된다. 충격요법식 긴축이 한 나라를 끝내 어디로 데려가는가 — 볼리비아의 결말은 그 질문에 대한 가장 생생한 사례가 된다. 아르헨티나의 긴축이 '효과를 내는' 듯 보이는 동안 볼리비아의 긴축이 혼돈으로 끝난다면, 우파는 "볼리비아가 잘못 집행했을 뿐"이라 말하고 좌파는 "완충장치 없는 긴축의 본모습이 이것"이라 말할 것이다. 라틴아메리카가 지금 수출 상품처럼 검토하고 있는 그 처방의 평판이, 라파스에서 일부 판가름 난다.
셋째, 물리적 파급이다. 볼리비아는 다섯 나라 — 브라질, 아르헨티나, 칠레, 페루, 파라과이 — 와 국경을 맞댄 내륙국이자 통과국이다. 봉쇄는 이미 페루(데사구아데로)와 칠레 국경으로 가는 길을 끊었다. 위기가 길어지면 역내 교역 회랑이 교란되고, 폭력이 깊어지면 인접국으로 향하는 피난 행렬이 생긴다 — 이민 문제가 정치적으로 민감한 칠레와 페루 쪽으로. 게다가 볼리비아는 코카·코카인의 주요 생산·경유지다. 국가의 통제력이 약해질수록 단속에는 구멍이 뚫리고, 그 틈은 브라질과 남미 남부의 초국적 범죄 네트워크가 메운다.
넷째, 자원 지도의 재편이다. 한때 볼리비아 가스는 브라질과 아르헨티나를 데웠지만 그 시대는 이미 끝났으므로, 가스 공급 충격은 이제 크지 않다 — 이것 자체가 한 시대의 변화다. 그러나 리튬은 다르다. 볼리비아는 칠레·아르헨티나와 함께 '리튬 삼각지대'에 앉아 있다. 장기 불안정은 리튬 자본을 — 가뜩이나 볼리비아의 국가 통제 모델에 지쳐 있던 자본을 — 칠레와 아르헨티나 쪽으로 결정적으로 밀어낸다. 에너지 전환의 횡재가 안데스 안에서 조용히 재분배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시범 효과다. 만약 볼리비아의 노조와 원주민 운동이 봉쇄만으로 정부를 끌어내리는 데 성공한다면, 그것은 페루의 만성적 불안정, 에콰도르의 원주민 봉기, 칠레·콜롬비아의 가두 동원에 하나의 각본이자 사기 진작이 된다. 반대로 유혈 진압이 '성공'한다면, 그것은 역내의 강경 대응에 면허를 내준다. 2003년의 볼리비아가 이미 한 번 그런 신호를 대륙에 보냈다. 2026년의 볼리비아는 그 신호를 더 크게 보낼 것이다.
출구는 경제가 아니라 정치에 있다
그렇다면 출구는 어디인가. 흔한 진단은 양자택일을 내민다. 한쪽에는 국제통화기금(IMF)식 정통 처방 — 환율 현실화, 추가 긴축, 다자금융 — 이 있고, 다른 쪽에는 긴축 백지화와 '제2의 베네수엘라'가 있다.
그러나 이 양자택일은 절반만 맞다. 정통 처방이 거시 펀더멘털을 안정시킨다는 것은 사실이다. 동시에, 그것을 마취 없이 다시 집도하면 지금의 위기를 한 번 더 반복하리라는 것도 사실이다. 진짜 변수는 '정통이냐 포퓰리즘이냐'가 아니라, 조정의 속도와 순서, 그리고 무엇보다 고통의 분배다. 보조금을 하룻밤에 전면 폐지할 것인가, 취약계층 표적 보전과 함께 단계적으로 거둘 것인가. 평가절하의 충격을 누가 떠안을 것인가. 대외부채 재조정을 어떻게 설계할 것인가. 베네수엘라의 길을 피하는 데 필요한 것은 더 빠른 긴축이 아니라, 견딜 수 있는 긴축이다.
그리고 그 '견딜 수 있음'은 끝내 경제 문제가 아니라 정치 문제다. 볼리비아 위기의 핵심은 경제학의 메뉴가 없어서가 아니다 — 메뉴는 대체로 알려져 있다. 핵심은 그 메뉴를 끝까지 운반할 정치가 없다는 데 있다. 위임 없이 출발한 정부, 둘로 갈라진 지휘부, 거리로만 말할 수 있는 '고아가 된' 다수.
볼리비아가 이 악순환을 끊으려면, 정부가 제안한 '사회경제위원회' 같은 대화 기구가 장식이 아니라 실질이 되어야 한다. 원주민과 농민, 노동자를 진압해야 할 '파괴분자'가 아니라 개혁의 협상 상대로 다시 불러들이는 것, 닫힌 투표함 대신 다른 통로를 열어 주는 것 — 그것이 긴축을 가능하게 만드는 유일한 정치적 조건이다. 아르헨티나가 가졌고 볼리비아가 잃어버린 것은 결국 그것이다. 약이 같아도 환자를 살리는 것은 약을 견디게 하는 몸이다. 지금 볼리비아에 필요한 것은 더 센 약이 아니라, 그 몸을 다시 만드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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