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3월 20일, 브라질의 루이스 이나시우 룰라 다 시우바(Luiz Inácio Lula da Silva) 대통령은 미나스제라이스(Minas Gerais) 주 가브리엘 파수스(Gabriel Passos) 정유공장에서 열린 투자 발표 행사에서, 멕시코의 클라우디아 셰인바움(Claudia Sheinbaum) 대통령과의 전화 통화 내용을 공개했다. 페트로브라스의 마그다 샴브리아르(Magda Chambriard) 사장의 요청에 따라 이루어진 이 통화에서, 룰라 대통령은 멕시코만 수심 2,500미터 지점의 석유 자원을 양국 국영석유기업이 공동 탐사하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 제안은 양국 에너지 산업의 구조적 비대칭성을 상호 보완적 자산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로, 이 연합은 단순한 기업 간 업무 협약의 차원을 넘어선다.
본 컬럼의 핵심 주장은 다음과 같다. 이 연합은 멕시코만 초심해 유전이라는 탐사·생산 부문 프로젝트를 기점으로 삼되, 궁극적으로는 정유 공정의 기술 이전, 해상 물류 인프라의 공동 활용, 그리고 라틴아메리카 공동의 전략적 비축유 구축이라는 전방위적 밸류체인 통합으로 확산하는 다층적 협력 모델이다. 나아가, 2026년 1월 이후 정치적 격변 속에 놓인 베네수엘라의 석유 산업 재건이라는 변수가 이 연합의 잠재적 확장 경로를 열어놓고 있다는 점에서, 본 제안은 라틴아메리카 에너지 지정학의 장기적 재편을 예고하는 모멘텀으로 읽힌다.
셰인바움 정부가 89차 은행연합회(Convención Bancaria) 총회에서 2026~2030년 공공투자 가운데 에너지 부문 비중을 54.15%로 책정했다는 사실, 그리고 천연가스 대외 의존도를 75%에서 50%로 축소하겠다고 선언한 점은 멕시코 측의 에너지 자립 의지가 얼마나 절박한지를 방증한다. 동시에, 룰라 대통령이 같은 행사에서 2021년 무바달라(Mubadala) 국부펀드에 매각되었던 마타리페(Mataripe) 정유공장의 재국유화를 공언한 것은, 브라질 역시 정제·유통 부문의 국가적 통제력 회복을 우선 과제로 설정하고 있음을 드러낸다.
이하에서는 이 연합의 시너지 구조를 업스트림, 다운스트림, 물류 및 재무, 지정학적 차원으로 나누어 분석하되, 라틴아메리카 에너지 시장 전체의 자립화 흐름 속에서 베네수엘라 요인이 어떤 방식으로 연동될 수 있는지를 함께 논의한다.
2. 탐사·생산 부문 간 시너지: 심해 탐사 역량의 비대칭적 결합
2.1. 페멕스의 생산량 위기와 심해 전환의 불가피성
멕시코 석유 산업은 20세기 후반 내내 천해 및 육상 유전에 의존해왔다. 칸타렐(Cantarell) 유전을 필두로 2004년 전후 하루 340만~380만 배럴에 달했던 생산량은, 주력 유전의 노후화와 고갈로 인해 2026년 현재 160만~170만 배럴 수준으로 절반 이하로 축소되었다. 페멕스는 트리온(Trión), 사마(Sama), 말룹(Maloob) 등 해양 프로젝트에 전년 대비 34% 증액된 투자를 집중하여 하루 180만 배럴 목표를 설정했으나, 수심 2,000미터 이상의 초심해 환경은 기존 200~500미터 수심에서 축적된 역량만으로는 대응하기 어려운 기술적, 재무적 진입 장벽을 형성하고 있다.
서방 글로벌 메이저 석유기업들이 멕시코의 불안정한 투자 환경과 자원 민족주의적 규제를 경계하면서 투자를 유보하는 상황에서, 카를로스 슬림(Carlos Slim)의 그루포 카르소(Grupo Carso)를 제외하면 대규모 민간 파트너가 부재한 형편이다. 페멕스가 홀로 초심해 탐사의 천문학적 자본 지출과 높은 탐사 실패율을 감내해야 하는 구조적 교착 상태가 이번 연합 제안의 직접적 배경이 된다.
<그림1> 멕시코만 내 국가별 오프쇼어 인프라 및 주요 심해 유전 현황멕시코만 내 국가별 오프쇼어 인프라 및 주요 심해 유전 현황
2.2. 페트로브라스의 암염하층 기술 체계와 멕시코만 적용 가능성
브라질 페트로브라스는 2006년 암염하층(Pre-salt) 유전 발견 이후 심해 탐사 분야에서 세계적 기술 우위를 확보했다. 2024년 기준 하루 270만 배럴 이상의 석유 환산 물량(boe)을 생산하며, 전체 생산량의 70%에서 92%가 수심 3,000미터를 상회하는 해역에서 산출된다. 자체 연구센터 CENPES를 통해 완전파형역산(FWI), 역시간 구조보정(RTM) 등 첨단 탄성파 해석 기술을 내재화했으며, 초고압 웰헤드, 유연성 플로우라인, 원격조종 무인잠수정(ROV)을 활용한 해저 생산 시스템 프로토콜을 상용화한 바 있다.
특히 메루(Mero) 해상 유전에서 CO2 재주입 특허 기술(Hisep)을 상용화하고, 리브라 록스(Libra Rocks) 프로젝트에 약 2,870만 달러를 투입하여 탄산염암 저류층 데이터 모델링 역량을 축적한 점은, 멕시코만 초심해 환경에서 직면할 고염도 및 높은 CO2 함유량 문제에 대한 기성 해법을 보유하고 있음을 시사한다. 이러한 기술적 자산은 페멕스가 기획 중인 라카치(Lakach) 심해 가스 개발을 포함한 후속 프로젝트에도 즉시 전용될 수 있다.
연합의 파급력이 가장 선명하게 드러날 지점은 트리온(Trión) 프로젝트이다. 타마울리파스 연안 약 180km 해상의 페르디도 습곡대(Perdido Fold Belt) 수심 2,500미터에 있는 멕시코 최초의 초심해 개발 사업으로, 총 110억 달러 이상이 투입된다. 현재 우드사이드 에너지(Woodside Energy, 60%)가 운영권자로 페멕스(40%)와 합작하여 2026년 3월 시추에 착수한 상태다. 부유식 생산 설비 틀랄록(Tláloc), 저장 하역설비 찰치(Chalchi)를 통해 하루 최대 10만 배럴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다.
페트로브라스가 이 구도에 합류할 경우, 트리온 자체보다는 페르디도 습곡대 인근의 잠재적 광구나 사마 프로젝트 등 후속 심해 사업에서 핵심 운영 파트너로 기능할 가능성이 크다. 부유식 원유생산저장하역설비(FPSO) 운용 경험에서 세계 최다를 기록하는 페트로브라스는, 부지오스(Búzios) 유전에 2030년까지 7기의 신규 FPSO(각 일일 22만 5천 배럴)를 투입할 계획인 만큼, 이 노하우가 멕시코만에 이전되면 후속 프로젝트의 상업 가동 시기를 앞당기고 단위 개발 비용을 10~20% 절감하는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3. 정제·유통 부문시너지: 정유 공정의 기술적 병목 해소
양국 정상의 공식 발언에서 심해 탐사가 전면에 드러났으나, 이 연합이 창출하는 경제적 잉여의 상당 부분은 정유 부문의 기술 이전과 공정 최적화에서 발생할 수 있다. 멕시코 에너지 정책의 최대 아킬레스건은 원유를 추출하는 능력이 아니라, 추출한 원유를 자국 내에서 고부가가치 제품으로 전환하는 정제 역량의 만성적 결핍이기 때문이다.
3.1. 페멕스 정유 인프라의 구조적 비효율성
멕시코는 툴라, 살리나 크루스, 살라망카, 미나티틀란, 카데레이타, 과달라하라, 도스 보카스(올메카) 등 7개 정유공장을 보유하고 있으며, 설계상 총 정제 능력은 하루 약 170만 배럴에 이른다. 그러나 실질 가동률은 50~55% 수준에 머물고 있다. 셰인바움 정부의 역점 사업인 도스 보카스(Dos Bocas) 정유공장은 하루 34만 배럴 처리 능력으로 설계되었으나, 2025년 하반기 실제 처리량은 20만 6,808배럴(가동률 60.8%)에 불과했고, 12월 일시적 상승(26만 3,402배럴, 77%)에도 연간 목표 대비 22% 미달이라는 실적 부진을 면치 못했다.
이러한 비효율의 근저에는 멕시코 주력 원유인 마야(Maya) 원유의 물성이 자리 잡고 있다. 황 함유량 3.3%의 전형적인 중질유로서, 고부가가치 운송용 연료로의 전환에는 코킹 유닛을 포함한 고도의 복합 정제 설비가 필수적이다. 과거 40년간 원유 추출과 수출에 매몰되어 정제·유통 부문 밸류체인 개발을 방치한 정책적 관성이, 고비용·저효율이라는 구조적 문제로 고착된 것이다.
3.2. 페트로브라스의 정유 역량과 기술 이전 경로
페트로브라스는 브라질 전역에 10개 정유공장을 운영하며 하루 180만 배럴의 정제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2025~2029 사업계획에 따라 보아벤투라(Boaventura) 에너지 복합단지 및 카시아스 공작 정유공장 통합 프로젝트에 약 330억 헤알을 투입 중이다. 이를 통해 초저유황 S-10 디젤 일일 7만 6천 배럴 추가, 그룹 II 윤활기유 1만 2천 배럴 증산, 재생 가능 연료(HVO 및 지속가능항공유 SAF) 전담 플랜트 구축 등 정유 포트폴리오의 질적 고도화를 추진하고 있다.
이 역량은 두 가지 경로를 통해 페멕스에 이전될 수 있다. 첫째, 중질유 코킹 유닛 운영 및 유지보수 프로토콜의 직접 이식이다. 페트로브라스가 캄푸스(Campos) 분지 중질유를 수십 년간 처리하며 축적한 공정 최적화 노하우를 도스 보카스 및 툴라 정유공장에 적용할 경우, 설비 통합 과정의 병목 상당 부분을 해소할 수 있다. 둘째, 저탄소 고부가가치 제품 전환 기술의 라이센싱이다. 보아벤투라에서 실증 중인 SAF 공정 설계를 멕시코에 이전하면, 글로벌 환경 규제 강화에 대응하는 에너지 전환기의 연착륙이 가능해진다.
4. 물류 통합과 재무적 리스크 분산
원유 생산과 정제를 잇는 물류 부문에서, 양사의 연합은 단일 국가의 범주를 넘어서는 규모의 경제를 실현할 수 있다. 페트로브라스 물류 자회사 트란스페트로(Transpetro)는 140척 이상의 지원 선박을 운용하며 연간 200만 해리를 항해하는 남미 최대의 해상 물류 체계를 갖추고 있다. 최근에는 콩스베르그 마리타임(Kongsberg Maritime)과의 협력을 통해 메탄올·에탄올 호환 프로덕트 탱커 4척을 자국 조선소에 발주했으며, 5.2억 달러 규모의 LPG 운반선 5척 및 바지선 36척을 추가 확보하는 '오픈 시(Open Sea)' 프로그램을 가속화하고 있다.
페멕스 역시 2025~2035 전략 계획에 따라 유조선 16척의 선대 복원, 체적 통제 준수율의 15%에서 96%로의 제고, 전산화 및 측정 시스템에 231.4억 페소(약 14억 달러) 투입 등 해상 터미널 물류 현대화를 추진 중이다. 양사가 해상 물류 자산을 공유할 경우, 브라질-멕시코만 간 수송 노선의 최적화, 비상 시 국경 초월적 제품 공유 협정, 공동 부품 발주를 통한 납기 단축 등의 시너지가 발생한다.
재무적 측면에서도 위험 분산 효과는 결정적이다. 초심해 탐사정 한 공의 시추 비용은 1.5억~3.5억 달러에 달하며, 해당 수역의 건공 비율은 50~70%에 이른다. 누적 부채 1,000억 달러 이상인 페멕스가 이를 단독으로 감당하기는 사실상 불가능하다. 조인트 벤처를 통한 자본 공동 부담은 개별 파트너의 탐사 단계 자본 노출을 절반으로 낮춘다. 페트로브라스의 경우, 2026~2030 사업계획에서 탐사·생산 부문부문에 692억 달러(탐사 71억 달러 포함)를 배정하면서 해외 우량 자산 발굴을 통한 포트폴리오 다변화를 추구하고 있어, 멕시코만이라는 검증된 지질 환경이 낮은 비용으로 추가되는 셈이다.
5. 지정학적 파급: 전략적 비축유, 에너지 주권, 그리고 베네수엘라 변수
5.1. 전략적 비축유 공동 구축의 함의
룰라 대통령이 같은 행사에서 페트로브라스와 브라질 정부 차원의 전략적 비축유(SPR) 구축 필요성을 역설한 점은 각별한 주목을 요한다. 그는 이란-이스라엘 분쟁과 호르무즈 해협 위협 등 글로벌 원유 공급망 불안정을 거론하며, 미국이나 중국이 유지하는 규제형 비축 시스템을 브라질과 멕시코가 주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양국이 정제 인프라와 물류망을 결합하여 대규모 공동 비축 기지를 운영할 경우, 이는 외부 충격에 대한 역내 완충재로 기능하는 동시에 글로벌 유가 변동성에 대한 독자적 '가격 결정력'의 일부를 라틴아메리카 국영기업 연합이 확보하게 됨을 의미한다.
5.2. 에너지 민족주의의 실용적 진화와 남남협력
라틴아메리카의 석유 산업은 헌법적 소유권 강조와 강고한 에너지 민족주의의 전통 위에 놓여 있다. 멕시코 헌법 제27조와 제28조가 석유 자원에 대한 국민적 소유를 명시하고 있듯, 민간 및 외국 자본의 유치에는 이념적·법적 제약이 수반된다. 그러나 폐쇄적 민족주의 노선이 기술 접근과 자본 조달을 차단하면서 오히려 국영기업의 재무 악화를 심화시키는 역설이 반복되어왔다.
이 맥락에서 페트로브라스-페멕스 연합은 영미권 다국적 메이저 기업의 종속 없이 기술과 자본의 결핍을 극복하는 남남협력(South-South Cooperation)의 실질적 모델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셰인바움 정부로서는 민간 외국 자본 유치에 따르는 국내 정치적 반발과 노동조합의 저항을 우회하면서도, 브라질 연안에서 입증된 역량을 갖춘 '형제 국가'의 국영기업을 파트너로 맞이함으로써 에너지 주권의 훼손 없이 실리를 확보하는 명분을 얻는다. 2025년 11월 산타마르타(Santa Marta)에서 열린 제4차 EU-CELAC 정상회의가 에너지 상호연결 강화를 공동선언에 포함한 것, 2026년 3월 보고타(Bogotá) 제10차 CELAC 정상회의에서 역내 에너지 자율성이 주요 의제로 부상한 것은 이러한 흐름의 제도적 배경이다.
5.3. 베네수엘라 변수: 석유 산업의 구조적 위기와 미국의 진입 한계
이 연합의 사정권에서 빠뜨릴 수 없는 변수가 베네수엘라이다. 2026년 1월 3일 미군에 의한 마두로 체포 이후, 델시 로드리게스(Delcy Rodríguez) 부통령 체제의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은 극심한 불확실성 속에 놓여 있다. 세계 최대 확인 매장량(약 3,030억 배럴)을 보유하면서도, 차베스-마두로 시기의 자산 국유화, 만성적 과소 투자, 미국 제재의 중첩 효과로 인해 1990년대 후반 하루 350만 배럴이던 생산량이 2025년 말 80만~110만 배럴 수준으로 급감했다.
미국은 베네수엘라에 대해 이른바 ‘최대 압박(Maximum Pressure)’ 전략을 구사해 왔다. 2019년부터 시작된 강력한 2차 제재는 베네수엘라의 원유 수출을 철저히 통제했으나, 이는 역설적으로 베네수엘라가 중국의 ‘그림자 선단(Shadow fleet)’과 이란 등의 우회 경로를 통해 원유를 밀수출하도록 고착화하는 결과를 낳았다. 이후 바이든 행정부와 트럼프 행정부를 거치며 지정학적 필요에 따라 제재의 완화와 강화가 반복되었고, 일반 라이선스 41호(GL41) 및 44호(GL44) 등을 통해 셰브론(Chevron) 등 일부 서방 기업의 제한적인 조업 및 수출이 허용되기도 하였다.
미국 정부의 야심과 달리, 엑손모빌(ExxonMobil)이나 코노코필립스(ConocoPhillips)를 비롯한 주요 미국 다국적 석유기업들은 베네수엘라 전면 복귀에 극도로 회의적이다. 엑손모빌의 최고경영자는 베네수엘라의 법적 불안정성과 안보 위협을 근거로 현 상황을 “투자 불가(Uninvestable)” 상태로 규정하였다. 마두로가 억류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차베스 정권부터 이어져 온 관료 집단과 군부 등 이른바 ‘차비스타(Chavista)’ 기득권층은 여전히 사회 곳곳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미국의 개입을 제국주의적 침략으로 규정하며 매주 대규모 반미 시위가 전국적으로 열리고 있다.
물리적 인프라의 붕괴는 더 큰 장애물이다. 베네수엘라의 주요 유전지대인 마라카이보 호수(Lake Maracaibo) 일대와 오리노코 벨트(Orinoco Belt)의 정제 및 수송 인프라는 사실상 고철에 가까운 상태로 방치되어 있다. 송유관 누출과 정유소 화재가 일상적으로 발생하고 있으며, 정상 복구에는 약 1,000억 달러(약 130조 원) 이상의 막대한 자본이 필요할 것으로 추산된다. 라이스타드 에너지(Rystad Energy)는 현 생산량 유지에만 향후 15년간 530억 달러, 200만 배럴로의 복원에는 추가 1,300억 달러가 필요하다고 추산했다. 제이피모건(JPMorgan)은 정치적 안정과 제재 완화를 전제로 단기 120만 배럴, 2년 내 140만 배럴, 10년 내 250만 배럴까지의 회복 경로를 제시하되, 이는 대규모 외국인 투자 유입이라는 전제 조건에 달려 있다고 평가했다.
5.4. 잠재적 삼각 연대와 부채-자산 전환 메커니즘
미국 자본의 확장이 가로막힌 이 지정학적 공백에서, 페트로브라스-페멕스 합작회사가 베네수엘라에 진출할 경우 가장 큰 이점은 정치적 수용성이다. 베네수엘라 기득권층과 대중 사이에 반제국주의적 반미 정서가 팽배해 있어 미국 기업의 자산 인수를 ‘침탈’로 간주하는 반면, 브라질과 멕시코는 역사적으로 중남미 연대와 다극화 체제를 주창해 온 우방국이다.
특히 주목할 점은 브라질 정부가 과거 베네수엘라에 차관으로 제공했던 약 18억 달러(명목 가치 약 100억 달러 상당)의 부채를 베네수엘라의 유전, 정유소 및 가스 프로젝트 지분으로 전환(Debt-for-Asset Swap)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 중이라는 점이다. 이는 막대한 초기 현금 투입 없이도 베네수엘라 핵심 에너지 인프라에 페트로브라스가 진입할 수 있는 합법적이고 경제적인 명분을 제공한다.
이 삼각 연대가 실현될 경우의 시너지는 전혀 작지 않다. 첫째, 세 국가의 합산 원유 매장량은 브라질 114억 boe, 멕시코 약 60억 배럴, 베네수엘라 3,030억 배럴로서, OPEC 외부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필적하는 자원 기반을 형성한다. 둘째, 페트로브라스의 심해 기술, 페멕스의 멕시코만 지질 데이터와 천해 운영 경험, PDVSA의 오리노코 벨트 비전통 자원 접근성이 상호 보완적으로 결합된다. 셋째, 전략적 비축유 공동 구축의 물리적 기반이 브라질 연안에서 멕시코만, 카리브해를 아우르는 범대서양적 규모로 확대된다.
5.5. 해상 운송 기반의 원유 스왓 모델: 정제 벨류체인을 통한 새로운 물류망의 가능성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의 재건을 위해서는 새로운 물류 및 정제 밸류체인이 필요하다. 베네수엘라는 극도로 무거운 초중질유를 처리할 자국 내 정제 설비가 마비된 상태이며, 자동차를 굴릴 가솔린과 중질유 파이프라인 수송을 위한 희석재(Diluent)가 심각하게 부족하다. 따라서 베네수엘라의 초중질유를 브라질로 보내 페트로브라스의 정유 설비에서 가공하고, 브라질산 가솔린과 경질 나프타를 베네수엘라로 공급하는 상호 교환은 완벽한 해결책처럼 보인다. 이는 멕시코가 자국의 마야(Maya) 중질유를 미국으로 수출하고, 미국이 이를 정제하여 생산한 가솔린과 디젤을 멕시코로 역수출하는 ‘미국-멕시코 석유 교환 모델’의 변형 도입이다.
그러나 이 모델을 구현하기 위해 양국을 잇는 육상 송유관을 건설하는 방안은 물리적, 환경적, 지정학적으로 완전히 비현실적이다. 과거 차베스와 룰라 시절, 베네수엘라 카리브해 연안에서 브라질의 심장부를 지나 아르헨티나까지 이어지는 8,000km 길이의 ‘남미 횡단 가스관 및 송유관’ 건설이 추진된 바 있으나, 200억~250억 달러의 천문학적 비용과 아마존 열대우림 횡단이라는 환경적 절대 장벽으로 좌초되었다. 브라질이 2025년 11월 벨럽(Belém)에서 COP30을 개최하며 글로벌 기후 리더십을 천명하고 있는 상황에서, 아마존 심장부를 관통하는 거대 송유관 신규 건설은 정치적 부담이 매우 큰 선택에 해당한다. 무엇보다 밀림 지역의 안보를 확보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불가능해 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현실적 대안은 베네수엘라 구리 댐으로부터 전력을 공급받는 브라질 호라이마 주의 주도, 보아비스타(Boa Vista) 인근에 새로운 정유 산업단지를 유치하는 것이다. 최근 석유 발견으로 급격히 성장 중인 가이아나와의 도로 연결이 강화되면서, 보아비스타는 대서양으로 나가는 물류 허브로서의 잠재력을 인정할 수밖에 없다. 또한, 브라질 내륙으로 우회하여 브라질 북동부 해안에 새로운 무역 거점을 육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오히려 국내 기업에게는 새로운 정유 산업단지와 원유와 카시테라이트 및 금과 석회석의 공급망에 직접적으로 투자 및 개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다. 차선으로 생각할 있는 것이, 해상 운송(Maritime Transport) 기반의 스왓 물류망이다. 푸에르토 호세 등의 베네수엘라 북부 카리브해 연안 터미널에서 선적된 초중질유를 대형 유조선(VLCC)이나 아프라막스(Aframax)급 선박에 실어 멕시코만이나 브라질 북동부 연안의 정유 설비로 운송한다. 룰라 대통령이 재인수를 추진 중인 바이아(Bahia) 주의 마타리페 정유소 같은 대형 해안 정제 설비가 베네수엘라산 중질유를 처리하는 전진 기지 역할을 수행할 수 있다. 처리 후 생산된 가솔린과 정제유는 다시 해상 경로를 통해 베네수엘라 내수로 직공급될 것이다. 이러한 해상 스왓 모델은 파이프라인 건설 혹은 산업단지 유치에 따르는 천문학적 자본과 환경 논란을 원천적으로 회피하면서도, 양국의 잉여 정제 역량을 활용해 베네수엘라의 에너지난을 즉각 해소하는 가장 경제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가능성의 측면에서만 언급한다면 멕시코만의 심해 유전이 상당한 규모로 개발된다면 최초의 전 지구적 교역의 시작이었던 갤리언 무역의 루트를 이용한 수입라인을 생각할 수 있다. 베라크루스-아카풀코-마닐라-중국 혹은 동북아로 이어지는 이 무역 루트는 태평양을 건너야 하지만 전통적인 무역 루트로 지정학적 리스크가 거의 없다는 점이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또한 뒤에서 더 자세히 언급하겠지만 브라질에서 원유의 혼합 작업을 한다면 페루 첸카이항을 통해 동아시아로 수출할 가능성도 있다. 호르무즈 해협만이 아니라 걸프만에서 인도양까지 해양 루트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어렵고 항구적 탄약고가 되어 간다면 지리적으로 그 반대 방향을 생각하는 것은 상식적이다. 여러 변수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앞으로 산유량이 상당히 늘 것으로 보이는 라틴아메리카의 에너지와 기타 원자재와 그 무역 루트는 국익을 위해 우리가 꾸준한 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갤리언 무역 루트, Nehalem Valley Historical Society 건물 벽화
6. 다극적 에너지 생태계의 부상: 한국·EU의 전략적 시사점
6.1. 중남미 원유의 화학적 특성과 한국 정유산업의 기술적 수용성
중남미 석유 산업의 재편은 한국의 에너지 안보에도 직접적인 파급 효과를 미친다. 한국은 전체 원유 수입량의 70% 이상을 중동에 의존하고 있으며, 이란-이스라엘 전쟁으로 촉발된 호르무즈 해협 봉쇄는 국가 경제의 명줄을 위협하는 중대한 사태다.
다만 중남미 원유의 도입에는 기술적 과제가 수반된다. 베네수엘라의 대표 유종인 메레이 16(Merey 16)은 API 16도 수준의 초중질유로, 한국 정유시설이 수십 년간 최적화해 온 중동산 아랍 헤비(Arab Heavy, API 27~28도)와는 화학적 차원이 다른 물질이다. 메레이 16에 다량 함유된 바나뤼(300~400ppm)과 니켈 등 중금속 불순물은 접촉분해공정(FCC) 내부의 촉매 표면을 파괴하는 ‘촉매 피독(Catalyst poisoning)’ 현상을 심각하게 유발하여, 특별한 금속 처리 설비 없이 원액 그대로 투입하는 것은 설비 고장을 초래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남미 원유 도입은 충분히 현실적이며 필수적인 대안이다. 페트로브라스-페멕스 합작회사가 베네수엘라에서 채굴한 초중질유를 브라질의 품질 좋은 심해 경질유(API 30도 전후)와 혼합하여 아랍 헤비와 유사한 규격의 ‘합성 원유(Synthetic Crude)’로 수출한다면, 한국 정유사들은 별도의 설비 개조 없이 즉각 도입할 수 있다. 장기적으로는 한국 정유사들이 탈황 설비 증설 및 촉매 내구성 강화에 선제적으로 투자하여, 저렴하게 공급될 중남미산 중질유를 선점하는 전략도 유효할 것이다. 한국 정부와 기업은 K-LAC(한-중남미 미래협력포럼) 등 다자간 외교 채널과 브라질과의 무역·생산 통합 협정을 적극 활용하여, 베네수엘라 및 브라질에서 추진될 대규모 해상 터미널·정유소 현대화 사업에 EPC 기업들이 기술 및 자본 파트너로 참여하는 ‘인프라-자원 교환’ 방식을 통해 안정적인 장기 원유 공급권을 확보해야 할 것이다.
6.2. 유럽연합(EU)의 관점: 러시아 및 미국 대체 공급처로서의 중남미
유럽연합의 상황은 한국보다 더욱 복잡한 지정학적 딜레마를 안고 있다. 2022년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이후, EU는 강력한 제재와 ‘REPowerEU’ 정책을 통해 러시아산 가스 의존도를 45%에서 12%로, 원유는 27%에서 2% 수준으로 거의 완전하게 단절시켰다. 그러나 러시아 자원을 몰아낸 빈자리를 미국산 원유와 LNG가 빠르게 채우면서, 현재 EU 전체 에너지 수입의 20% 이상을 미국에 의존하게 되었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가 동맹국을 상대로 관세를 위협하며 에너지 수출을 외교적 강압의 무기로 사용하는 ‘에너지 패권주의’를 강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자원 무기화’를 피하려다 미국의 ‘관세 무기화’에 포위된 셈이다.
이러한 수령에서 벗어나기 위해 EU가 시선을 돌린 곳이 바로 메르코수르이며, 그 핵심 성과가 2024년에 잠정 합의된 EU-메르코수르 자유무역협정(FTA)이다. 메르코수르는 7억 명의 소비자와 4조 달러의 GDP를 보유한 경제 블록이자, 글로벌 에너지와 식량 공급의 핵심 축이다. 특히 브라질과 페트로브라스-페멕스 합작회사는 EU에게 러시아산 우랄스(Urals) 원유와 미국산 경질유 모두를 효과적으로 대체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카드다. 합작회사가 베네수엘라의 값싼 중질유를 확보하여 브라질의 고품질 경질유와 혼합한 뒤 유럽 정유소에 공급한다면, EU는 지정학적 외풍에 흔들리지 않고 저렴한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확보할 수 있다. 더 나아가 메르코수르와의 결속은 단순한 화석연료 확보를 넘어, 풍부한 수자원과 에타올을 기반으로 한 바이오연료, 그린 수소, 그리고 리튜과 희토류 등 에너지 전환에 필수적인 핵심 광물 밸류체인에서 중국의 독점을 견제하고 유럽의 경제 안보를 수호하는 궁극적인 지정학적 방파제 역할을 수행할 것이다.
7. 라틴아메리카 에너지 시장의 자립화 흐름과 구조적 전환
페트로브라스-페멕스 연합을 고립된 양자 이벤트로 읽어서는 그 함의를 온전히 포착하기 어렵다. 이 제안은 라틴아메리카 에너지 시장 전체가 겪고 있는 구조적 전환, 곧 외부 의존 탈피와 역내 자립화라는 거시적 흐름 속에 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관세 정책과 베네수엘라 군사 개입이 역내 불안을 증폭시키는 가운데, 브라질과 멕시코—라틴아메리카 양대 경제 대국—의 에너지 협력 강화는 미국 주도 질서에 대한 대안적 연대의 성격을 내포한다. 룰라 대통령이 2026년 3월 CELAC 정상회의 전후 맥락에서 "그들은 우리를 식민화하려 한다"고 발언한 것은, 에너지 자원에 대한 외부 개입에 대한 역내 경계심이 정치적 수사를 넘어 구체적 정책 행동으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라틴아메리카 에너지기구(OLACDE/OLADE)가 2026~2027년 역내 에너지 통합 가이드라인과 역량 강화 프로그램을 본격 가동한 점, EU-CELAC 공동선언에서 저탄소 에너지원을 통한 역내 전력망 상호연결이 명시된 점은, 페트로브라스-페멕스 유형의 국영기업 간 실질 협력이 제도적, 정치적 뒷받침을 받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에너지 전환기에도 석유가 라틴아메리카 재정 수입의 핵심 원천으로 기능하는 현실을 고려하면, 이 연합은 화석연료 시대의 잔여 가치를 역내 국가들이 공동으로 극대화하면서 동시에 재생에너지 전환의 재원을 확보하는 이중 전략의 하나로 해석될 수 있다.
8. 결론
페트로브라스와 페멕스의 전략적 연합 제안은 멕시코만 심해 유전이라는 구체적 사업 목표로 출발하지만, 그 사정권은 양국 국영석유기업의 밸류체인 전반과 라틴아메리카 에너지 지정학의 구조적 재편으로 확산한다. 업스트림에서는 페트로브라스의 암염하층 기술이 페멕스의 고질적 생산량 절벽을 돌파하는 열쇠로 기능하고, 다운스트림에서는 중질유 정제 프로토콜과 저탄소 제품 전환 기술의 이전이 멕시코 정유 인프라의 만성적 비효율을 치유하는 경로를 제공한다. 물류 인프라의 표준화와 전략적 비축유의 공동 구축은 이 협력을 산업적 수준에서 지정학적 수준으로 격상시키는 고리가 된다.
나아가, 베네수엘라 석유 산업의 재건이라는 중장기 변수를 고려할 때, 이 양자 연합은 PDVSA를 포함하는 삼각 구도로의 확장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 미국 자본이 반미 정서와 인프라 붕괴로 인해 전면 진입하기 어려운 베네수엘라에서, 부채-자산 전환 메커니즘과 해상 운송 기반의 원유-정제유 스왓 모델을 통해 중남미 국영기업 연합이 빈자리를 차지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경로가 열리고 있다. 세 국가의 자원 기반, 기술 역량, 지리적 위치가 상호 보완적으로 결합할 경우, 라틴아메리카는 OPEC 외부에서 글로벌 에너지 시장에 독자적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원 연합체를 형성할 수 있다.
이 연합의 파급력은 역내에 그치지 않는다. 호르무즈 해협 봉쇄로 중동 의존도 70%에 달하는 한국은, 합성 원유의 도입과 인프라-자원 교환 방식을 통해 에너지 공급망을 다변화할 생존적 기회를 얻고, 러시아와 미국 모두로부터 자유로운 에너지 공급망을 구축하려는 유럽연합에게는 메르코수르와의 FTA를 지렛대로 삼은 ‘다극적 에너지 전략’의 강력한 수단을 제공한다.
현재 멕시코 에너지부와 페멕스는 이 제안에 대해 공식 입장을 유보하고 있으나, 셰인바움 대통령의 2026년 6~7월 브라질 국빈 방문이 예정되어 있어 구체적 협의의 윤곽이 드러날 시점은 가까이 다가와 있다. 이 연합이 실현될 경우, 그것은 21세기 라틴아메리카 자원 민족주의가 도달한 가장 실용적인 형태의 진화이자, 역내 에너지 주권 확립을 위한 남남협력의 새로운 기준점으로 기록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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