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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울한 절망의 자화상 베티블루 37.2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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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좀 본다는 사람들은 대부분 이 영화 이야기를 한다.

차암 ~ 좋아한다고, 동양이나 서양이나 베티 블루 37.2는 참 컬트적이며

마니아적인 영화이다.

이 영화에 대해 이야기가 나오면 개인적으로 이런 말을 해준다.

넌 보지마.

넌 안보는 게 나을걸? 봐도 무슨 말인지 모를 테니까.

이런 재수 없는 멘트는 뭐 외국에 나왔기 때문에 더 많이 사용하는 것 같다.

방어용 공격이라기보다는 일일이 설명해주는 것이 이젠 힘들어서. ^^


인간은 본능적 존재이며 사랑은 추하며 아름다우며…,


보통 이 정도 설을 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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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영화 초등학교 때 어짬뽕 아니 어우동과 더불어

그 포스터를 유심히 보면서

사랑하기 제일 좋은 온도 37.2라는 라디오 광고를 들으며

저 영화 꼭 보고 말겠다고 다짐하고 또 다짐한 영화가 바로 이 영화다.

적삼사이로 보이는 보희 언니의 젖가슴 실루엣과 속치마 사이로 벌어진 허벅지와는

달리 퍼런 바탕에 턱을 괴고 위를 살짝 올려다보는 언니가 있던 포스터 그리고

사랑하기 제일 좋은 온도 37.2라는 문구는 정말 후끈 달아오르게 아니 후끈한 상상을

하게 해주었다.

어? 글 짧게 써야 하는데…,

욕망이란 단어가 유행하던 시절

욕망은 기표이며 완벽한 기의를 갖지 못한다는 자끄 라깡의 말이나

죽음만이 완벽하게 욕망을 충족시킨다는 프로이드의 말을 언급하는 사람은 적었다.

어? 이 영화의 설명을 다해버렸다. 이제부터는 사족이다.

아이를 갖고 싶지만 갖지 못하는 여인과

작가가 되고 싶지만 출판을 하지 못하는 남자

그리고 절망.

그녀를 죽이며 작가로서 그도 죽었다. 그녀는 그의 재능을 알아본

단 한명의 독자였으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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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에 나타난 절망의 시작, 상황이 점점 안좋아진다. -


 


어리석다라는 말이 어리다는 의미로 쓰인 적이 있었다.

하비람에서 사용되는 개념으로 표현하면 양말을 잡지 못한

혹은 머리를 올리지 못한, 상투를 틀지 못한 어리석은 년, 놈들이

바로 이 영화의 주인공들이다.

싸가지 없는 아이가 투정을 부리는 것 같은 그녀의 히스테리는

이런 방식으로 이해할 수 있다. 어리석은 혹은 어린, 성숙하지 못한

사람의 가장 솔직한, 이것저것 고려하고 체면 염치 따지지 않은

그런 의미로서의 자연적인 반응, 우리나라에서는 역시 싸가지 없음으로

간주될 수 있는.

역시 매를 들어야 싸가지가….


이 영화는 절망과 꺾인 욕망에 대한 음울한 인물화이다.

그래서 블루인가?

37.2도는 일설에 의하면 오르가즘을 느끼는 상태의 온도…가 아니라

수정이 되기 가장 좋은 온도라고 한다.

 

베티의 우울한 37.2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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